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보니 Apr 15. 2020

아슬하게 담겨 있던 물이 찰랑, 넘쳐버리기 전에

말로 표현하기 


몇 달 전 독서 모임에 나갔을 때의 일이다. 두 여자가 함께 살며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두 작가가 함께 쓴 에세이가 그날 독서모임에서 이야길 나눌 책이었다. 책 내용 중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를 골라 이야기해보는 시간이었는데 내가 고른 에피소드를 간단히 요약해보자면 다음과 같았다.


두 여자는 함께 살기로 하고 이사를 시작했다. 이삿짐을 정리하다 보니 그들은 비슷한 취향만큼이나 비슷한 물건이 너무도 많았다. 티비, 서랍장부터 주전자, 그릇들까지. 그들의 싸움의 발단은 주전자에서 시작되었다. 같은 브랜드의 주전자이지만 화자의 주전자가 0.5L 더 작은 용량이었고 작은 게 낫다, 아니다 큰 게 필요하다 실랑이를 하다 결국 큰 말다툼으로 번지고 만 것이다. 화자는 글의 마무리에서 이 싸움에 대해 이렇게 마무리했다. 사실 주전자의 0.5L는 중요한 게 아니었을 거라고. 그저 서로 쌓아오며 조금씩 넘칠 듯 차오르던 마음의 끓는 물이 용량 0.5L라는 이 사소한 것으로 인해 찰랑, 마침내 넘쳐 버린 것일 테다 하고 말이다. 




이 에피소드를 독서모임에서 대화의 주제로 꺼내게 된 건 그로부터 일주일 전 언니와 큰 싸움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날은 자취를 시작하면 꼭 방 한편에 나의 안락한 소파를 놓고 싶었던 오랜 꿈이 이루어지던 날이었다. 가구매장에서 신중하게 앉아보며 고르고 집까지 모셔왔는데 생각보다 집의 크기에 비해 1인용 소파가 너무 큰 것이었다. 언니와 함께 사는 집에서 내가 마음대로 꾸밀 수 있는 공간은 부엌 한 켠으로 협의한 상태였고 원래 소파는 그곳에 놓기로 되어 있었는데 막상 놓고 보니 아늑함이 부족해 보여 소파를 거실로 옮겨왔다. 언니도 앉게 될 소파니 괜찮을 거란 판단이었다. 공간에 안성맞춤으로 꼭 맞는 소파가 마음에 들어 이리저리 앉아보고 조명도 달아보며 행복해하다 가족 채팅방에 소파 사진을 올렸고 곧바로 언니의 답변이 돌아왔다. 

"원래 놓기로 했던 자리에 갖다 놔. 지금 거긴 원래 거울이 있어야 하는 자리임."


넘쳐흐를 것 같던 흥이 한 순간 폭삭 깨져 버렸다. 옮겨라 옮길 수 없다 실랑이로 시작되었던 말다툼이 그날 밤 큰 감정싸움으로까지 번졌다. 


"네가 나를 무시해 온다고 느낀 지가 10년은 넘었어."


뭐라고? 내가? 언제? 도대체 어느 포인트에서 본인을 무시했다고 느낀 건지 전혀 짐작할 수도 없었지만 그 말이 맞았을 것이다. 원래 상처를 준 사람은 기억을 못 하고 상처 받은 사람은 그 기억을 평생 안고 살아가는 법이니 말이다. 어쨌거나 그렇게 시작된 감정싸움은 꽤 오랫동안 지속되었고 여전히 화는 풀리지 않았지만 계속해서 머릿속에 언니의 말이 맴돌았다. 도대체 왜 그렇게 느낀 걸까.




"서로 쌓여오던 것들이 고작 소파 놓는 위치라는 것 하나로 찰랑, 넘쳐 버렸던 것 같아요."

독서모임에서 이 싸움의 요약본을 에피소드에 대한 감상으로 꺼냈을 때 사람들의 질문이 이어졌다. 그래서, 화해는 했어요? 화해요? 저희 살면서 그런 거 해본 적 없는데... 그럼, 그렇게 느낀 점에 대해서 미안하다는 얘기는? 


"사실 저는 지금까지 살면서 가족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요."

한 편으로는 다수가 그렇지 않나?라는 마음으로 꺼낸 말이었다. 하지만 반응은 놀랍도록 예상을 뛰어넘었다. 사람들은 도저히 내가 이해되지 않는다는 반응이었다. 가족들이 왜? 사이가 안 좋아요? 아니요. 저희 가족 동네에서 소문난 사이좋은 가족인데요.







그러고 보니 살면서 언니에게 그랬던 것과 마찬가지로 부모님에게도 '고. 맙. 습. 니. 다.'라거나 '미. 안. 해. 요'라는 말을 해본 적이 없다. 이 글을 읽는 누군가가 나와는 달리 이런 표현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이라면 내가 화성에서 온 강아지쯤으로 이상하게 보일 테다. 어떻게 삼십 년 가까이 살아오면서 가족에게 고맙고 미안하다는 말을 한 번도 안 할 수 있지? 거짓말 아니야? 아니, 정확하게 팩트다. 


경상도에서 태어나서 표현이 조금 서투른 거라고 스스로 생각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기가 구차하게 느껴졌던 이유는 내 수많은 경상도 지인들 중엔 안 그런 친구들이 더 많았다는 거다. 고마워, 미안해와 TOP3을 다투는 어려운 말은 바로 '사랑해'라는 말이다. 남자 친구에게는 쉽게 나오는 말이 가족에게는 한 번도 내 입으로 '사랑해'라는 말을 해본 적이 없다. (메시지나 편지로는 자주 해서 별개의 문제다.)


"언니나 오빠한테 사랑한다고 해? 안 하지?"

어느 날은 나의 이 표현 불능 증세가 심각하게 느껴져서 친구들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이 설문의 30%는 '난 하는데, 가볍게라도.'의 대답이었고 40%는 '난 그래도 미안하다, 고맙다고는 해.'. 나머지 30%는 미쳤냐는 과격한 반응이었다. 어쨌든 70%의 사람들은 표현을 그리 어렵지 않게 하고 산다는 이야기다. 





이것은 가족에게만 국한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가까운 친구들에게도 나는 (말로) 표현을 잘 못한다. 가까운 사람을 대할 때일수록 더 무뚝뚝해지고 표현이 적어진다. 물론 위에 얘기했듯이 글로 쓸 때와는 별개다. 편지도 자주 쓰고 장문의 메시지로 꾹꾹 마음을 눌러 담을 때도 많고 따뜻한 말을 해주려고 한 문장을 오래 고민하기도 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놈의 혀다. 혀에서는 도저히 그런 표현이 쉽사리 나가지 않는다. 내가 이렇게나 표현에 서툰 사람이라는 사실을 서른이 다 되어서야 알았다. 왜 이 중증을 이제야 느꼈는지 생각해보니 나는 주로 글에 많은 표현을 담고 있었기 때문이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아무리 글에다 꾹꾹 눌러쓰면 뭘 하나 마주 보고는 전해줄 수 없는데. 때론 열 마디 말보다 하나의 문장이 마음을 울린다고는 하지만 나에게는 열 문장보다 한 마디의 표현이 더 중요해진 지금이다. 


작년 연말, 이런 생각에 사로잡혀 있을 무렵 서먹해진 전 직장 선배를 떠올렸다. 3년간 가깝게 지냈었는데 퇴사를 하고 여러 상황 속에서 오해가 생기다 보니 점점 거리가 멀어져 가고 있던 사람이었다. 12월 31일, 2019년의 종료를 30분 앞두고 연말 인사를 핑계 삼은 장문의 메시지를 써 내려가다 말고 그냥 통화버튼을 눌렀다. 전화를 받은 선배는 당황스러움을 숨기며 애써 밝게 안부를 이어갔다. 정말 어려웠던 그 한 마디를 꺼냈다. 


"언니, 우리 사이에 생겼던 오해들로 멀어지는 동안 나는 언니가 보고 싶었고 언니랑 함께 지낸 시간들이 생각났어요. 비록 내가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언니가 그런 상처를 받게 해서 미안해요."


선배는 약간의 울먹임과 함께 먼저 용기 내서 전화해줘서 고맙다는 말을 했고 한참 동안이나 통화는 계속되었다. 저 30초도 안 되는 문장을 말하기 위해 말하는 동안 스스로 얼마나 많은 침을 삼켜야 했는지 모른다. 이렇게나 어려운 거였다니. 비즈니스 미팅을 할 때나 어쭙잖게 선배노릇을 할 때나 낯선 사람에게 좋은 사람인척 할 때는 잘만 나오던 그 표현들이 진심을 담으니 천근만근 무거운 것이었다. 이쯤 되면 진심을 말로 표현하는 데는 불능을 뛰어넘은 불구임에 틀림이 없다. 

어쨌든 12월 31일의 그 통화는 백 줄로 눌러쓴 문자 메시지보다 5분의 짧은 통화가 진심을 전달하기에 더 충분할지 모른다는 확신을 갖게 했고 그 이후로 '잘 지내지? 너 열심히 사는 것 같아 좋아 보여. 잘하고 있어.' 등의 이야기를 해주고 싶을 땐 꼭 문자보다 전화를 걸거나 약속을 잡는다. 







언니와 소파의 이야기로 돌아가서 그날 독서모임에서 파트너님이 작가의 친필 사인이 담긴 그 책을 모임의 멤버들 중 한 명에게 선물해주는 마지막 순서가 있었다. 파트너님은 옆에 앉아 있던 나에게 그 책을 고민 없이 내밀었다. 그 책을 언니에게 선물로 주라고 하시면서. 고작 소파 놓는 위치 하나로 쌓이고 쌓이던 관계의 물이 찰랑, 하고 넘쳐 버린 자매의 관계에 회복이 될 거라고 하시면서. 


그 날 일찍 들어가기가 망설여져 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택시 안에서 SNS에 글을 올렸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특히 가족일수록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 하는 생각 때문에 표현하지 않고 지나가고 하지 않고 참아야 할 말도 내뱉어버린다고 하자 모두들 그러지 말아야 한다고 내게 말했다. 그러지 말아야 하는 건 나도 알고 그들도 알지만 모두 스스로에게 하는 반성이었을 것이다. 

어차피 우린 앞으로도 서로 미안하고 고마운 거 잘 표현 안 하고 살 테지만 이 책은 선물이야.  

    


집으로 돌아오니 불이 다 꺼진 방에서 언니는 폰을 만지작 거리고 있었다. 괜히 SNS 글이 머쓱해 바로 욕실로 들어가서 씻고 나오는 길에 게시물에 댓글이 달렸다고 알람이 왔다. 언니였다.

[오예, 싸인본 내 거]




작가의 이전글 손바닥 안에서 맛본 자수성가의 기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