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장 육성 게임 스타듀 밸리
얼마 전 집에 놀러 온 친한 동생이 요즘 빠져 있는 게임을 보여 주겠다며 가방에서 아이패드를 꺼내왔다. 농사를 짓고 가축을 기르고 낚시도 하고 광석도 캐면서 봄여름가을겨울을 보내는 ‘힐링 게임’이라고 했다. 중요한 건 농장 경영뿐 아니라 마을 사람들에게 선물을 갖다 주며 친목질(?)도 빼먹지 않아야 한다고. 그러다 보면 마을 사람들 중 나에 대한 호감도가 높아지는 사람들이 생기고 그들과의 스토리들이 하나씩 열린다고 했다.
나는 게임을 잘 안 한다. 심지어 한창 애니팡이며 쿠키런이 유행할 때에도 다운로드하여본 적이 없다. 내 기억엔 스마트폰 이전에 쓰던 폰으로 했던 ‘주주클럽(동물 테트리스)’나 ‘붕어빵 타이쿤’이 마지막일 거다. 동생이 소개해준 [스타듀 밸리]라는 이 게임은 어릴 때 CD로 하는 육성 시뮬레이션 게임들과 그래픽 화면이 비슷해서 친숙했다. 어쩌면 CD게임을 하고 자랐던, 나와 같은 밀레니얼 세대를 공략하기 위해 그렇게 만든 게 아닌가 싶다.
동생은 소위 돈 버는 ‘치트키’를 써서 이미 1년 차 봄에 ‘부농’이 되어 있었다.
“언니도 부농의 삶 한 번 누려 볼래요?”
별생각 없이 패드를 넘겨받고 게임을 하기 시작했다. 게임 상에서 1일을 보내면 실제 시간은 10분 정도가 흐른다. 정신을 차려 보니 어느새 새벽 네시에 눈을 끔뻑이면서도 손은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다음 날 그 게임을 다운로드하였고 (심지어 유료 게임이었다.) 치트키 없이 순수하고 가난한 농부의 캐릭터로 봄을 맞이했다. 게임에서의 1일, 그 10분 동안 내 캐릭터는 체력이 바닥날 때까지 일을 했다. 게임 초기에는 돈을 벌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많이 없다. 그래서 보통 하루는 밭에 물을 주거나 숲에 가서 나무만 캐고 다음 날은 하루 종일 낚시만 하거나 광석만 캐고 다닌다거나 한다는데 나는 그 네 가지를 하루에 다 했다. 광산과 숲을 오가며 주운 농작물들을 마을 주민들에게 갖다 바치며 친목도 다졌다.
게임 속 농부의 짧은 다리로 마을부터 광산, 숲, 바다까지 다니려니 터치하는 손가락이 아플 지경이다. 게임 3일 차 매일같이 새벽 세시가 다 되어서야 잠이 들고 이젠 손목도 찌릿하다는 나에게, 이 게임을 소개해 준 동생은 말했다.
“아니, 이 게임을 누가 이렇게 빡세게 해요. 이건 힐링 게임이라고!”
생각해보니 위에 언급한 CD게임을 하던 초등학생 시절에도 나는 거의 게임 중독이었던 것 같다. 학교가 끝나면 가방을 벗어놓기 무섭게 언니와 컴퓨터 앞에 앉아서 부모님이 퇴근하기 전까지 네 시간을 꼼짝 않고 게임을 했다. 그 당시 빠져 있던 쿠키샵, 안젤리크 스페셜, 마법 상점 파르페 등은 다 이런 식으로 과자 가게나 마법 물약을 파는 상점, 우주의 왕국 등을 운영하는 육성 시뮬레이션 게임이었다. 어린 나의 눈에도 그게임들 속에서 하루가 저물기 전에 해야 할 것들이 무궁무진했다. 몬스터도 잡아야 하고 약초도 캐야 하고 친구도 사귀어야 하고....
동생보다 몇 주 늦게 게임을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금 2년 차 봄을 맞았고 동생은 이제 1년 차 겨울에 진입했다. 부지런히 뛰어다닌 덕분에 가난했던 농부는 제법 부유해졌고 나의 농장에는 닭과 소를 위한 집도 있으며 치즈와 마요네즈, 잼과 꿀을 만드는 기계도 있다. 마을의 알렉스와 엘리엇이라는 남자애는 나를 좋아하기 시작했고 매일 마요네즈를 갖다 주는 마을 시장님은 나에게 최고의 주민 상도 주었다.
올해가 시작하고 나면 술술 풀릴 줄 알았던 일들은 꽉 막혀 도무지 뚫릴 줄을 몰랐다. 꽉 박혀 있는 돌 하나만 빼내면 물이 콸콸 흐르듯 일이 풀릴 줄 알았는데 그 돌 하나로는 부족했던 모양이다. 계속 돌을 빼내야 하는 상황에서 ‘코로나 19’라는 초악수도 터졌다. 모두가 다 어려운 경제상황이지만 사람들을 한데 모으는 행사를 기획하는 나 같은 행사 쟁이들은 속속 취소되는 탓에 더 힘들었다. 특히 창업을 해 이제 갓 1년을 넘긴 상황에서는 작은 행사 하나라도 소중하니 더 그렇다. 상반기에 잘 가져올 수 있을 것 같던 일들이 줄줄이 취소되었다.
일이 없어 시간이 많을수록 나는 더 부지런히 움직였다. 마치 스타듀 밸리 1년 차 봄을 맞은 농부처럼 말이다. 매일 1만보를 걷고 1시간씩 공부를 하고 주 3회 이상 헬스장을 갔다. 지하철에서는 출근길엔 책을 읽고 퇴근길엔 팟캐스트를 듣거나 북저널리즘 같은 사이트에서 콘텐츠를 읽었다. 매주 새로운 공간을 찾았고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 이야기했다. 이렇게 쪼갤 것 없는 시간에 이제 게임까지 한다. 주변인들이 열정이 과하다고 할 만큼 하루를 꽉 채워 살고 있는데 그렇게 하다 보면 이상하게도 몸은 지치지만 정신은 에너지가 넘친다.
그렇게 두 달을 보냈고 여전히 전국은 바이러스와의 싸움으로 긴장 상태에 있지만 조금씩 풀려 나가고 있다. 마음을 급하게 먹지 않고 할 수 있는 일들부터 해보며 모험을 하기로 했다. 그렇게 마음먹고 보니 좀 더 단단해지는 기분이다. 하루 종일 예민하다가도 퇴근길 지하철에서 게임 속 내 농장을 들여다보면 힐링이 된다. 자수성가한 농부의 기분이다. 아, 이래서 ‘힐링 게임’이구나.
스타듀 밸리 속 나의 방도 넓어졌는데 우연히 또 실제로 집안의 인테리어를 바꾸느라 방이 넓어지는 중이다. 실제의 나를 투영하는 일종의 또 다른 나 같달까. 농부 bonnie는 오늘도 여전히 짧은 다리로 펠리컨 마을을 구하기 위해 용을 쓰는 중이다.
맛있는 술, 일상의 기록, 건강한 생활, 그리고 여름밤을 좋아합니다. 부지런히 일을 꾸미고 몸을 움직이며 살고 있습니다. 재미있게 읽어주신 후 공감과 댓글은 작가에게 큰 기쁨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