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보니 Jan 29. 2020

아이스크림 한 통도 사수하지 못하는 며느리들을 위하여

대가족의 명절



나의 친가는 대가족이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아들 셋, 딸 셋을 낳으셨고 우리 아빠는 그중 가장 막내아들이다. 6남매 중 둘째인 큰 아빠와 나이 차이가 삼십 년이 나서 큰 아빠의 아들, 즉 큰 사촌오빠와 나도 20살 가까이 터울이 있다. 그래서 다같이 모이면 10대 꼬맹이 조카부터 70대 큰아빠까지 한 자리에 모인다.

엄청난 세월의 격차에도 불구하고 우리 대가족은 서로 잘 지낸다. 매년 명절마다 한 명도 빠짐없이 모이고 일 년에 한 두번은 다 같이 시간을 맞춰 여행을 간다. 큰 사촌오빠, 언니들의 자녀들까지 줄줄이 데리고 여행을 가면 그야말로 일행이 다 모였나 찾는 게 제일 큰 일이다. 어쨌든 모두 사이좋게 싸움 없이 재밌게 잘 지낸다.




그럼에도 불편함을 느낀 건 내가 나이가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어릴 때부터 매 명절마다 뭔가 이상하다고 느껴오긴 했었다. 명절 전날 친가에 다 같이 모이면 큰엄마 두 분, 그리고 막내며느리인 엄마는 앞치마를 두르고 하루 종일 일을 했다. 할머니가 계실 때는 다 같이 송편도 빚어서 그때마다 나와 언니는 할머니 옆에 앉아 신나게 송편을 빚었다. 모두 모여 송편을 빚고 나면 큰아빠들과 아빠, 사촌오빠들은 곧장 방에 누워 티비를 보고 큰엄마들과 엄마는 좁아터진 주방에서 송편을 찌고 뒷정리를 하고 그 많은 명절 음식들을 마무리했다.


그러다 밥 먹을 시간이 되면 다시 또 그 많은 식구들을 위한 상을 차렸다. 옛날 집이라 거실 마루가 좁아서 남자들(큰 아빠들과 아빠, 사촌오빠들)은 마루에 큰 상을 놓고 밥을 먹었고 어린 나와 언니, 조카들은 작은 방에서 밥을 먹었다. 우리가 밥을 먹을 때에도 여자 어른들은 계속 음식을 나르고 상을 치웠다. 엄마에게 "엄마, 밥 왜 안 먹어?" 하면 자리가 없어서 우리가 다 먹고 나면 먹을 거라고 해놓고 한참 뒤에 좁은 부엌에 상을 펴놓고 세 분이 모여 앉아 뒤늦게 밥을 먹었다.


분명 우리 대가족은 화목하고 재밌게 잘 지내는데 그럼에도 왜 명절만 되면 불편한 느낌이 드는지 알 수 없었다. 어릴 때 친구들과 그런 이야기를 할 때면 자기들 집들도 비슷하다고 했다. 그래서 당연한 건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머리가 커가면서 명절만 지나고 나면 다음날 어깨며 손목이 아프다는 엄마를 위해 언니와 나는 두 손 걷어붙이고 일을 도왔다. 사촌오빠들은 여전히 방에 누워서 티비를 봤다. 우리는 하루종일 엄마들을 돕는 것 외에 조카들과 놀아주는 역할도 했다.

밥을 먹을 때에도 오빠들은 상에 수저 하나 놓는 법이 없었다. 우리가 조그만 손으로 수저를 놓고 음식을 나르고 있으면 큰 사촌오빠는 밥상 앞에 앉아서 "얘들아~ 튀김 찍어 먹을 간장 하나 더 가져와라."라고 했다. 그러면 사촌오빠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큰엄마가 불편한 한복을 입고 좁은 부엌을 비집고 들어가 간장종지를 꺼내왔다. 나는 이게 점점 불편해졌다.



중학생 무렵인가, 명절 전날 큰집을 가려고 준비를 하는데 당연한 듯이 앞치마를 챙겼다. 큰집에 도착해서 앞치마를 두르고 일을 도우려고 하자 엄마가 조용히 나를 불러다 작은 방에 데려가서 말했다.

"시집가면 남의 집 일 하느라 명절에 힘들 텐데 엄마는 너네가 벌써 앞치마 두르고 그러는 거 보기 싫어."

그러면서 그냥 조카들이랑 놀아주거나 나가서 친구들을 만나고 오라고 했다. 그리고 엄마는 그 날 저녁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빠와 말다툼을 했다. 우리 딸들이 앞치마 입고 전 부치고 있는 거 벌써부터 보기 싫다고 했었나 그랬던 것 같다.


그해쯤부터 명절이 되면 남자 어른들은 차례를 지낸 뒤 아빠의 지휘 아래 제기(음식을 담는 그릇)를 닦는 일을 하기 시작했다. 그게 우리 엄마가 이 집의 며느리가 되고 10년이 넘은 뒤의 이야기이다. 차례를 지낸 뒤 누워있던 남자 어른들을 방바닥에서 일어나 제기를 닦게 하기까지 10년이 넘게 걸린 셈이다.

그러고 또 10년이 지났다. 여전히 이번 명절에도 식사시간이 되자 큰 사촌오빠는 밥상 앞에 앉아 나에게 깍두기를 더 가져오라고 했고 작은 사촌오빠는 조카들과 놀아주고만 있었다. 속에서 뭔가 끓었다. 더 이상 두고 볼 수가 없었다.



"이제 고모(나)가 이런 일 할 짬밥이 아닌 거 같아. 나가서 밥상에 수저 좀 놔줄래?"

조카들은 주섬주섬 일어나 상에 수저를 놓기 시작했다. 거실 마루의 밥상 앞에 앉아있던 남자 어른들은 손자들이 이제 다 커서 알아서 엄마일을 돕는다며 즐거운 소리를 했다. 수저를 놓고 방으로 돌아가 스마트폰을 집어 드는 애들을 다시 불러다가 엄마들이 담아 주는 반찬을 상에 나르라고 했다. 낯선 상황에 쭈뼛쭈뼛 대면서 부엌 앞에 줄줄이 서서 반찬 접시를 받아 날랐다. 그제야 멀뚱히 티비를 보고 앉아 있던 작은 사촌오빠도 슬쩍 자리에서 일어나 상 차리는 걸 도왔다.


그 날 저녁, 작년에 결혼한 사촌언니가 형부와 함께 인사를 드리러 온다고 했다. 한복을 차려입고 온 사촌언니와 형부를 어른들은 반갑게 맞아주셨다. 그리고 곧장 조카사위를 밥상 앞에 앉히고 술을 따라주었다. 엄마들은 불편한 한복을 입고 계속 저녁상을 차렸다. 나와 언니는 점심에 그랬듯이 조카들(사촌오빠의 아들과 딸들)에게 밥상 차리는 일을 돕는 걸 지휘했다. 밥상 앞에서 밥만 기다리던 아이들이 부엌 앞에 줄을 서서 일거리를 기다리는 모습이 신기했는지 진두지휘하는 나를 보던 사촌언니가 피식 웃으며,

"너네가 이 집안에 작은 바람을 일으키고 있구나."라고 했다.





방바닥에 누워있던 남자들을 일으켜 제기를 닦게 하는데 10년이 넘게 걸렸다. 그리고 남자인 사촌오빠와 조카들을 방에서 일으켜 수저를 놓게 하는데 또 10년이 걸렸다. 도합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여자 어른들, 즉 며느리들은 계속해서 좁은 부엌에서 일하고 가장 늦게 밥을 먹고 가장 빨리 일어나 상을 치웠다.





작년에 개봉해서 사회의 이슈를 불러일으킨 '82년생 김지영'에도 이런 장면이 나온다. 김지영이 바라보는 화면 속 가족들은 매우 화목하다. 서로의 안부를 묻고 심지어 김지영의 안부까지 (고맙게도) 물어준다. 그런데 그 화면 밖의 김지영은 앞치마를 풀지 못하고 계속해서 부엌에서 일하고 있다.



화면 속의 사람들은 화면 밖에서 자신들의 모습을 바라보지 못한다. 그래서 아마 그들이 영화관에서 '82년생 김지영'을 보았어도 화목하지만 김지영만 동떨어진 가족의 모습이 그들의 모습인지 여전히 알아채지 못할 것이다. 심지어 영화관을 나서면서 옆에서 훌쩍이는 여자 친구에게 한 마디 할지도 모른다.

"요새 저런 사람들이 어딨어?”


그 모순적인 일들은 매우 흔하게 우리 주위에 있어 왔다. 화목하고 행복한 가족 아래에서 누군가는 희생하고 있었다. 더 한숨이 나오는 사실은 당연한 듯 몇십 년을 그렇게 지내온 분들 조차 스스로 불편하게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며 가족을 위한 사랑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사랑, 맞다. 사랑이 없으면 힘든 일이겠지만 왜 그 사랑이 일방적인 노동으로 매 명절마다 나타나야 하느냐는 말이다.




지난 몇 년 동안 베스트셀러로 서가를 지켰던 '90년대생이 온다'는 사회에 진출하고 자리를 잡아 사회의 주 원동력을 담당하는 구성원이 된 90년대생들의 특징을 묘사한 책이다. 얼마 전 어느 글에서 '90년대생 며느리들이 온다.'라는 비슷한 제목을 보고 피식한 적이 있다. 90년생이 이제 30대의 초반에 들어섰고 많은 90년 대생들이 결혼을 해서 서로의 집에 새로운 구성원이 되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젊은 며느리들의 반항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다. '요즘 애들이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강해져서 서로의 집에 대한 배려와 희생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시대는 변하고 있다. 어릴 때는 그저 이상하게만 보여 갸우뚱 하던 것들이 점점 다양한 의견이 자유롭게 공유되면서 잘못된 것임을 느끼게 되는 그런 시대로 변하고 있다는 얘기다. 물론 무조건적인 권리 주장이 옳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어른들에 대한 예의를 지키는 것과 불평등한 행동들을 지적하는 것은 다른 문제이니까.





식사를 마칠 무렵 언니와 나는 아이스크림 세 통을 냉장고에서 꺼내왔다. 하나는 우리가 먹을 것, 하나는 남자 어른들이 식사하고 드실 것, 또 하나는 일하고 늦게서야 한 숟가락씩 드실 엄마들을 위한 것으로 넉넉하게 사 온 것이었다. 신나게 우리가 먹을 아이스크림을 다 먹어치운 조카들이 숟가락을 들고 아쉬운 듯 쩝쩝대자 큰 사촌오빠가 와서 말했다.

"더 먹고 싶어? 밖에 있는 거 더 먹어. 우리는 이제 다 먹었어."

"엄마들은? 엄마들 안드셨잖아?"

"어? 어..... 안 드셨지..."

분노한 언니가 소리쳤다.


"오빠가 제일 문제야. 엄마들 좀 챙겨!!!!"



가족들을 위한 사랑이라는 이름의 일방적인 노동 아래 그녀들을 위해 사 온 아이스크림 한 통도 사수하지 못한 2020년 명절의 며느리들을 위하여.








맛있는 술, 일상의 기록, 건강한 생활, 그리고 여름밤을 좋아합니다. 부지런히 일을 꾸미고 몸을 움직이며 살고 있습니다. 재미있게 읽어주신 후 공감과 댓글은 작가에게 큰 기쁨이 됩니다.

작가의 이전글 애정을 욕심내는 이기적인 관계에 대하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