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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 파우스트를 다시 생각하다

괴테 문학의 현대적 의미를 지금 우리의 삶에 비추어보다

“파우스트적으로 산다는 것.”

서울대 독문학과 오순희 교수의 강연에서 처음 들은 표현이었다.

낯설고도 인상적인 그 말은, 곧장 내 안에 오래된 질문 하나를 떠올리게 했다.


지금 우리는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가.

기술의 속도가 인간의 욕망을 추월한 이 시대에

파우스트는 다시 읽힐 필요가 있었다


인간은 왜 멈추지 못하는가


괴테의 『파우스트』는 단지 고전 문학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 욕망의 지도이고, 근대라는 거대한 흐름의 자화상이다.


파우스트는 세상의 모든 지식을 갈망하던 학자였다.

그러나 그는 곧 깨닫는다.

지식만으로는 삶의 공허를 채울 수 없다는 것을.


그는 악마 메피스토와 거래한다.

영혼을 담보로, 쾌락과 젊음, 힘과 경험을 얻는 댓가였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파우스트는 “멈추지 못하는 인간”이 된다.


우리는 지금 이 시대의 파우스트인가


AI와 알고리즘, 빅데이터와 생성형 기술.

우리는 이전 세대와 비교할 수 없는 속도로 사고하고, 예측하고, 창조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이상하다.

정보는 많아졌지만, 판단은 더 어려워졌고

속도는 빨라졌지만, 의미는 자꾸 흐려진다.


무엇을 더 얻어야 만족할 수 있을까.

어디까지 가야 멈출 수 있을까.


이 질문은 단지 문학 속의 파우스트만이 아니라, 지금 우리 모두의 것이다.


괴테가 남긴 마지막 노래 – ‘신비의 합창’


『파우스트』의 결말은 단순한 파멸이나 구원이 아니다.

그것은 죽음을 넘는 초월이고, 멈춤 이후의 비전이다.


죽음을 앞둔 파우스트는 마침내 말한다.


> “ 순간아 멈추어라, 너는 너무도 아름답구나.

Verweile doch, du bist so schön (페어바일레 도흐, 두 비스트 조 쉔)


그는 간척 사업을 완성하고, 후손들을 위한 미래를 상상하며 만족을 선언한다.

이 순간은 개인의 쾌락이 아닌 타자를 위한 상상이었기에,

괴테는 그를 구원받는 인간으로 그린다.


그리고 울려 퍼지는 마지막 합창.


> “모든 덧없는 것은 단지 비유일 뿐.

불완전한 것도 여기서는 완성이 되며,

말로 다할 수 없는 것도 여기서는 이루어진다.

영원히 여성적인 것이 우리를 이끌어 높이 날게 한다.”


여기서 말하는 ‘영원히 여성적인 것’은 생명, 자연, 사랑, 감성의 원리다.

괴테는 말한다.

지성과 기술이 아닌, 포용과 돌봄이 인간을 구원한다.


진짜 멈춤은 죽음이 아니라 성찰이다


파우스트는 결국 죽는다.

그러나 괴테가 보여준 것은 ‘죽음 = 멸망’이 아니다.


그는 “멈추지 않겠다”던 인간이,

마침내 ‘멈추어도 좋다’고 말할 수 있는 지점에 도달했을 때

비로소 진짜 구원의 문이 열린다.


멈추는 순간,

그는 더 이상 악마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

자기 초월의 인간이 된다.


다시, 파우스트를 읽어야 하는 이유


우리는 지금,

성공을 위해 멈추지 않고

더 많은 것을 얻기 위해 나아가며

AI의 속도를 쫓는 삶을 살고 있다.


하지만 과연 이 질주는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파우스트는 말년에 이르러서야 멈출 수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그의 삶은 구원으로 완성되었다.


멈추지 못하는 오늘의 우리에게

파우스트는 이렇게 속삭이는 듯하다.


> “그 모든 욕망의 끝에서,

너는 과연 만족할 수 있는가?”


다시 파우스트 전문을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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