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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슬이 Oct 02. 2023

도시의 계절

인공의 빛과 태양




태양이 작렬하는 너른 운동장에 홀로 공을 차고 있는 한 소년이 있다. 햇빛에 구워진 메마른 흙바닥은 소년이 공을 이리저리 찰 때마다 뽀얀 흙먼지를 내뿜는다. 까맣게 그을린 소년에 머리카락 사이엔 송글송글한 땀방울이 맺혀있다. 소년은 수돗가로 달려가 수도꼭지 아래 목구멍을 열고 하늘을 바라본다. 작은 손으로 벨브를 열자 쏟아지는 물이 햇빛에 반짝이며 이리저리 튀며 소년의 입 속으로 향한다. 땀에 흠뻑젖은 소금끼 가득한 웃옷은 금세 다시 흠뻑 젖는다. 소년은 툭툭 털고 다시 운동장으로 향한다. 

내게 여름은 자란  날보다 자랄 날이 더 남은, 땀에 흠뻑 젖어 뛰는 것만으로 벅찬 저 소년 같다. 여름은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싱그러운 젊음 같다. 파란 하늘과 태양, 숨이 턱 막힐 것 같은 뜨겁고 습한 공기마저도 요동치는 청춘의 한 순간 같다.


나는 에어컨이 쏟아내는 차가운 바람에 옷을 걸치며 컴퓨터에서 내뿜는 인공의 빛을 하루 종일 바라본다. 밤 늦게 퇴근할 때쯤이 되서야 바깥의 후끈한 공기가 콧속으로 들어와 '아 여름이였지'라는 생각한다. 내 벌이에 대부분은 이 팍팍한 도시에 살기 위한 주거비로 대부분 쓰여 나간다. 여름엔 에어컨이 겨울엔 난방기가 사방히 막힌 건물안에서 계절을 잊고 지낸다. 도시의 삶을 포기한다면 어쩌면 조금 더 계절을 즐기면서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잠시 한 적도 있다. 하지만 평생을 답답한 도시에서 산 나에게는 쉽사리 도시 쥐의 삶을 포기하고 시골 쥐의 삶을 산다는 것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수많은 자동차가 내뿜는 탁한 공기를 진저리치게 싫어하면서도 코 앞에 24시간 편의점에 완벽하게 익숙해져버린 삶이 서글프기만 하다. 


귀뚜라미가 울기 시작했고 밤이면 제법 쌀쌀하다. 소년같은 여름은 지나가고 잠시의 가을 뒤 춥고 긴 겨울이 시작 될 것이다. 시간은 그렇게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아도 조용히 흘러간다. 계절과는 상관없는 도시의 삶을 살고 있지만 계절이 지나갈때면 언제나 아쉽고 또 설레인다. 불이 켜지지 않는 작은 빌라 입구를 지나 어두운 계단을 힘겹게 오른다. 어둠속에서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가 기계적으로 씻고 옷을 갈아입고 마지막 남은 힘을 쥐어짜서 겨우 이불 속으로 기어 들어간다. 지친 몸둥아리는 여기저기 쑤시고 아프지만 핸드폰을 들고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을 작은 기계에서 내뿜는 인공의 빛에 집중하며 오늘의 피드를 살핀다. 피곤함에 눈을 뜨기 힘든 시간이 올때면 나는 눈을 감고 계절의 지금을 상상해본다. 봄에는 따뜻한 햇빛 아래 몸이 구워지는 냄새를 맡으며 넋을 놓고 흔들리는 잎파리를 바라보고싶다. 여름에는 뜨거운 태양아래 요동치는 계곡 물 속에 풍덩 빠지고 싶다. 가을에는 붉은 단풍과 깊은 하늘을 만끽하며 잔디밭에 누워 잠들고 싶고 겨울에는 눈꽃 가득한 한라산을 오르고 싶다고 생각하며 스르르 잠이 든다. 그렇게 나의 그리고 도시의 계절은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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