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슬슬 Jul 12. 2019

동독 사람들은 통일을 어떻게 보나

최근 접한 한반도 평화 통일 관련 이야기들 중 기억에 유독 남는 것들만 추려본다.


1. 동독출신 독일인들의 상대적 박탈감은 어마무지하다.
- 아리랑 TV에서 독일 통일 이후 30년간 동서독인들의 의식은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다루는 다큐멘터리 촬영을 위해 베를린을 방문해서 대학과 기관의 전문가들, 그리고 동서독 출신 개인들을 만나고 있다. 확실히 동독 출신들과 서독 출신들은 통일 이후 사회통합이라는 주제에 접근하는 자세 자체가 다르다. 
서독 출신들이 큰 문제의식이 없는 것에 반해, 동독 출신들 어떨 때 보면 '한이 서린' 것 같다. 모든 시스템을 서독 기준으로 맞췄던 '흡수통일'의 후과가 크다고 느껴지는 지점이다. 
통독 이후 동독출신 교수들을 비롯한 공무원들을 다 교체해버려서 동독출신 대학교수가 5%밖에 되지 않는 다는 점이 좋은 예가 될 것이다. 심지어 동독시절 우수한 보건제도 등도 모두 폐기해 버렸는데, 오늘날에는 그 제도의 장점이 입증되면서 큰 비용 들여 원래대로 되돌려 놓았지만, 이름도 바꾸고 마치 서독 시스템인양 한다는 것이다.(동독인 입장에서 볼 때) 
모든 것이 서독에 비해 열등하게 느껴지는(실제로 그렇게 제도와 법이 정해진 면도 있고) 동독이니, 그 열패감이 난민과 같은 사회 최약자에게 몰리는 현상을 보이고 있는 것도 어느 정도 납득이 간다.
'서독 엘리트들, 너희 엿먹어봐라. 우리가 너희가 만든 시스템에 고분고분 따를 줄 알어?' 동독 출신 법대 강사가 자분자분 설명하는 이야기의 배경에는 이런 심사가 있다는 거다. 


동독 시민들은 분단 시절 무능하다고 치를 떨었던 독일공산당의 후신인 좌파당을 아이러니하게 선택함으로써 서독 엘리트들을 기함하게 만들었고(여기에는 동-동 갈등도 있었다고 한다. 동독 내에서 지배층에 억압받았던 사람들이 통일 후 '정의'가 구현될 줄 알았는데 실형이 고작 100여명 안쪽이었던 '처벌의 한계'를 목도하고 좌절했다는 것. 인권, 재산몰수, 아이 강제입양등 구동독 정권이 저질렀던 잘못들이 통일과정에서는 중요하지 않은(간과되었던) 질문이었는데, 30년이 흐른 최근에서야 이 문제를 다시 들여다보고 있다고 한다), 이제는 그보다 더 충격(!)을 줄 수 있는 AfD 같은 극우쪽으로 세를 몰아주고 있다는 것. '봤어? 우리가 이 정도야~ 우리 목소리를 무시하지 마!'.  


자, 이 정도면 바~로 한반도 상황이 떠오르지 않나. 북향민들이 한국 사회에서 어떤 사회적 인식 속에 있는지, 심지어 최근 인기를 얻고 있는 케이블 드라마에서 북향민이 처한 상황이 어떻게 묘사되고 있는지 우리는 보고 있다. 물론 3만 2천 북향민을 단일집단으로 묶어 생각할 수는 없지만, 한때는 나를 존재하게 했던 정체성이 깡그리 무시당하는 경험은 그 어떤 사회 계층의 사람에게도 극복하기 어려운 좌절을 주지 않을까. 
그 열패감 속에서 어떤 이는 자본주의에 신속히 접속하는 신공으로 능력주의 노선을 선택하여 각자 도생의 길로만 나아갈 것이고, 어떤 이는 자괴감의 바다에서 고통받으며 삶의 악순환을 되풀이하지 않을까. 사회 속에서 자연스럽게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면 그 다음 수순은?


독일 사회를 오래 들여다 본 한국 학자는 이렇게 말했다. '동서독은 남북한과 물론 몹시 다르지만, 질문은 같을 수 밖에 없다. 중요한 것은 '기대' 매니지먼트이다. 통일되어 뭐든지 다 좋을거라는 기대를 현실적으로 잘 조절할 필요가 있다는 것. 실제보다 '인식'이 더 중요하다는 말이다. 
분명 과거에 대해서 '성찰'해야 하지만 또한 '잊어버림'도 필요하고, 이를 위해 최근에는 과거에 대한 치유, 심리적 통합에 중점을 두고 있다는 설명이었다. 
'인간으로서의 자존감'을 회복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치유의 목적이고, 그런 차원에서 과거 동독의 장점이나 동독인들이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것을 '상징'처럼 남기는 작업도 검토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는 여기서 무엇을 깨달아야 하는지 가슴 저릿하게 숙고하게 되었다. 
우리는 훨씬, 훠얼씬 길고 지난한 '회복'의 과정이 될 것이라는 것. 이 과정에서의 DO & DON'T 는 무엇이어야 하는지.


이 다음 글로 이런 주제들 써볼까 한다. 

2. 한반도와 독일은 뭐가 결정적으로 다를까
3. 독일 정계의 대북 입장은 마치 미국 매파들과도 같다.
4. 그래서 동서독인들은 한국인에게 무엇을 권고하고 있는가.
...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