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를 무기로 다듬다 (1)

교환학생, 언어가 현실이 된 순간

by 데보라

교환학생, 언어가 현실이 된 순간



교환학생으로 나는 페루에 가게 되었다.


이 이야기를 하면 많은 사람들은 왜 페루였는지 궁금해 한다. 그런데 사실 큰 결심이나 의미는 없었다. 그 당시에는 중남미 각 국가들의 차별점이나 특성들에 대해서는 잘 몰랐고, 다만 내가 중남미 여행책에서 본 그 신비하다는 마추픽추가 있다는 단순한 이유였다. 굳이 하나를 더하자면, 페루로 교환학생을 가면 점심은 무료라는 학교간 협정도 선택에 도움이 되었다. 생활비를 조금이라도 아낄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었다.


내가 교환학생으로 가기까지 결국에는 언어라는 열쇠를 잘 만들었어야 했는데, 내가 한 것은 사실 크게 두가지였다. 교환학생 지원서 자기소개서를 스페인어로 작성하는 것. 이건 한국어로 작성한 이후에, 내가 가지고 있던 스페인어 책들과 구글 번역기를 활용해서 전부 스페인어로 번역했다. 그리고 같은 동아리에 있던 파라과이 교포 친구를 통해서 검수를 받았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교수님의 질문에 대답할 수 있도록 모든 가상질문을 만들고, 내가 할 수 있는 대답을 스페인어로 달달 외웠다.


그 당시에 나의 간절한 열망을 알아채신건지, 다행히도 교수님은 전공자들과 함께 나를 교환학생으로 뽑아주셨다. 지금 생각하면 언어적인 준비는 미흡했을 지라도, 고등학생때부터 쌓아온 독기와 간절함이 아마 통했을 지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내재된 '한'을 교수님이 보아주신 것은 아닌가 생각이 뒤늦게 든다.







책으로 배운 언어를 현실에서 활용하기


교환학생으로 선정되었더라도, 나는 스페인어를 구사하고 대학에서 수업을 들을 수 있는 정도는 아니었다. 간단한 인삿말을 할 줄 알고, 책에서 배운 간단한 대화를 이해하는 수준밖에 되지는 않았다.


그렇기에 누군가 스페인어든 다른 언어든 책으로 배워서, 바로 현지에서 가서 쓸 수 있게 되는지 나에게 물어본다면 나는 이렇게 그사람에게 이야기 할 것 같다.

"축구를 글로 배우면, 다들 운동장에서도 축구를 잘 하게 될 수 있을까요?"


나는 교환학생에 합격하면서 그토록 바라던 새로운 세계의 문을 열었지만,

그 세계는 나랑 말이 통하지 않는 세계였다.

그 세계에서 나는 말 못하고 감정과 생각을 표현할 수 없는

옹알이를 반복하는 아기에 불과했다.


내가 페루에 도착해서 현지에서 지내던 집은, 외국인 10명이 함께 살던 다국적 하숙집이었다. 크게 두 동으로 만들어져있던 집은 각 방에 한명씩 지내던 집이었는데, 프랑스, 대만, 오스트리아, 체코, 독일, 미국, 포르투갈, 스페인, 그리고 한국까지 다양한 국적의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다.


다행이 이들과는 나의 짧은 영어가 통했지만, 스페인어로는 전혀 소통할 수 없었다. 그리고 같은 동양인으로써 나를 친절하게 맞아준 대만인 친구도 언어에 관해서만큼은 처음 본 날부터 나에게 아주 명확하게 경고 혹은 충고를 해 주었다.


"나는 여기에 스페인어를 공부하러 왔어, 그래서 나는 너에게 앞으로 영어를 하지 않을꺼야. 네가 필요한게 있다면 영어로 말은 할 수 있고 도와줄 수 있겠지만, 너도 스페인어를 쓰고 언어를 배워가야만 해."


나는 그날 이후로 나의 현실을 깨달았다.

그 집에 있던 모든 친구들이 기본적인 의사소통은 될 정도의 스페인어를 구사하고 있었던 것이다.


도착할 때만 해도 부풀었던 나의 마음은 이미 바람빠진 풍선이 되어 있었다.







나를 품어준 외국인 친구들



나는 스페인어로 말을 잘 하지 못했고, 겨우 몇 가지 표현을 하는 수준이었기에 처음 몇 달은 그저 아기처럼 친구들이 하는 말을 따라하며 겨우 대화를 이어갔다. 예를 들어서, 밥 먹었어? 라는 표현이 있다면 뒷 부분인 먹었어?만 그 자리에서 따라하는 방식이었다. 전체 문장도 아니고, 그냥 친구가 하는 말 중에서 내가 따라할 수 있는 부분만 따라하는 방식이었다.


당연하게 대화에 끼어들지 못했고, 말을 따라하거나 짧게 대답했다.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은 그냥 알아듣는 척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은근슬쩍 넘어가거나, 고개를 끄덕이던 날이 대부분이었다.


그런 울적한 날들임에도 불구하고 불구하고 나를 위로해주는 것들이 있었다. 친절하면서도 나에게 관심을 보여주는 친구들이었다.


도착 첫날부터 같은 아시아인으로써 처음 온 나에게 주변 슈퍼마켓을 소개시켜주고 엠빠나다 사먹는 법을 알게해주고 김치찌개를 좋아한다며 한국 내의 대만 이미지를 맨날 묻고, 스페인어 욕을 잘 구사하던 대만 친구.

나에게 항상 안부를 물어주고, 저녁을 같이 먹고, 같이 장을 보러 가고, 새로운 곳에 갈 때 항상 같이 가자고 제안해주던... 아주 예쁜 여자친구가 있어 동화 속 공주와 왕자같던 프랑스 친구 필립

본인들의 모교인 오클라호마 대학교를 너무나 좋아한 나머지, 오클라호마 응원가까지 나에게 알려주고 티셔츠도 안겨주며 오클라호마 사랑을 전파한 미국 친구들

아침마다 아보카도를 토스트에 발라서 소금과 후추를 뿌려먹으며, 천연 버터고 이거 원래 비싼거라면서 여기 있을때 많이 먹어야 한다고 알려준 체코 커플

남자친구 사귀기에 여념이 없었지만, 그래도 착하고 하얗던 독일의 크리스티나

집에 들어올 때마다 서로 이름을 부르며 같이 요리하고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들었던 라우라


아마 나는 그 집에 살지 않았더라면 스페인어는 커녕, 중남미에 대한 나쁜 기억만 가지고 돌아왔을지 모른다. 서양인들이 차갑다고 누가 말했던가. 그들도 케이스 바이 케이스이다. 정 많은 친구들을 만나서 주중에는 이야기를 나누고 같이 숙제를 하기도 했으며, 주말에는 살던 집에서 하우스파티를 열어서 다른 교환학생들을 초대해서 신나게 놀기도 했다.


그 친구들이 나에게 보여주던 관심의 표현은 모두 스페인어였고,

내가 그들에게 응하고, 표현하고, 감사하고, 좋아하던 이야기 또한 스페인어였다.

어떤 날들은 속상한 상황에서 내가 하고싶은 말을 다 하지 못해 너무나 억울한 날도 있었고,

어떤 날들은 의도하지 않은 친절함을 받아 마음이 깊이 따뜻해지기도 했다.


잘 하지 못하는 스페인어였지만, 모든 친구들은 나를 따뜻하게 품어주었다.







아기의 스페인어, 첫 웃음보가 터지다



그러던 어느 날, 다른 때와 다르지 않은 저녁 시간이었다. 우리는 항상 삼삼오오 모여 저녁을 만들어 먹고는 했다. 자리에서 한 친구가 농담을 했다. 다른 친구들이 웃음을 터뜨렸는데, 이상한 점이 있었다. 나도 그 순간 웃고 있었던 것이다. 그냥 분위기에 맞추어 따라 웃은 것이 아니었다. 그 농담이 무슨 뜻인지, 내가 이해하고 있다는 걸 스스로 깨달은 순간이었다.


그 순간의 기쁨은 지금도 아직 명확하게 내 안에 남아 있다. 사소한 농담과 웃음이었지만, 나에게는 시험 성적보다 더 큰 의미였다. ‘아, 이제 내가 스페인어로 사람들과 진짜 연결되었구나.’ 작은 웃음 하나가 내게는 큰 성취였다. 스페인어라는, 멀게만 느껴졌던 그 무언가가 어느새 성큼 나에게 가까워진 느낌이었다.


아기의 스페인어로 겨우 따라 하던 나는, 어느새 더 많은 문장을 말할 수 있었고, 친구들과도 더 깊은 대화를 나눴다. 보이지 않게 내 안에서, 시험 점수가 아닌 사람과 연결되는 언어가 자라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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