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를 무기로 다듬다 (2)

스페인어를 커리어로 연결하는 방법

by 데보라

교환학생 이후, 인턴십의 문을 열다



교환학생 시절, 스페인어로 울고 웃으며 많은 친구들을 만나고 여행했던 그 경험은 일시적 성취가 아니었다. 그 작은 연결이 이후 내 인생에서 수많은 문을 여는 열쇠가 되었다.


페루에서 교환학생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나는 원어민처럼은 아니었지만 나는 충분하게 스페인어를 다룰 수 있게 되었다. 마치 어린이가 축구를 흉내내다 드리블을 하고 싶어지는 것 처럼, 나는 스페인어로 커리어를 만들고 싶었다.


마침 정부에서 주관하는 해외인턴십 프로그램 지원공고를 발견했다. 3학년 전체를 외국에서 보냈고, 돌아와서 한 학기 학교를 다녔으니 이제 졸업까지 정말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 시점에서 나는 해외에서 인턴십을 하며, 어떤 기회들이 있는지 더 살펴보기로 했다.








경쟁은 다른사람들의 몫



스페인어는 나에게 든든한 무기가 되어 주었다. 해외에서 일을 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언어가 기본적인 조건이었다. 사실 대부분의 기업들이 영어가 되는 지원자들을 찾고 있었고 또 대다수의 지원자들이 영어만 구사가능한 학생들이 많았다.


그러나 나는 스페인어라는 무기를 가지고 있었다. 인턴십을 모집하는 업체들 중에서는 몇몇 업체가 스페인어권 업체들이었고, 나는 스페인어에다가 현지 거주경험까지 있었다. 언어 전공자들 사이에서도, 전공을 했더라도 스페인어를 잘 하지 못하는 친구들도 꽤 있었다. 나는 현지에서 처음 언어를 시작하다시피 했지만, 그만큼 백지였기 때문에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듯 언어를 흡수해서 자연스러운 스페인어를 구사할 수 있었고, 여기에 더해 현지에 체류했던 경험은 나만의 차별점이었다. 스페인어, 그리고 그것을 통해 얻은 현지 경험은 나에게 있어 경쟁을 줄여주는 방패이자, 새로운 문을 여는 열쇠였다.








아르헨티나, 또 다른 세계


내가 인턴십으로 파견될 곳은 아르헨티나였다.

룩셈부르크와 함께 한국인들에게 친숙한 이 나라는, 스페인어 학습자들 사이에서 악명 높은 나라이기도 하다. 말이 빠른 것을 넘어서서, 아르헨티나만의 독특한 억양이 스페인어 학습자들에게는 하나의 고비이기 때문이다. 문장이 노래처럼 오르내리고, 단어도 다른 나라와 달라 처음엔 거의 알아듣지 못했다. “이게 내가 배운 스페인어가 맞나?”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 낯섦은 결국 내가 구사하는 스페인어의 폭과 경험한 문화의 폭을 넓혀 주었다.

아르헨티나에 살면서 만난 아르헨티나 친구들은 아르헨티나에서 유명한게 피자와 파스타, 젤라또라고 하며 매우 자랑스러워 했다. 나는 '왜 이 친구들은 아르헨티나에서 이탈리아 음식을 자기들 문화처럼 자랑스러워 하는거지?' 항상 의아했었다. 하지만 점차 지내다보면서 이 사람들의 문화와 역사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아르헨티나는 예전 이탈리아 이민자들을 대거 받아들였고, 크게는 이들의 유럽 문화, 작게는 이탈리아 문화가 유행하며 이들의 먹고 마시는 문화가 빠르게 퍼져나갔다는 것. 게다가 아르헨티나에는 넓은 목초지도 있고, 일조량이 좋은 땅들도 넓으니 치즈나 와인을 생산하기에도 좋은 풍토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이탈리아의 많은 이민자들이 들어오면서, 그들이 가지고 있던 이탈리아어의 노래를 하는 듯한 억양은 아르헨티나 현지 스페인어에도 녹아들게 되었다. 또 이탈리아에서 많이 먹는 밀, 치즈를 이용한 파스타, 피자나 와인까지 쉽게 널리 퍼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한 역사와 문화가 아르헨티나에, 그리고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 하나하나 스며 있었다.


사실 언어를 배운다는 건 단순히 단어 하나하나를 배우고, 문법에 따라서 문장을 만들어내는 것 그 너머 아득히 더 큰 것이어야만 한다. 언어 속에 사람들의 역사가 있고, 사고방식이 있고, 정서가 있다. 언어적인 기술이 아니라, 그냥 세계의 질서 그 자체를 배우는 일인 것이다.







해외시장조사부터 영화배우까지

아르헨티나 인턴십을 하며, 내가 회사에서 맡은 일은 한국 기업들을 위한 현지 시장조사였다. 현지의 제품 브랜드를 조사하고, 시장부터 백화점까지 발로 뛰며 가격을 기록하는 단순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알게 되었다. "언어가 통하면, 나는 어떤 시장도 직접 뛸 수 있다"는 것을."


업무는 시장조사뿐만이 아니었다. 무역상담회 통역, 현지 기업 미팅 동행 등 실제 비즈니스의 최전선에서 언어를 무기로 뛰어야 했다. 어느 날은 모델 에이전시에서 한국인 캐스팅을 돕는 통역을 맡기도 했다. 그런데 분위기에 휩쓸려 카메라 앞에 섰다가, 엑스트라로 영화에 캐스팅되는 황당한 일까지 생겼다.


내가 캐스팅을 도왔던 영화의 감독은 중국계 아르헨티나인 이었다. 그래서 그는 아르헨티나 내의 아시안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를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그 안에서 고작 한 줄이었지만 주인공 친구역할로 대사를 하기도 했고, 또 다른 씬에서는 클럽에서 같이 노는 친구 역할로 음악에 맞춰 정말 노는 것 처럼 춤을 추기도 했다. (나는 클럽이라고는 몇 번 가보지 못했기 때문에 잘 놀지도, 춤을 잘 추지도 못한다. 그 때 생각을 하면 아직도 아찔하다.)


그렇지만 언어 덕분에, 스페인어 덕분에, 나는 교환학생에서 인턴으로, 때로는 영화촬영 환경 속에 캐스팅 어시스트로, 또 영화 속 인물로까지 무대를 옮겨 다닐 수 있었다. 처음 교환학생을 준비하며 스페인어가 열어준 기회는 그 것으로만 끝나지 않았다. 내가 배우며 살아 있는 언어는 계속해서 예상치 못한 문을 열어주고 있었다.







내가 배우는 언어가 나를 어디로 데려갈 수 있을까?



돌이켜보면 언어는 점수나 스펙으로 환산되는 것 그 자체만으로는 의미가 없었다. 내가 그것을 가지고 무엇을 해보고 싶고, 뭘 할 수 있고, 뭘 할 것인지가 더 중요했다. 새로운 무대로 나를 이끌어주는 길잡이이자, 열쇠였다.


그리고 그 열쇠는 꼭 영어일 필요도 없었다. 모두가 경쟁하는 언어 대신, 저는 스페인어라는 나만의 무기를 택했습니다. 그 선택은 경쟁을 줄여주었고, 대신 기회의 문을 더 크게 열어주었다.


중요한 건 완벽함이 아니었다. 나도 처음에는 아기의 옹알이처럼 스페인어를 했다. 남의 말을 따라하고, 이게 뭐야? 저게 뭐야? 만 겨우 물어보면서 그게 뭔지를 배웠다. 돌이켜보면 주변에서 많은 도움을 주었던 것 같아 운이 좋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그 옹알이를 하던 나는, 조금 커서 초등학생의 말을 하게 되고, 또 조금 커서 청소년의 스페인어를 구사하고, 이제는 결국 세상을 연결하는 통역도 하게 되었다.


언어는 시험 점수를 위한 도구가 아니라, 그저 이 세계에서 저 세계를 이어주는 문이자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무대의 초대장이었다.







작가의 이전글언어를 무기로 다듬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