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어로 취업, 일하기

스페인어로 취업하고 내가 했던 일들

by 데보라

언어로 일한다는 것



'저는 운이 좋게도 전공을 살려 스페인어로 일하게 되었어요.'



“저는 운이 좋게도 전공을 살려 스페인어로 일하게 되었어요.”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을 종종 만난다. 그런데 ‘스페인어로 일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다양한 의미를 가진다.


문서 번역만 하는 경우도 있고,

단순히 이메일로만 소통하는 경우도 있고,

고객을 직접 대면하며 프레젠테이션과 협상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같은 언어를 쓴다고 해도 강도와 양상은 완전히 다르다.


사회 초년생이던 나에게 주어진 환경은 운이 좋았다.

(전공자는 아니었지만) 스페인어를 직접 현장에서 다루는 업무를 맡을 수 있었고,

그 덕분에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다.








현장에서의 스페인어,

비행기는 나의 독서실



당시 회사에는 영어만 사용할 수 있는 팀장과,

스페인어를 조금은 하지만 능숙하지 못한 선배,

그리고 내가 있었다.


스페인/중남미 파트너들이 해외 비즈니스를 한다면

기본적인 영어 소통은 가능한 경우가 많기에,

대부분의 한국 회사는

스페인어 인력을 따로 두는 것은 효율적이지 않은 것으로 여긴다.


그렇지만 당시 환경에서는 중남미 쪽의 매출이 상당했고,

이 매출을 더 확장하고, 또 지원하기 위해서는

스페인어 인력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리고 운이 좋게도 그게 나였다.


어떻게 보면, 나밖에 없어

고생스러웠던 구조였던 것도 사실이지만

그만큼 기회는 많았다.


나는 회사에서 우리의 파트너사를 대상으로

수출하는 제품에 대해서,

새로운 시장에 대해서,

제품의 소프트웨어나 CS 처리에 대해서,

이런저런 이슈를 전달하고 해결해주는 해결사였고,

또 좋은 판매사례를 공유하며 세일즈 시도를 유도하는 코치이기도 했다.


매번 출장에서는

전시회장에 마련된 우리의 부스 안에서,

교수들과 석박사생이 소규모로 모인 작은 대학 강의실에서,

특정 협회의 협회장과 관련자들이 모인 협회장의 사무실에서,

전문가들이 모인 세미나실에서도,

새로운 가망 파트너사의 사장실에서,

혹은 200~300명이 모인 전문가들이 모인 대형 홀에서,


나는 제품의 활용처에 대해서 설명하고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Q&A 를 진행하며 진땀을 빼곤 했다.

한 국가를 대상으로 집중적으로 영업을 하는 프로젝트에서는

정말 대도시부터 소도시 6~7곳을 돌며

새벽 6시부터 저녁 7시까지 한 달이 넘도록 돌아다니고

호텔에서 뻗는 것이 일상이었다.


그랬기에 나에게 있어

비행기 안은 항상 공부하는 독서실이었다.

가기 전 목적에 따라서

발표자료를 붙들고 열심히 어떻게 말할지를 고민하고, 연습하고, 외우고, 또 연습하는

밤 늦도록 꺼지지 않는 공부방이었다.





때에 따라서는 매출이 잘 나오지 않는 특정 대리점과의 관계를 끝내기 위해

아주 어려운 이야기를 꺼냈어야 하기도 했고,

그들의 사정을 들어주고 다독여주며

법적 다툼으로 가지 않도록, 관계가 제발 잘 끝날 수 있게

기도하는 마음으로

살얼음을 걷는 마음으로

대화를 4시간씩이나 이어가기도 했다.


이런 일들을 하나하나 해 나가면서

분명 눈에 보이지는 않았지만,

영어만 할 수 있었던

다른 사람들과 중남미 측 파트너들의 관계보다

내가 나눌 수 있는 교감, 친밀도의 차이는 현격한 차이가 있었다.


중남미 파트너들은

팀장과 나의 사수에게는 하지 못한 이야기

혹은 하지 않을 이야기들도 들려주었고,

나를 친구처럼 여기기도 했다.


그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

그들과 통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말을 하는 것이 꼭 필요했고,

스페인어는 꼭 필요한 도구였던 것이다.








스페인어, 중남미 사람들의 마음을 선물받는 일



마음을 얻었다고 생각되는 것은

아주 가끔 어떤 사건들을 통해서 오기도 한다.


10년 전 쯤 남북한의 갈등이 약간 고조된 적이 있었다.

북한이 핵 도발을 하면서 남북관계가 급속도로 안좋아졌었고,

미사일이 계속 쏘아지고,

개성공단이 폐쇄되고,

해외 신문에서도 연일 남북한의 군사긴장을 이야기 하던 때였다.


그 당시

한국에 살던 내 외국 친구에게도

부모님이 전화해서 본국으로 돌아와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할 만큼

상황이 좋지 않은 적이 있었다.


연중 국제뉴스에 남북문제가 불거지던 그 때

아르헨티나 파트너사 사장에게서 하루는 메시지가 도착했다.

"보나, 혹시 한국 정말 괜찮은거 맞아?

정말 무슨 일이 일어나거나 하면

아르헨티나에 와서 우리 집에 머물러도 돼.

필요하다면 가족까지 같이 와 있어도 되니까

언제든 필요하면 말해."


사실 한국이 종종 그렇듯

한국사람에게는 북한과의 긴장상태가

크게 걱정되지는 않았기에

나는 괜찮다며 별일 아니라며 웃어넘겼지만,

연일 전세계가 남북전쟁을 우려하던

그 시기에 그가 보여주였던 진심어린 걱정은

10년이 지난 지금도 내 마음속에 따뜻하게 남아있다.









스페인어로 직업을 얻고 배운,

그 다음은?



나는

정말 처음에는 스페인어로 직업을, 커리어를 만들고 싶었다.


그런데 하다 보니,

지구 반대편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이 보였고,

무엇보다 많은 사장들을 직접 가까이에서 보면서,

우리가 그토록 쉽게 생각하던

제3세계,

중남미에 대한 선입견들도 결국 사람에 따라 다르다는 것도 깊이 배웠다.


중남미 사람들은

내가 열심히 하는 만큼

그들도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내가 마음을 보여주고 최선을 다하는 만큼,

나에게 마음 속 자리를 내어주고

그만큼 진심으로 나를 받아들여 주었다.


그들은 관계에 있어서는 한국사람들 보다 더 따뜻했고 자상했고,

한국 사람들보다 더 프로페셔널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는

이런 모든 것들을 배우고 느끼고 가능하게 해준

내 열쇠,

내 무기인 스페인어를

더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사람이고 싶었다.


내 무기를 더 날카롭게 벼르고,

필요한 적재적소에서

더 많은 것들을 이으면서

그렇게 쓰임받고 싶었다.


스페인어를 더 잘하고 싶었고,

그렇게 통번역대학원 진학을 마음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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