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시는 공기를 식히고, 맥락은 마음을 데운다

맥락으로 소통하기

by 데보라

리더가 하는 말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이 일을 해라”라는 지시와,
“우리가 왜 이 일을 해야 하는지”를 풀어내는 맥락이다.


지시는 일을 굴러가게 하지만, 맥락은 사람을 움직인다.
그리고 나는 그 차이를 경험으로 배워왔다.




리더가 되고 처음 몇 년 동안, 나는 딱딱한 리더였다.

용건만 간단히 말하고, 질문 있냐고 물어본 뒤 없으면 끝냈다.


특히 상부에서 급하게 떨어지는 지시는 더 그랬다.
나조차도 이해하기 어려운 지시라면,

설명은커녕 그냥 진행시키기 위해 ‘토스’하듯 전달할 수밖에 없었다.

“경영진의 방침입니다. 앞으로는 이렇게 진행하세요.”
그러면 방 안의 공기는 금세 싸늘해졌다.
질문도 사라지고, 대화도 끊겼다.


시간이 지나 리더 생활을 이어가면서, 그때의 내 모습을 돌아보게 되었다.
사실 나 역시 사회 초년생 시절, 늘 같은 질문을 품고 살지 않았던가.
“그걸 왜 그렇게 해야 하는데요?”




우리는 늘 '왜'를 찾는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어릴 때부터 줄곧 “왜”를 찾아왔다.
엄마가 집안일을 시키면, “엄마, 이거 왜 해야 돼?”
선생님이 이유 모를 과제를 내주면, “선생님, 이거 왜 해요?”
사춘기가 되면, “공부는 왜 해야 하지?” “대학은 왜 가야 하지?”라는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우리는 늘 이유를 찾았지만, 정작 그 답을 속 시원히 해주는 사람은 드물었다.
대부분은 이렇게 말했다.
“원래 다 그렇게 하는 거야.”
“묻지 말고 해.”


그러니 리더라면, 적어도 팀원들의 ‘왜’에 답을 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이 사실을 뼈저리게 느낀 건 인사평가 및 면담 때였다.
평가 자리에서 숫자와 등급만 전하면, 방 안의 공기가 확 식어버린다.

인사평가가 기분좋은 사람은 정말 몇 안되는데,

피면담자의 기분이 일단 좋지 않은 상황에서 시작하는 면담은

준비하는 것도 가장 어렵다.


"이번에 OO님의 평가가 이렇게 된 이유는..."

“목표 달성률이 80%밖에 안 됐네요.”

"이번 평가 등급은 N인데요, 상대평가로 O%만 최상위 평가를 받았고, ☆%는 상위, ◆%는 중위 ... 로 결정이 되었습니다. 이에 따른 연봉 인상률은 N%로 적용됩니다..."


이렇게만 말하면, 팀원은 성적표를 다시 낭독받는 기분만 남는다.

그 뒤에 아무리 "내년에 우리 잘 받을 수 있도록 A, B를 좀 더 보완해 봅시다"해도 기분은 나쁘다.


하지만 이렇게 말하면 달랐다.
“결과는 아쉬웠지만, 당신이 중간에 시도했던 방식이 다른 팀에도 아이디어가 됐어. 그게 다음 프로젝트에 큰 도움이 될 거야.”
같은 결과라도, 방 안의 공기가 서서히 풀리고 마음의 온도가 달라졌다.

팀원들이 몇 달 뒤에도 기억하는 건 늘 숫자가 아니었다.

그 사람의 가치를 알아봐주는 따뜻한 마음이었다.

“그때 팀을 살린 건 네 아이디어였어.”
“올해는 고생 많았어, 내년에 네가 맡으면 더 잘할 거야.”
이런 짧은 문장이 오랫동안 마음을 데우고, 사람을 움직였다.




오래 리더로 일한 사람들이 모든 구성원에게 지지를 받는 것은 아니다.
완벽한 리더도, 완벽한 인간도 없다.
100%의 지지를 파트원들에게 받을 수는 없다.

하지만 오래 일했다는 건, 오랫동안 조직을 이끌어올 수 있었던 원동력이 있었다는 의미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소통에서 찾았다.

초임 리더와 달리, 오래 살아남은 리더들에겐 몇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이건 나이와 경력에서만 나오는 게 아니라, 누구나 당장 따라할 수 있는 것들이다.




1. 잘 듣는다.
좋은 리더들은 “시간 없다”는 말을 쉽게 꺼내지 않는다.
불만이든 의견이든 끝까지 들어준다.
상대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마음속에 어떤 응어리가 있는지 귀를 열고 들어준다.
반대로 나쁜 리더들은 듣는 척하다가 자기 경험담으로 끌고 가거나 “그냥 이렇게 해라”로 끝내버린다.
그 순간 방 안의 공기는 또다시 식는다.


2. 잘 묻는다.
좋은 리더들은 대답을 주는 대신 질문을 던진다.
“OO님이 보기엔 어떤 것 같아요?”
“다시 해본다면 어떻게 하고 싶나요?”
질문은 상대를 생각하게 하고, 스스로 답을 찾게 만든다.


3. 잘 이야기한다.

듣기만 하고 묻기만 해서는 부족하다.
리더는 결국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좋은 리더는 지시 대신 맥락을 전한다.

“왜 이 일을 해야 하는가”,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가”를 반복해서 이야기한다.
차가운 지시 대신 따뜻한 이유가 쌓일 때, 사람들은 스스로 움직인다.




리더십은 결국 온도의 문제다.
지시는 공기를 식히지만, 맥락은 마음을 데운다.
오래 리더로 살아남은 사람들은 그 온도를 조절할 줄 아는 사람들이었다.

완벽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듣고, 묻고, 이야기할 줄 아는 리더.
그런 사람이 오래 살아남는다.
그리고 그런 리더에게서 우리는 따뜻한 이유를 듣는다.

같이 더 일하고 싶은 원동력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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