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점심도 혼자 샐러드로 때웠다면

점심 한 끼에서 시작되는 소소한 자기돌봄

by 데보라

시간을 아끼기 위해,

혹은 점심먹는 약속을 만들기 귀찮아서,

혼자 있고 싶어서 등등.


여러가지 이유로

나는 점심을 굶거나

책상 위에 삶은 계란 두 개와 아메리카노 한 잔으로 버티곤 했다.


점심에 맛있는 걸 먹고 행복해한다는 건
너무 사소하고, 보잘것없어 보였다.

점심으로 ‘소확행’한다는 말도 싫었다.


그저 점심시간은 혼자 쉬는 시간일 뿐.

점심시간에 수다를 떨며 기분을 풀고,
속상한 일을 털어놓는 건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파트원들에게 밥을 사줄 때조차
정성보다는 의무에 가까웠다.


나는 오직 성과와 효율,
큰 목표와 성취만을 추구했다.
작은 행복들은 일의 본질과 무관한 사치처럼 보였다.






나는 항상 큰 성취를 원했다.

실제로 성취를 많이 하기도 했다.

학위증, 동년배 대비 높은 연봉과 직책

좋은 사람과의 결혼,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바라는 서울 자가까지.


그럼에도 난 텅 비어있었다.

친구들과는 목표하는 바가 다르니 이야기가 잘 통하지 않았다.

동료들보다는 빠르게 승진하여 시기질투의 대상이 되어 있었다.

나조차도 같이가는 것 보다, 더 잘하는 모습만 보여주려고 애썼다.


하지만 결국 가장 행복하지 않은 것도 나였다.

나도 사람인데, 즐거움이 필요했고
속상할 땐 풀고 싶었고
누군가의 위로도 받고 싶었다.


그런데 내 안에는
나를 지켜줄 작은 장치가 하나도 없었다.

큰 목표만을 향하다 보니
숨쉴 곳 없는 삶을 살고 있었다.

하루 종일 말라버린 사람 같았다.


어느 날 퇴근길에는

이유 없이 눈물이 뚝뚝 흘러내렸다.

그제야 알았다.
나는 나를 지키지 않고 있었다는 것을.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리더는
후배나 부서원들의 문제를 해결해주고 이끌어주는 사람이었다.
지켜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만 믿었다.


그래서 오히려 반대방향은 생각치 못했다.

후배들이나 부서원들이
내 이야기를 들어줄 것을 기대하지 않았다.
기대하지 않으니 받을 수도 없었다.


“리더는 늘 주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나만의 고정관념이
나를 더 고립시켰던 것이다.


위로받고 싶을 때조차
입을 열지 못하는 자리.
스스로조차 자상함을 베풀 수 없는 자리.
나의 편협함과 폐쇄성은 나의 자리를 자꾸 섬으로 만들고만 있었다.







그때 눈에 들어온 건
직장 생활을 오래 해온 선배들의 모습이었다.


그들은 사람들과 정말 많이 이야기 했다.

많이 웃었고, 사람들과의 관계를 중요시했다.

점심을 소중히 여겼다.


맛있는 음식을 함께 즐기며

동료들과 웃고 떠들었다.
그 자리에서 속상한 일도 풀고,
잠시라도 충전할 여유를 챙겼다.


같은 리더급에서만 힘을 얻은 게 아니라
후배, 동료, 선배를 가리지 않고
누구와도 소소한 대화를 나누었다.


힘들어 보이는 사람이 있으면
“무슨 일 있어요?” 하고 다가가고,
뾰족한 해결책은 없어도 묵묵히 힘든 이야기 들어주었다.


그 작은 교감들이
그들을 오래 버티게 하는 힘이 되고 있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깨달았다.

그냥 앞만 보고

내 계획과 목표와 일만 보는게 다가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언젠가부터는

나도 점심을 꼭 챙겨 먹기 시작했다.


점심을 그냥 때우지 않고
꼭 ‘나를 위한 한 끼’를 먹을 수 있도록 했다.

작은 습관이었지만 위안이 컸다.


사람들과 약속을 잡고,

맛있는 것을 같이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서로 자기 이야기를 하고 또 들어주며

위로도 받고, 공감도 받았다.

혼자서는 버티기 힘든 마음이

그 자리에서 조금씩 풀려나갔다.


아마 그것이 사람들이 말했던 소확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점심 한 끼는

나를 위한 자기돌봄이자,
동료와의 관계를 이어주는 다리가 되어주었다.






나는 여전히 “소확행”이라는 단어에는
쉽게 고개가 끄덕여지지 않는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일상의 행복 없이

내가 바라던 큰 성취만으로 삶이 운영되지는 않는다.


우리가 직장을 다니며 오래 기억하는 순간들은

돌이켜보면 대단한 사건들이 아니다.


승진이나 연봉상승의 기쁨은 며칠 만에 휘발되지만,

나에게 고맙다며 남겨준 편지,

날 생각하며 고민한 선물,

마음을 터놓고 공감했던 대화,

힘들때 곁에서 묵묵히 위로해주던 얼굴이

더 오래 남는다.


작은 행복들이 쌓여야 멀리 갈 수 있다.


리더십도 마찬가지이다.

계획, 실행, 성취, 영향력... 모두 중요하지만

그걸 지탱하는 힘은 결국

나를 지켜내는 작은 습관,

사람들과 나누는 이야기와 관계 속 지혜다.


“오늘 점심 뭐 먹지?"

"오늘 점심 누구랑 먹지?”


사소해 보이는 이 작은 질문과 대답들은

어쩌면 내가 내 삶을 어떻게 지켜낼지를

보여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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