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무엇보다 달콤한 말, 나의 이름
몇 년 전, 대학원을 졸업하고 시간이 여유로웠을 때, 내가 가장 좋아하던 일은 자기계발서를 읽는 것이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마음에 남았던 책은 데일 카네기의 인간관계론. (너무 좋아서 몇 년 뒤에는 한국에서 데일 카네기 강의까지 찾아 들었다.)
책 속에는 이런 구절이 있었다.
“사람들에게 그 어떤 것보다 달콤한 말은 자기의 이름이다.”
이 말과 연결된,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 경험이 있다.
대학원 졸업 후 직원이 6천 명 정도 되는 건설감리 회사에서 일을 한 적이 있다. 여성 직원은 2%도 안 될 만큼 드물었고, 조직 문화는 수직적이고 보수적이었다.
내가 속한 부서의 부서장님은 평생 건설 현장에서 일하신, 이미 정년이 지난 60대 남성이었다.
회사를 막 적응해가던 무렵, 어느 날 부서장님이 내 이름의 한자를 물어보셨다. 대답했지만 별다른 반응 없이 돌아가셨다. 궁금했지만 그냥 넘겼다.
며칠 뒤 보고하러 갔을 때 조심스레 물었다.
“그때 제 이름 한자를 왜 물어보셨나요?”
그러자 부서장님은 파일함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셨다. 직원들의 이름이 한글과 한자로 빼곡히 적혀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름은 부모가 가장 좋은 한자와 뜻을 담아 지은 거야. 소중한 마음이 담겨 있으니 나도 그만큼 소중히 대하고 싶어서 기록해두는 거지.”
사내에서 그는 ‘빨간펜 할아버지’라 불렸다.
외부로 나가는 이메일은 토씨 하나까지 고쳐주시고, 회식 자리에서는 늘 누군가에게 건배사나 한마디를 시키곤 했다. 남자 직원들이 잘 보이려고 “사랑합니다!”, “아버지라 부르고 싶습니다!” 하고 외치는 장면도 흔했다.
그래서 나 역시 그저 권위적인 ‘꼰대’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름 이야기를 들으며 대화를 나눴을 때 느낀 진심은 전혀 달랐다.
그것은 장식이나 과장이 아니라, 한 사람을 대하는 존중이었다.
나는 크게 놀랐다.
중국 여행에서 일본인과 함께 투어를 한 적이 있다. 말은 잘 통하지 않았지만, 서로 이름을 물어보고 한자를 보여주며 뜻을 나누자 금세 교감이 생겼다.
또 같은 여행에서 만난 프랑스와 독일 친구들과는 통성명을 하다가 “서양 이름엔 별도의 뜻이 없어 아쉽다”는 이야기를 듣고, 오히려 우리가 가진 이름의 의미가 부러운 것일 수도 있겠구나 싶기도 했다.
가끔은 해외 바이어나 외국 친구들이 내가 영어 이름 대신 본명이 있다는 걸 알게 되면 “그럼 지금까지 부른 건 뭐야? 네 진짜 이름은 뭐야?” 하고 놀라곤 한다. 그러다 내 이름을 또박또박 불러준다.
“그렇게 어렵지 않은데?”
“원래 이름이 더 예쁘다.”
그럴 때마다 느낀다. 그냥 영어를 배우며 둘러대듯 만든 외국어 이름과, 내가 태어나면서부터 불려왔으며 내 존재의 소중함을 담은 이름의 무게감은 다르다는 것을.
그래서 점점 더 한자로 된 이름이 좋아진다. 누군가의 바람과 염원을 담고 있는 그 이름 말이다.
관계는 이름을 부르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친구나 직장 동료의 이름에 어떤 뜻이 담겨 있는지 알고 있는가?
그걸 대화의 주제로 삼아 보면, 예상치 못한 대답을 들을 수도 있고, 그 순간에만 만들어지는 특별한 라포가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그날, 당시의 부서장님을 새롭게 존경하게 되었던 것처럼,
한 사람 한 사람과 라포를 쌓아가는 것, 그것이 리더십의 중요한 덕목이 아닐까.
그래서 나도 사람들에게 묻는다.
당신의 이름은 어떤 뜻을 가지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