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에서 시작된 스페인어 여정
여행기는 항상 이유모를 카타르시스와 그리움을 불러 일으킨다.
전에 상상하지 못했던 것을 상상하게 하고고, 느끼게 하고, 그리워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어릴 때부터 나는 여행책을 참 좋아했다.
중학교 2학년 때는 프랑스에 빠져 학교 도서관에 있던 프랑스 책을 읽고 또 읽었다.
고등학교 때는 인터넷 여행기에 빠져, 모 사이트의 여행 게시판에 올라오는 연재 글들을 열심히 찾아 읽었다.
'언젠가 나도 갈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있었지만, 사실은 단순했다.
여행자들의 각각에서 본 내가 모르는 세상의 모습 하나하나 빠짐없이 모두 인상적이었다.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갱단과 소매치기,
인적이 드문 시골에서의 살 떨리는 히치하이킹,
만난 지 얼마 안된 여행자와 정이 들고 사랑에 빠졌다가, 각자의 길을 따라 금세 헤어져야 하는 야속함.
이보다 더 흥미로운 드라마가 있을까. 한 명의 여행자가 길 위에 서기만 해도, 매일 다른 사건과 사람들이 튀어나왔다. 같은 장소를 여행한다고 해도 여행자마다 각각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무료한 일상을 보내는 고등학생이었던 나에게 여행기는 놀라움 그 자체였다.
여행자가 곤경에 처하면 기꺼이 도와주는 따뜻한 사람들, 처음 본 외국인에게 밥 한끼를 서슴치 않고 베푸는 현지인, 한국에서 드러내지 못했던 흥을 춤과 음악 속에서 마음껏 터뜨리는 사람들.
그 자연스러운 모습, 그 자유스러운 모습에 나는 흠뻑 빠져들었다.
오지여행기는 특히 좋았다. 찰리의 자전거 세계여행기는 정말 열심히 읽었던 기억이 있다. 2007년부터 7년간 자전거를 육로로 여행하던 사람인데, 그 당시에 홈페이지를 만들어서 본인의 여행기를 틈틈히 홈페이지에 올렸다. 나는 학교 야자가 끝나면, 그 홈페이지를 찾아가 새벽마다 읽고 잠을 청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시간이 많이 흐른 후에, 내가 아르헨티나에서 생활하던 때 같은 교회에서 만나 사진을 찍고 이야기를 나누며 성덕이 되기도 했다)
그렇게 글로 수많은 여행자를 만났다. 아프리카, 중남미, 중국, 동남아시아 국가들, 미국대륙 횡단/종단, 캐나다, 유럽 다양한 국가들... 여행가지로 가보지 못한 곳은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언제나 내 마음을 강하게 잡아끈 것은 중남미였다. 자연스럽게 생각했다. '스페인어'를 공부해야겠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그저 스페인어를 그냥 공부하고 싶었다. 언젠가는 나도 중남미에서 그 사람들처럼 여행하고, 자유로움과 즐거움, 흥겨움을 온몸으로 느껴보고 싶었다. 스페인어가 그 길을 열어줄 것만 같았다.
그리고 돌이켜보면, 실제로도 그랬다.
스페인어는 내 꿈을 이루어주었다.
스페인어는 나를 스페인과 중남미로 이끌었다.
태평양의 펭귄이 가득한 작은 섬과 아직도 화산활동을 하고 있는 코스타리카의 빨간 활화산, 해발 7,000m의 안데스를 넘기도 했고, 마추픽추와 빙하, 끝없는 사막도 지나왔다.
별빛이 쏟아지는 페루의 고산지대, 칠레 아타카마의 황량한 사막, 하늘을 비추는 거울 같은 볼리비아의 소금사막과 잉카의 도시 마추픽추.
브라질 코파카바나의 초호화 호텔과 요트가 넘치는 해변, 아르헨티나 북쪽 작은 마을에서 젊은 집시들이 춤추고 노래하는 모습, 부에노스아이레스 밀롱가에서 남녀가 얼굴이 맞닿을 듯 춤을 추던 순간, 코스타리카의 평화로운 바다와 멕시코 북부 공대의 강의실까지.
스페인어는 나를 생각치도 못했던 장소로 데려갔다.
또, 스페인어는 나를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교차점으로 세웠다. 길거리 악사부터 K-pop 가수, 부랑자부터 의사와 교수, 직장인과 사업가까지 많은 장소에서 많은 사람을 만나며, 모두에게서 한 점씩 배우고 성장했다.
그러니 나에게는 스페인어가 희로애락을 일깨워준 선생님이었고, 나는 한국어를 쓸 때와는 또 다른 자아를 만났다.
노래가 흘러나오면 기꺼이 나가 춤을 추는 나,
친구가 기타반주를 하면, 그 자리에서 즉흥으로 노래부르는 나,
친구들과 새로운 곳을 탐험하며 들뜬 나,
새로운 음식을 맛보며 신기해하고,
또 그걸 배워서 누군가와 함께 먹고 나누는 나,
친구들에게 좋은 일이 있으면 누구보다 크게 기뻐하고,
슬픈 일이 있으면 다가가 안아주던 나.
한국어로는 망설이던 다정한 말들이, 스페인어로는 따뜻하게 흘러나왔다.
돌이켜보면, 스페인어를 배운다는 건 나의 자아를 확장하는 일이었다.
기존과는 다른 나로 세상을 체험하고,
기존과는 다른 용기로 도전하고, 깨지고, 배우고, 성취하는 과정이었다.
스페인어를 배우며,
언어를 넘어 또 다른 나를 배웠다.
이 여정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