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 첫 두달, 나는 이렇게 살았다.

빽빽한 시간표와 이상하게 잔잔한 하루

by 데보라

휴직을 낸 뒤, 한동안 바쁘게 지냈다.


회사에 다니기 전에도 혼자 있을 때면, 홍길동처럼 한국 이곳저곳을 떠돌며 지내곤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회사에 다니는 동안에는 늘 바쁘고 ‘내 시간’은 별로 없었다. 휴가를 내고 여행을 가도 메일을 처리하고, 영상회의를 하고는 했다. 모처럼의 휴일도 일이었고, 일상도 일이었다.


쉬는 것이 익숙하지 않았고, 너무 꽉 차있던 시간을 진공상태로 만드는 휴직. 그래서 잠시 동안의 멈춤을 결정하면서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다


‘나를 위해 휴직을 내지만, 그 시간을 그저 흘려보내면 어쩌지?’


그 불안 때문에, 나는 휴직 신청을 하기 전부터 일정표를 빼곡하게 채워 두었다. 듣고 싶었던 수업, 미뤄두었던 글쓰기, 시작해 보고 싶었던 운동들을 전부 끌어모았다.


그 덕분에, 하루에 열두 시간 가까이 투입하던 회사를 떠났는데도, 내 하루는 여전히 꽉 차있었다.


친구들은 내 얘기를 듣고 혀를 내둘렀다.

“그렇게까지 해야 돼? 그냥 집에서 좀 쉬어.”


한 두 주 정도는 별 일 없이 쉬어보기도 했다. 하지만 각자에 맞는 방식은 다 다르다는 걸 알았다.


누군가는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집에 있는 것이 휴식이 될 수 있었지만, 나에게 그 방식은 잘 맞지 않았다.


오히려 계속 집-회사만을 반복하며 갇혀있던 나의 정신을 새로운 환경에서 다양한 것을 접할 수 있도록 풀어주는 것이 좋았다.


내 몸과 정신이 자유롭게 뛰어다니는 느낌이 좋았고, 새로운 환경을 반기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하면서 쉬는 것이 더 잘 맞는 편인 것이다. 그러니 휴식이라는 건, 누구에게나 다 다른 방식으로 존재할 것이다.




두 달간의 일정을 정리해 보면 이렇다.

월요일: 플라멩코 수업

화요일: 필라테스

수요일: 출판 편집 수업, 월 1회 독서모임, 명상 수업

목요일: 출판 글쓰기 수업, 오디오북 낭독 수업

금요일: 병원 방문

토요일: 필라테스

일요일: 철학 수업, 격주 이북 출판 모임 온라인으로 하는 글쓰기 모임이 하나 더 있었다.


이 일정의 사이사이에는 도서관, 구청, 청년센터, 여성센터에서 하는 각종 특강도 눈에 띄면 일단 신청했다.


개인 브랜딩 강의도 있었고, 몸을 쓰는 춤 수업도 장르별로 들었다. 처음 락킹을 배우기도 했다. 이런 건 유튜브 속 영상으로만 존재하는 세계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내 몸으로 해볼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시간이 맞으면 미술관에도 갔다.
대단한 미술애호가도 아니고, 취향을 가진 것도 아니었다. 계획 없이, 그저 눈길과 발길이 닿는 대로 전시를 골랐다.


시간이 많으면 먼 미술관에, 시간이 없으면 없는대로 가까운 미술관을 찾았다.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해설을 들으며, 한 그림 앞에 한참 서 있기도 했다. 그렇게 새로운 자극을 받아들이는 데 시간을 썼다.


꼬박 두 달 정도를 그렇게 보냈다.
글로 써 놓고 보니, 누군가는 정말로 “휴직해 놓고 왜 이렇게까지 바쁘게 사냐”는 말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 일상은 이상하리만큼 잔잔했다. 진심으로 잔잔하고 평화로웠다.


회사 메신저 알림도, 긴급 보고도, 누군가의 기분을 더듬으며 눈치를 보는 일도 없었다.


그제야 처음으로 알았다.

“단순히 일정이 많은 것으로 바쁜 것”과 “계속 외부에서 만들어진 자극이나 일정, 스트레스로 바쁜 것”은 완전히 다른 종류의 피로라는 걸.


몸은 여전히 바빴지만, 마음은 처음으로 조용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조용한 틈 사이로, 이런 질문이 서서히 올라왔다.


“이전의 나는 도대체 뭐에 쫓기며 살았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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