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추고 나서야 보이는 것들
휴직 두 달하고도 2주가 지났다.
그 시간동안 나의 생각도, 감정 상태도 조금씩 가랑비 젖듯 변해서, 지금은 처음의 상태와 많이 달라진 것 같다. 무엇보다 많이 유연해 졌다.
사실 나의 가장 큰 문제는, 나의 목표를 항상 외부의 인정에 맞춰 두고 살았다는 데 있었다.
누가 나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조직에서 내가 얼마나 ‘유능한 사람’으로 보이는지가 중요했다.
상사의 표정, 말투, 회의에서의 한 줄 코멘트, 직원들의 불만에 따라 하루 컨디션이 널뛰기할 때도 많았다.
그냥 ‘직장 생활이란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휴직 후의 일상은 그런 일상과 당연함을 점차 흐릿하게 만들었다.
플라멩코 수업에서 박자를 틀려도, 필라테스 동작이 안 돼도, 누가 나를 평가하지 않는다.
글을 써도 당장 실적이 되지 않고, 철학 수업을 들어도 승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그 시간들이 좋았다.
그저 그곳에 내가 있는 것이 좋았고,
내가 그 시간을 보내며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좋았다.
평온한 하루하루를 보내며, 어느 순간 문득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왜 그렇게 상사의 생각을 맞추려고 애썼지?
왜 그들의 별것 아닌 반응 하나에 연연하면서 괴로워했지?
왜 내 기분과 내 시간, 내 삶의 고삐를 그렇게 쉽게 넘겨줬지?
솔직하게 말하면, 지금도 명확한 답은 잘 모르겠다.
다만 하나 분명한 건, 모든 선택이 결국 내 선택이었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내 선택이지만, 안타깝게도 '분별 없는' 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사실 아주 진지하게 인생에서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것을 고민하고, 찾아내고,
그것을 발전시키는 일은 사실 굉장히 큰 에너지가 드는 일이다.
내가 살아왔던 관성을 송두리째 바꾸어야 하고, 아주 큰 몰입이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가장 크고 중요한 '나의 삶 프로젝트'는 외면한 채로,
결국 내가 가진 스펙과 경력을 기준으로
연봉과 타이틀을 조금이라도 더 올려주는 곳을 선택해 왔다.
그 환경이 나에게 척박하든 그렇지 않든, 한 푼이라도 더 내 값을 쳐주는 곳을 선택하며
그렇게 분별 없이 삶을 선택해 왔고, 그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만 노력했다.
결론적으로 보면, 나는 나의 인생 결정기준을 '돈으로 삼고' 그 평가기준 자체를 외부에 넘긴 것이다.
그래서
“회사에서 시키니까”,
“어쩔 수 없으니까”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지만,
실은 나는 꽤 오랫동안 나 자신에게, 혹은 내 인생 전체를 분별 없이 대해 온 셈이다.
그리고 착각하며 살았다.
회사에서 시키는 대로 사는 삶을 ‘내가 선택한 삶’이라고 착각하며 살고 있었다.
평소대로 그저 일상을 보냈더라면 나는 휴직을 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 회사에서 여러가지 사건들이 없었더라면, 나는 스스로 멈추지 못했을 것이 분명하다. 억지로 브레이크가 잡히고, 휴직이라는 제도로 겨우 멈춰 서고 나서야 뒤를 돌아볼 수 있었다.
살아남으려고, 인정받고 싶어서, 뒤처지기 싫어서
계속해서 스스로를 몰아붙이던 내 모습이 보였다.
그 장면을 떠올리자 옅은 연민과 함께, 묵직한 안타까움이 올라왔다.
“그렇게까지 안 해도 됐는데.”
라는 마음이 뒤늦게 들었다.
그리고 동시에, 지금 누리고 있는 일상이 고마워졌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지각할까 봐 서둘러 씻고
겨우겨우 바쁜 출근길을 나서는 삶은 더 이상 없었다.
아침에 알람없이 기분좋게 햇빛을 받으며 잠을 깨고,
환기를 시키면서 차를 한잔 내리고,
아침일기를 쓰며 어제의 생각과 오늘 할일을 정리하고,
내가 선택한 수업과 모임으로 일정을 채우고,
한강이 보이는 창가에서 글을 쓰고 책을 읽는 일상.
말 그대로, 전이라면 상상도 못했던 '비현실적인'시간들을 보내고 있다.
내 이야기를 듣던 친구도 내게 한마디 했다.
“너 그러다 다시 회사 못 돌아가는 거 아니야?”
그 말도 사실 현실적으로는 맞는 걱정이다.
현실을 전혀 걱정하고 있지 않는 것도 아니다. 누구보다 더 걱정한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그동안 돌봐주지 못했던 ‘나 자신’을 돌보는 시간은 필요하다.
‘나 자신’이라는 프로젝트를 처음부터 다시 살펴보고 방향을 조정하는 것은,
내가 전부 무너지고 나면 절대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출근하는 삶에는 지각이 있다.
정해진 시간을 팔고 돈을 받는 교환행위를 약속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인의 삶에는 지각이라는 개념이 없다.
우리는 태어날 때 인생을 바쳐 교환할 대상을 계약하지 않는다.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태어난 사람은 없다.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굳은 목표를 세우고, 인생을 갈아넣는 사람들은 있겠지만
설령 그렇다 해도,
'몇 살까지 무엇을 이루겠다'는 식으로 정확한 기한을 정해놓고 사는 사람도 드물고,
인생의 변수를 전혀 맞지 않고 그대로 살기도 어려운 일일 것이다.
사실은, 그냥 살아가면 그뿐인지도 모른다.
개인이 회사에 다시 돌아가든, 돌아가지 않든,
헤매다 늦게 돌아가서 돈을 벌든.
혹은 회사 밖에서 돈을 버는 선택을 하든.
그것이 누군가의 전체 인생 관점에서 볼 때
'지각'이라고, '낙오'라고, '저성과'라고 단순히 평가될 수 있는 일일까?
각자의 시간은 모두 다르다.
내 시간을 타인의 시간표에 맞추어 평가할 필요는 없다.
외부의 걱정은 그 사람 기준에서 타당하다. 하지만 그 평가 기준은 그 사람 인생좌표에서 나온 것이다.
타인의 우려는,
그게 일반적인 패턴을 잘 짚고 있다면 참고할 만한 가치가 있다.
하지만 매번 외부의 기준이나 타인의 시간을 기준으로 나를 재단한다면, 일반적으로/통계적으로 맞는 선택을 할 수 있어도 나를 100% 위하는 결정, 내가 행복해지는 결정, 혹은 후회하지 않는 결정을 해낼수는 없다.
그 결정으로 인해 펼쳐지는 인생을 살아가는 것은
온전히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1. 남들이 이야기하는 일반적인 원칙은 나에게 100% 맞는 결과를 가져다주지 않는다.
2. 절대적인 시간 개념은 없다. 모두가 다른 시간을 살아간다.
나는 내 삶에 "잠시 멈춤"이라는 휴식을 주고,
이 두가지 원칙을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