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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노 Jul 02. 2024

나에게도 기회를 줄 수 있니

누구를 용서해야 할까



얼마 전, 정서적 외도가 3번째인 남편이 말했다.

"한 번만 기회를 줘..."



이번엔 정말 끝이야. 더 이상은 봐줄 수 없다고 생각한 지 일주일 후, 나는 또 기회를 주었다. 

또다시 숨은 패배자라고 나 자신을 욕했다. 

하지만 나는 남편에게 기회를 준 것이 아니다.

이번에 내가 용서하고 기회를 준 건 바로 나 자신이다.



나는 나를 채찍질하며 사는 편이다. 쉽게 포기하는 게으름뱅이인 나는, 사회화 과정을 거치며 늘 자신을 학대하는 사람이 되었다. 일을 할 때 나 자신에게 냉혹할수록 결과는 좋았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다. 나 하나만을 믿고 이 세상에 나온 아이에게 좋은 엄마가 되고 싶었다. 남편과의 사이는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는 세 번이나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의지했고, 그때마다 밀려오는 배신감에 나는 그를 미워했다가, 이내 나 자신을 탓했다. 이혼도 하지 못하는 겁쟁이가 되어버린 지금의 나를 누군가는 패배자라고 부를지도 모르겠다.


내가 놓인 현실의 초라함에 눈물을 흘리다 나는 문득 깨달았다. 놀랍게도 내가 아이가 아닌 가족, 특히 우리 부부를 위해 노력한 건 없었다.

결혼 전 아이가 생긴 우리는 허둥지둥 부모가 되었다. 나는 하루종일 아기에게 시달렸던 탓에 파김치가 되어 퇴근한 남편에게 다정하지 못했고, 힘든 나와 아기를 제대로 돌보지 않는 남편에게 냉정해졌다.


일을 참 열심히 하는 나의 남편은 저녁에 집에 들어와서도 즐겁지 않았을 것 같다. 나는 아이에게 깊이 몰두하여 남편의 허전한 마음을 들여다볼 여유가 없었다. 심지어 나는 육아동지인 남편에게 나 자신에게 하듯 엄격한 잣대를 들이밀었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것을 강요했고 당연하게 여겼다. 사랑은 이미 사치였다. '아이가 우리에게 1순위인데 그거 말고 중요한 게 있어?'라고 생각하며. 그렇게 10년.


그러나 사람 사이에 당연한 게 어디 있겠는가.

이 사람이 나에게 의지하지 못한다는 건, 내가 그럴 틈을 주지 않았다는 걸 나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그저 기대지 않는 남편만을 탓할 뿐이었다.



어떤 관계에서든 일방적인 것은 없다. 가깝지 않은 사람일수록 유쾌해지는 나의 모습을 생각했을 때, 내가 얼마나 이 가정을 지키는 데 냉소적이었을지 떠올려볼 수 있다. 타인보다 '내 사람'에게 더 애정을 쏟아야 함을 몰랐던 것은 아닌데, 곪고 곪아 문제가 터지고 나서야 나는 그 심각성을 깨달았다.


누군가 잘못을 인정하고 진심으로 사과했을 때 용서하고 기회를 줄 수 있다면,

나 자신에게도 그렇게 할 수 있을까?

나를 가장 많이 사랑해야 하는 사람이 나라면 나에게도 일을 바로잡을 시간을 주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나에게 기회를 주고 싶다.

내가 이 가정을 잘 지켜나갈 기회.

완벽하지는 않지만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는 부부가 될 기회.

그리고 우리의 아이에게도 서로 사랑하는 엄마아빠로 보일 수 있는 기회.



노력해 보지도 않고 포기하는 건, 너무 아깝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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