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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수아 Apr 19. 2022

교복의 길이

둘째 보석과의 사랑싸움

나는 선택한다. 내 치마 길이를!


봄날이 따뜻해지면서 교복도 동복에서 하복으로 갈아입어야 하는 시점이 되었다.

겨울 내내 입던 동복 치마와 재킷을 세탁해서 넣어두고 하복을 입기 편하게 걸어두었는데..

"엄마. 치마를 줄여야 할 것 같아."

"왜? 지금 딱 좋은데?"

"엄마... 내가 우리 반에서 치마 제일 길거든? "

"엄마 너네 반 안 가봤으니 근거 없는 이야기 말고.. 교복 할 때 딱 그 길이로 한번 줄인거잔아. 또 줄이면 똥꼬 치마되서 불편하다니까?"

"그때도 한 사이즈 큰 거 하는 바람에 원래보다 더 길었다고. "

이러쿵저러쿵 설득과 훈계, 그리고 걱정을 섞어 으름짱과 회유를 해보았지만 어림없다.

본인이 추구하는 미에 관한 한 확고한 고집이 있는 작은 녀석.

큰 녀석에 비해 고집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입고, 먹는 부분에 있어선 양보가 없는 편.

"얼마나 줄이려고?"  
교복을 입고 전신 거울에서 이리저리 치마를 뒤로 보고 숙여보고 하더니 엉덩이 딱 밑에 부분을 짚는다.
" 헐.. 그렇게 줄이면 숙였는데 , 계단 올라갈 때 다 보일 텐데.. 엄마는 보여도 자신 있게 다니면 암말 안 하는데 

엉덩이까지 줄여놓고 교복 벌어질까 치맛단 잡고 종종 걸어 다니는 친구들 보면 쫌 별로다 싶던데?"

"엄마. 나 그렇게 까지 안 줄여. 봐봐. 이건 아주 평균 수준이야."


평균 수준..

그래. 인정.  내 생각에도 거리에 있는 중 고등학생들의 치마 길이는 대체로 내 눈에 짧은 편이니

우리 집 고등학생과 중학생은 그 '대부분'에 속하지 않는다.

그나마 고등학생은 중학생 때 본인의 치마가 예고의 플레어스커트만큼이나 무릎과 가까웠다며 처음부터 딱 길이를 정해서 말도 못 꺼내게 했는데.. 입학할 때 고분고분 그러려니 했던 중학생은 2학년이 되어서 자기 목소리는 낸다. 못마땅해서 침착함을 끝까지 유지 못했지만 자기 전에 누워 생각하니 결국 내가 못하게 하면 학교 화장실에 가서 허리단을 접어서 입고 말 텐데 아이를 죄책감에 들게 만드는 그런 어른이 되진 말자는 자각과

이왕 하고 싶은걸 기분 좋게 허락해 주지 못하는 내 옹졸한 마음에 대한 자책이 뒤섞여 뒤척이는 밤을 보내고 말았다. 


스스로 결정하고 선택한 순간들이 모여 '나'를 만든다.


이런저런 합리적 이유 (완전 내 입장에서)를 들어 좋게 이야기를 시작해도,  나라는 엄마는 결국

"그래. 네 맘대로 해. 엄마가 걱정해도 그렇게 하고 싶으면 어쩌겠어!" 하며 어른스럽지 못한 일갈을 한 후

성찰과 반성의 시간을 갖고 은근 엄마의 걱정을 접수해서 한 발 뒤로 물러서길 기다리지만 

사춘기로 접어들고부터 큰 녀석, 작은 녀석과의 주도권 다툼에서 나는 번번이 지고 만다.

왜냐면 스스로 선택해야 나중에 그 책임의 전가를 남에게서 찾지 않고 스스로 온전히 감수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나 역시 내 엄마 아빠와 그 시절에 겪어 왔고..




다행인지 불행인지 어릴 적 나를 비롯한 내 동생들 즉 우리 세 자매는 일찍 엄마가 돌아가신 이후  

아빠의 전폭적인 지지와 절대적인 믿음 하에 대부분의 결정에 스스로의 선택이 존중받는 성장기를 보냈다.

그러다 보니 사춘기에 만난 지금의 엄마는 버거운 세 딸들의 선택에 어떤 결정권이 있다기보다 의견을 내거나 조심스러운 염려를 더할 뿐 아빠의 넘치는 사랑과 믿음으로 자존감이 뿜 뿜인 조숙한 큰 딸에게 뭘 하지 마라, 뭘 해라 하는 강요와 금지는 전혀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대에 부응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엄마를 잃은 아빠의 슬픔을 우리는 각자 열심히 공부하고 할 일을 하는 것으로 기쁨을 드렸고 아빠는 착하고 똑똑한 세 자매를 키우는데 자부심과 보람을 느끼셨으니까.

조숙하면서도 철이 일찍 든 아이들은 기대에 부응한 착한 아이 연기를 잘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빠의 절대적 지지와 엄마의 어쩔 수 없는 방임 아닌 방임은 나를 한 없이 자유롭게 만들어서 자라면서 주장이 확실하고 내 의견을 말하는데 주저함이 없는 한 성격을 만든 원동력이 됐다고 생각한다.

이런 나 이기에 더욱이 아이들에게 경험에 비춘 염려와 이런저런 예시를 들어 반박을 할 순 있어도

아이들이 무엇을 원하고 선택하면 그 결정을 '선뜻'은 아니지만 '결국'에는 존중해준다.

내 고집이 가끔 지나쳐 아이들에게 상처뿐인 승리를 주는 일도 심심치 않아서

그 후에는 꼭 폭풍 같은 후회와 성찰의 시간을 거쳐 모양 빠지는 사과를 하기도 하지만 말이다.

어쩌겠는가? 나도 수없이 엄마 아빠와 상처를 주고받으며 이렇게 엄마가 되었지만 

엄마는 처음인걸. 다만 솔직하게 미숙한 엄마임을 자백하고 아이의 상처를 보듬어주는 것이 최선임을 안다.




2cm를 줄인 치마를 가져온 날 좋아서 입고는 이렇게 돌아보고 저렇게 포즈 잡는 둘째 녀석을 보니

웃음이 절로 나온다.

그리고 한 마디 했다.

"필요한 옷은 엄마가 사주지만 치마 줄이는 건 반드시 필요한 비용이 아니어서 네 용돈에서 내야 하는 거 알지?"

ㅎㅎㅎ 그 입꼬리가 축 쳐지는 한 순간!

좀 고소한 건 안 비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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