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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볼파란 Jan 25. 2021

나의 문어 선생님

8개 다리만큼 유연하고 아름다운 삶


사실 처음엔 제목 보고 피식, 웃음이 났다.

문어 하면 몇 년 전 월드컵 승리 팀 맞추던 예측률 100%라는 문어 밖에 생각이 안 났다. 점쟁이 문어 같은 건가. 게다가 어제 난 문어의 사촌 격인 낚지 볶음도 해 먹었던 터다. 낚지나 문어나.. 암튼, 제목만 봤더라면 패스했겠지만 잠들기 전 멋진 바닷속 그림 보는 게 어딘가 싶어서 플레이했다. 푹신한 베개에 머리를 묻고 잠들 준비를 마치고 보기 시작한 이 다큐멘터리는 그러나.. 끝날 땐 일어나 앉아 펑펑 울면서 끝나게 된다.


문어가 나를 울릴 줄이야. 정말 예상도 못한 부분에서 눈물이 터지기 시작해서 끝나고도 한참이나 휴지로 마음을 진정시켜야 했다. 나만 이렇게 운 건 아닌가 싶어 검색해 봤더니.. 다행히 나만 운건 아니었다 보다.


삶에 지친 영화감독 포스터는 고향인 남아프리카 해변으로 돌아온다. 어린 시절 기억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푸른빛 바다, 다시마 숲 속을 매일 나가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한 마리 문어를 만나게 된다. 문어가 이토록 신비로운 생물인 줄 미처 알지 못했다. 극도로 예민하고 조심스러운 만큼 알려지지 않은 것들이 너무 많다. 혹은 내가 알고 싶지도 않아서 찾아볼 생각도 안 했던 사실들 말이다.


문어는 바닷속의 카멜레온 같다. 시시각각 보호색으로 변신할 줄 안다. 환경에 맞춰 변하는 모습을 보자니 그 옛날 중국의 변검을 보는 것처럼 감탄이 절로 나온다. 또 문어는 숨기의 달인이다. 주위에 있는 조개껍질을 잔뜩 주워다가 온 몸을 감싸 위장하기도 한다. 도구를 이용할 줄 아는 문어는 똑똑하다. 지능이 개나 고양이 정도 된다는 사실을 미처 알지 못했다. 그러니까 월드컵 예측도 그냥 한 게 아닐지도 몰라.


또 문어는 완벽한 몸을 가졌다. 나중에 상어에게 공격을 당해 다리 하나가 잘려 나가는데 그 다리가 몇 달안에 완벽하게 자라나 온다. 놀라운 복원 능력이다. 그 옛날 학교에서 잘라낸 플라나리아 재생 실험을 했던 기억이 났다. 불로장생의 유전자 연구도 해양생물을 통한 연구가 많다더니. 바닷속 생물들은 알면 알수록 놀라운 존재들이다.


내가 문어에게 빠져드는 만큼 주인공 포스터도 매일같이 바다에 나가 문어와 교감을 나누기에 이른다. 늘 숨기 바빴던 문어가 자신의 손을 내밀어 빨판을 통해 조심스럽게 포스터의 몸을 탐색하던 장면은 영화 ET만큼의 감동과 소름이 돋았다. 정말이다. 근래 봤던 장면 중에서 가장 멋진 장면이었다.


이 장면은 이미 많이 친해진 뒤다


한 번 안면을 튼 둘은 빠르게 친해져 간다. 문어가 사람을 기억하고 강아지처럼 졸졸 따라다니는 게 신기한 일이었다. 물론 문어에게도 시련이 닥쳐온다. 문어의 삶에 웬만한 희로애락이 담겨 있다. 액션, 로맨스, 서스펜스, 감동...


일 년 동안 문어와 교감하며 누구보다 문어에 대해 공부한 포스터는 어느 날 문어가 다른 문어와 짝짓기를 하는 걸 보고 만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직감하게 된다. 문어는 알을 산란한  이후부터 먹지 않고 굴 안에서 나오지 않는다. 새끼가 태어날 때까지 아무것도 먹지 않고 알을 돌본다. 문어와 포스터의 마지막은...



이때쯤 되어 나는 앉은 채로 코를 풀기 바빴다. 사실 눈물이 터지기 시작한 건 훨씬 전부터다. 문어가 먹기 위해 사냥을 하는 게 아닌 작은 고기떼와 놀 때였다. 다리를 여기저기 뻗으며 고기 떼 사이를 돌아다니며 춤을 추듯 노는 장면이었다. 왜 그랬을까. 왜 그 장면에서 눈물이 났을까. 그저 본능적인 삶이라고 고통도 없는 삶이라고 생각했던 한 작은 생물의 삶에도 희로애락이 있었다. 평화롭게 놀 때도 있었고, 상어에 쫓겨 긴박한 순간도 있었고, 커다란 인간 친구를 사귀어 호기심에 탐색하던 때도 있었고, 사랑을 나눌 때도 있었고, 알을 산란하고 어미가 될 때도 있었다.


원래 존재란 그런 것이다. 이름을 불러주기 까지는 몸짓에 지나지 않아도 이름을 불러주면 꽃이 되고, 어린 왕자가 매일 같은 시각에 나가 여우를 길들였던 것처럼 길들여지게 되는 것이다. 그건 또 다르게 보면 이젠 나에게는 떨어질 수 없는 존재가 되는 것이고 관계가 생겨나는 것이라 가슴이 아프기도 하고 눈물이 나기도 하는 것이다.


포스터에게는 아마도 문어가 그런 존재였을 거다. 그래서 이런 제목을 쓸 수 있었겠지.  나의 문어 선생님이라고. 실제로 이분은 현재 남아프리카 바다를 깨끗하게 보존하기 위한 모임을 만들고 애쓰고 있다. 문어 때문에 삶이 바뀐 것이다.


유연하고 아름다운 문어의 삶을 잠시 들여다보고 싶다면,

삶이 지쳐서 어딘가로 떠나고 싶다면,

바닷속 다시마 숲 속에서 만날 수도 있다.

나의 문어 선생님.




브런치 넷플릭스 스토리텔러로 선정되어 넷플릭스 멤버십과 소정의 상품을 지원받았으며, 넷플릭스 콘텐츠를 직접 감상 후 느낀 점을 발행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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