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자신이 시간을 통과한다고 생각하려 하지만 난 그 반대라고 생각한다 우린 정지해 있고 시간이 우리를 통과한다 찬바람처럼 불어와 우리의 열기를 훔친 후 트고 얼어붙게 한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반전은 없는 영화지만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 썼기 때문에 읽고 싶지 않은 분들은 영화를 먼저 봐주세요.
부모를 만나러 집으로 가는 여행길에 여자 친구를 데리러 온 남자.
만난 지 얼마 안 된 남자를 따라나서며 여자의 속마음은 남자와의 관계를 끝내는 것이다.
"이제 그만 끝낼까 해."
대체 뭘 끝낸다는 건지. 이 여행길에 함께 따라갈 수밖에 없다.
영화는 그 유명한 <이터널 선샤인>의 각본가 찰리 카우프만이 각본과 감독을 한 영화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누군가의 한 줄 후기는 '이제 그만 미셸 공드리 감독과 화해하라는 것'
이 한 줄에 이 영화의 호불호가 담겨 있다. 영화를 보기 시작한 순간부터 영화와 정말 그만 끝을 내고 싶은 사람도 있을 거고, 이 여행의 끝이 과연 어디인지 알고 싶어 끝까지 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는 후자였다. 이터널 선샤인이 놓치기 싫은 사랑의 기억을 끝내 잡아 쥐고 마는 영화였다면 이 영화는 누군가의 기억인지조차 알 수 없는 기억 속으로의 탐험이다. 그리고 마침내 진실을 알게 된다면 한 없이 쓸쓸해진다. 끝내 될 수 없었던, 가질 수 없었던 것들에 대한 이야기일 테니까.
영화는 친절하지 않다. 화자가 따로 존재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촘촘하게 서로 엮어지면서 처음부터 끊임없이 힌트를 주기 때문에 난해하다고만 볼 수 없다. 영화는 원작이 따로 있다. 원작을 읽거나 따로 영화 분석을 한 글들을 읽으면 더 쉽게 보겠지만 나는 일부러 그런 글들을 찾아보지 않았다. 이런 영화일수록 그냥 보이는 대로 보는 편이 제일 좋더라. 그래서 아마도 이 글은 오롯이 나의 해석으로 남을 것이다.
눈보라가 몰아치는 길 위의 여행길에서 쉴 새 없이 여자의 내레이션이 계속된다. 힌트는 사실 처음부터 나온다. 우리가 시간을 통과하는 게 아니라 시간이 우리를 통과한다는 이야기에서 이 영화 속 시간의 흐름은 정방향으로의 흐름이 아니라 여기저기서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의식과 무의식 속 시간의 흐름이다. 그러니 이야기는 여기저기로 튀고 영화를 일반적인 서사의 흐름이라고 생각하고 본다면 난해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영화의 큰 줄기는 분명 남자와 여자 이야기인데 초반부터 계속해서 이스터에그처럼 고등학교에서 일하는 나이 든 경비원을 보여준다. 이 영화에 대한 정보를 전혀 알고 있지 않던 난 다른 이야기 갈래인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눈치가 빠른 사람이라면 여자와 남자 이야기가 이 나이 든 경비원의 무의식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라는 걸 알아차릴 수 있다.
나이 든 경비원은 학생들이 가지고 있는 젊음과 내내 비교된다. 학생들이 그를 보는 눈도 곱지 않다. 그는 학교에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학생들을 몰래 훔쳐보곤 한다. 어쩌면 자신 또한 그런 꿈을 꾼 적이 있을지도 모른다.
여자는 처음부터 꼭 오늘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남자는 체인이 있다는 말만 되풀이하며 걱정하지 말라고 하지만 결국 그렇게 되지 못한다. 불안한 마음으로 남자네 집에 도착한 여자의 마음과는 달리 남자는 느긋하다. 이 추운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날씨에 기어코 집안에 들어가는 것 대신 다리를 풀어야 한다며 농장으로 안내한다.
농장에는 양들이 죽어 있고 돼지를 키우던 자리에는 구더기로 썩어 죽어간 흔적이 남아 있다.
모든 동물은 현재에 산다 인간은 그럴 수 없기에 희망을 발명한 거다
남자의 부모로는 무려 토니 콜렛과 데이비드 듈리스가 나온다. 정말 깜짝 놀랐다. 두 분이 왜 여기서 나와? 부모 역을 할 정도로 나이가 들었다고? 그렇다면 아들 역인 제이크를 맡은 배우 제시 플레먼스의 나이를 검색해 보고 더 놀랐다는 얘긴 그야말로 TMI다. (생각보다 너무 어려서라곤;;)
아들은 부모와 친해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반대다. 부모 모두 일반적으로 보이지 않는데 과대망상이나 신경증 환자들처럼 보이기도 한다. 남자는 여자 친구에게 자신의 파란색 실내화를 건넨다. 이 파란색 실내화는 나중에 고등학교에서 나이 든 경비원이 건넨 실내화이기도 하다. 모든 것은 허투루 들어가 있지 않다. 복선이고 힌트다.
부모와의 대화 속에서 두 사람은 물리학자도 되었다가 화가도 되었다가 시도 썼다가 종횡무진 바뀌어 간다. 이때쯤이면 다들 깨달았겠지만 제이크는 나이 든 경비원이 자신의 무의식(꿈) 속에서 그려낸 이루지 못했던 자신의 젊은 모습이 아닐까 싶다. 여자 친구 역시 그가 창조해낸 허구의 인물이다. 여자 친구가 그렸던 작품들이(실제로 여자가 그린 게 아니라 랠프 앨버트 블레이 클록 작가의 작품들이었다) 집안의 지하실에도 고스란히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지하실은 감금의 공간이다. 절대로 나와서는 안될 진실들이 그곳에 있다. 여자가 들어간 순간, 돌아가는 세탁기 안에서는 경비원의 파란 유니폼이 들어 있었다.
여자는 처음부터 남자와의 관계를 끝내고 싶어 했고 남자 부모 댁에 가서도 내내 오늘 돌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심지어 여자한테 걸려온 음성 메시지는 "풀어야 할 의문은 단 하나. 무섭다, 내가 미쳤나. 정신이 혼미하다."라는 경비원의 음성이었다. 여자는 이 무의식 속에서 유일하게 의식으로 연결된 화자가 아니었을까. 이루고 싶었던, 되고 싶었던 젊은 날의 자신의 모습을 투영했지만 끝내 자신이 미쳤나 반문하며 이곳에서 그만 끝내고 나가야 한다고 외치는 또 다른 화자, 말이다. 그러니 경비원의 무의식의 세계에서 여자는 외부인에 가깝다. 경비원의 젊은 시절 가까이 다가갈 수 없었던 '진짜' 여자였을 수도 있겠다.
그런 의미에서 여자와 남자는 다른 대척점에 서 있다.
깊은 밤, 눈보라가 치는 밤에 다시 길을 나선 두 사람. 그냥 가고 싶어 하는 여자를 데리고 기어코 어린 시절 사 먹던 아이스크림 집, 털시 타운에 간다. 막상 찾아왔지만 남자는 차마 나서지 못하고 여자가 아이스크림을 산다. 이곳에서 만난 왕따를 당하는 온몸에 피부병이 있는 아르바이트 생은 여자에게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는다. 이 여자 아르바이트 생은 경비원의 어린 시절을 유추하게 만든다. 털시 타운 자체가 자신의 어린 시절이 그대로 녹아 있는 곳일 테니까.
아이스크림은 다 녹아버리고 남자는 기어코 자신이 다닌 고등학교까지 찾아가서 버리겠다고 한다. 털시 타운부터 학교에 갈 때까지 남자는 유독 예민해지는데 학교 쓰레기장 안에는 이미 털시 타운에서 사 온 아이스크림 컵이 한가득이다. 남자는 얼마나 이 길을 오갔던 것인가. 쓰레기를 버리러 간 남자는 돌아올 생각을 안 하고 여자 혼자 결국 학교 안으로 들어간다. 이때 드디어 나이 든 경비원이 등장한다. 여자는 경비원에게 이제야 비로소 남자에 대한 진실을 폭로한다. 누군지조차 가물거리고 얘기도 나누지 않았다고 그 남자가 그저 계속 날 쳐다봐서 짜증 났다고 말한다. 너무 소름 끼쳤다는 말. 아마도 이게 진실이었겠지. 심지어 남자에 대해 40년 전 물린 모기를 묘사하라는 얘기만큼이나 어렵다고 한다. 그저 자신에게는 스쳐 지나간 사람이었을 뿐.
경비원은 파란색 실내화를 건네주고 떠나간 여자 대신 이 세계에서야 여자와 함께 원하던 춤을 춘다. 젊고 아름다운 남녀 무용수가 학교 안을 누비며 춤을 추는데 제이크와 여자 친구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했다. 사라졌던 제이크는 나이 든 분장을 하고 노벨상을 수상하고 노래를 부른다. 이것 역시 그가 간절하게 원했던 자신의 모습이었으리라.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고 성과를 내는 것. 여자 친구도, 부모도 모여서 박수를 쳐주지만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가짜 티가 다 나는 나이 든 분장을 하고 있다. 이 모든 게 가짜이기 때문이다.
괜찮아, 모든 건 색채를 띠지 기분이나 감정, 과거 경험 때문에 객관적인 현실이란 없는 거야 우주에는 색이 없잖아? 뇌에만 있는 거야
나이 듦에 대한 생각도 두 사람은 다르다. 여자는 우리 사회가 노인들을 배격한다며 모든 생물의 생애 주기에서 불가피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라 토로하고 남자는 젊음이란 그 자체에 감탄한다며 더 건강하고 더 빛나고 더 재미있고 더 매력적이고 희망적이라고 말한다. 과학이든 예술이든 모든 것을 젊은이들이 이뤘다고 말하며 노인은 젊은이의 잿더미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아마도 이미 나이 들어 배가 나온 늙은 경비원인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고 있는 말일 게다.
나이 든 경비원은 옷을 홀딱 벗고 농장에서 죽어간 돼지를 따라간다. 몸이 썩어 가고 있는 돼지는 말한다.
지금 이 순간도 유령으로서 기억으로서 먼지로서, 네 뜻대로 가까이서 보면 모든 건 똑같아 우린 똑같아 너, 나, 아이디어 우린 다 한가지야
사실 기분 좋은 영화는 아니었다. 끝까지 다 보고 나서 내가 느낀 감정은 '슬픔'이었다.
끝내 이루지 못했던 꿈들을 하나도 버리지 못하고 갖고 있어야 했던 이 지나간 시간과 기억에 대한 탐험은 꽤나 아프고 눈물겹다. 왜냐면 우린 다 똑같기 때문이다. 너, 나... 우린 다 한가지지.
브런치 넷플릭스 스토리텔러로 선정되어 넷플릭스 멤버십과 소정의 상품을 지원받았으며, 넷플릭스 콘텐츠를 직접 감상 후 느낀 점을 발행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