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고 힘들 땐 어떻게 해야 하나요
이건 영화 얘기다.
내 하루의 루틴은 "아침식사-> 한의원-> 점심식사-> 유튜브 or넷플릭스 or아주 아주 가끔 일-> 저녁식사-> 다시 유튜브 or넷플릭스"다. 이젠 하루하루가 너무 똑같아서 일기장에 적기도 애매하다. 그동안 취업을 하려고 부단히도 노력했지만 되지 않았다. 올해 들어 몇 번의 면접을 봤는데, 두 번은 내가 가지 않았고 두 번은 최종 탈락. 네 번 밖에 면접을 안 본거 같겠지만 서류는 그보다 훨씬 x100 많이 넣었다. 20대 청년들도 취업하기 힘들다는 데 어정쩡하게 연차만 많고 나이만 많은 나는 사실 이젠 취업하기가 힘들다.
이번에 네고 왕 생리대 때문에 수면 위로 올라온 동아제약 성차별 면접이 문제가 되고 있던데 오늘, 그 피해자 되는 분의 브런치 글을 읽었다. 당연히 지지하지만 글을 읽으며 다른 의미로 부럽더라.
내가 그 나이에 저렇게나 똑 부러지고 논리 정연하게 대기업을 상대로 평정심을 잃지 않고 따박따박 반박할 수 있었을까 생각해보면 전혀 그렇지 못했다. 우선 동아제약 면접을 보러 갈 수 있었을 같지 않다.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공부는 안 했을 것 같으니. 패스-
몸까지 여기저기 아프니 솔직히 요즘 힘들다. 벌써 한 달이 다 되도록 제대로 된 잠을 자지 못하고 있다. 적게는 한 두 번 많게는 서너 번도 더 깬다. 밤이 되는 게 무섭다. 잠을 잘 못 자는 사람들에게 밤이란 지겹고 악랄하고 지옥 같은 시간일 뿐이다. 어둔 게 무서워서 불까지 켜놓고 있을 때가 많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자꾸만 고개를 드는 "왜 나만"이라는 말이 계속 생각난다. 원래는 하나 아프고 나면 또 다른 하나가 말썽이고 이런 식이 었는데 요즘 총체적 난국이다. 여기저기 무슨 지뢰 밟듯 팡팡 터지고 있어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건강하지 못하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드는 법. 정신이 먼저일 수 없다. 이건 확실하다. 그렇다면 몸이 아프면 모두 아픈 정신이란 말인가. 또 그렇지는 않다. 그렇다면 아픈 사람들에겐 뭐가 필요한 걸까.
맨 위에서 얘기했듯이 이건 영화 얘기다. 진짜다.
바로 "펭귄 블룸"이다.
펭귄이 나오냐면 아니다. 펭귄이라 이름 붙여진 까치 한 마리가 나온다. 왜 펭귄이냐면 하얗고 까맣다고 지어진 이름이다. 샘은 바다를 좋아하고 서핑을 좋아하는 아들 셋을 둔 평범한 주부였다.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평범할 수 있다는 게 행복한 거다. 그만큼 남부러울 것 없이 행복한 이 가족 앞에 어느 날 정말 우연히 비극이 찾아온다. 비극은 원래 소리도 없이 조용하게 가장 행복한 순간에 찾아오는 것일까.
태국으로 떠난 가족여행. 큰 아들 노아가 발견한 하얀 건물 옥상 위로 올라간 샘은 난간에 기대어 섰다가 그대로 추락해 버린다. 사고로 목숨은 건졌지만 하반신 마비가 된 채 평생 휠체어에 앉아 생활해야 한다.
샘과 가족의 생활은 이 사고로 완전히 바뀌어 버렸다. 아직 어린 아들 셋은(세상에나 아들 셋이라니..) 천방지축이고 그걸 온전히 아빠 혼자 케어해야 한다. 그뿐인가 혼자서는 제대로 침대에서 일어나지도 못하는 아내 또한 챙겨야 한다. 아빠가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면 그때부터 샘의 엄마, 아이들의 할머니가 와서 집안일을 하고 샘을 돌봐준다. 가족들 모두 최선을 다해 아무렇지도 않은 척 평범하게 살려고 한다.
하지만 샘은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을 수가 없다. "왜 나만" "왜 나한테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자신을 뺀 모든 것들은 그대로인데 자신만 달라졌다.
아이들은 이젠 엄마를 찾지 않는다. 새벽 내내 잘못 먹은 굴 때문에 토하게 되어도 아빠를 부른다. 샘은 그걸 견딜 수 없어한다. "내가 엄마도 아니라면 난 대체 뭐란 말인가"
자신의 슬픔과 고통에 침잠해 있느라 남편과 아이들에게조차 곁을 내주지 않는 샘. 마치 건드리면 뻥, 하고 터질 것만 같은 풍선이 되어 버렸다. 너무 잘 알 것 같다. 가족조차 위로가 되어 주지 않는다. 고통은 온전히 혼자만의 것이다. 대신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해변가에서 놀던 노아는 높은 곳에서 떨어진 새끼 까치 한 마리를 발견하게 된다. 까치를 구해내 집으로 데려오지만 샘은 반가울 리가 없다. 까치에게 펭귄이라 이름 붙이며 자신들의 성까지 따서 펭귄 블룸이라 부르게 된다. 동물 연기 특히 새 연기가 쉬웠을 리가 없는데 훈련시키기도 어렵지 않은가. 영화 속에서 몇 마리의 까치가 나왔을지 궁금하다. 영화 속 펭귄은 정말 애완견처럼 사람한테 너무 잘 안겨있고 잘 따라서 깜짝 놀랐다.
펭귄이 오고 나서 이 가족에게 조금씩 변화가 생긴다.
이 부분이 물 스며들듯 자연스럽고 소소해서 더 좋았다. 어떤 클라이맥스가 되는 사건이 있는 게 아니라 그저 펭귄이 오고 펭귄을 돌보며 샘은 조금씩 변한다. 어떤 것도 할 의욕이 없던 샘은 펭귄이 드디어 날개를 펴고 날아오르자 남편의 권유대로 카누를 배우게 된다. 카누를 하면서 자신의 몸을 조금씩 컨트롤할 수 있게 되면서 샘의 얼굴은 활기를 되찾는다.
결국 아픈 몸은 자신의 몸을 조금이라도 자신이 컨트롤할 수 있게 되면 활력을 찾을 수 있게 된다. 그러니 아프다고 집에만 처박혀 있거나 햇빛 하나 보지 않는 다면 당장 죽을 것 같은 생각에 사로잡힐 수 있다. 내가 그래 봤으니까. 죽을 것 같아서 아무 데도 갈 데가 없으면서 무조건 나가서 걷거나 햇빛 받으면서 눈감고 앉아 있다가 오곤 했다. 우선 살아있으니까. 살아있으면 움직이고 움직이면 숨이 쉬어진다.
하지만 그것조차 할 수 없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일부러가 아니라 그러고 싶어도 집 밖을 한 발자국도 내딛을 수 없는 사람들. 이 세상에는 아픈 사람들이 너무 많다.
샘에게는 적어도 자신을 집 밖으로 끌어내 줄 가족이 있었고(가족 때문에 더 힘들지라도) 그리고 자연이 있었고(요즘 느끼는 건 자연 속에서 산다는 건 축복이다) 또 자신이 몰입할 수 있는 운동이 있었다. 그러니 샘은 가진 소스가 많은 사람이다. 소스가 많은 사람은 절망과 우울감에서 빠져나오기가 한결 쉽다. 하지만 자신이 가진 소스가 없다고 당장 죽을 수는 없다. 무엇보다 비교하지 말 것. 다른 누군가와 비교하기 시작하면 끝이다. 자꾸 비교하게 만든다면 모든 SNS를 끊을 것. 반드시 하루에 한 가지씩 자신을 웃게 해 줄 작은 것 하나씩을 찾아내야 한다. 그게 무엇이든, 열정을 다해 살기 위해 몸부림치면서 찾아야 한다.
그게 하루에 한 시간씩 걷는 산책이 되었든, 유튜브에서 찾아보는 최애가 되었든, 깔깔거리고 웃게 만들어 줄 프로그램이 되었든,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이 되었든, 몸에는 좋지 않아도 먹으면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 음식이든. 암튼 뭐가 됐든 있는 힘을 다해 찾아야 한다. 자신에게 있는 펭귄을 찾아야 한다. 펭귄이 나한테는 찾아와 주지 않으니 내가 찾아내야 할 밖에.
마침내 샘이 아들 노아의 아픔을 들여다보고 엄마가 사고 난 게 네 잘못이 아니라며 안아주었을 때, "엄마 여기 있다고" 말할 때. 샘은 단단해져 있었고 다시 설 수 있는 힘을 얻었다. 너무 뻔한 얘기지만 아픔과 고통이 있어야 설 수 있는 힘을 얻는다는 건 슬프지만 사실이다.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였다. 그걸 마지막 엔딩 크레딧 올라갈 때서야 알았다. 정말 펭귄이 천사처럼 저 가족들을 찾아가 주었구나. 실제 샘은 카누대회에 나가 우승도 했을 정도로 강인해 보였다. 샘 역을 맡은 나오미 왓츠의 연기도 좋았다. 아름다운 배우인 그녀가 이젠 나이를 먹으면서 자연스럽게 주름진 얼굴로 나왔는데 그게 더욱 아름다워 보였다. 나이 듦을 그대로 보여주면서 자신의 팬들과 함께 나이를 먹어 가는 것이야말로 배우로서 얼마나 뿌듯한 일일까.
영화는 잔잔했지만 지금 나한테는 필요한 영화였다. 그래서 선택했지. 많이 울 거라고 생각하고 봤지만 눈물은 나지 않았다. 다행이었다.
브런치 넷플릭스 스토리텔러로 선정되어 넷플릭스 멤버십과 소정의 상품을 지원받았으며, 넷플릭스 콘텐츠를 직접 감상 후 느낀 점을 발행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