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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볼파란 Jan 10. 2021

고스트 스토리

떠나지 못한 사랑의 기억...

고스트 스토리를 다 보고 난 후 든 생각은,

이 영화는 상실과 슬픔, 잊힘을 영겁의 시간 속에 겹겹이 담아 완성한 페이스츄리 같다는 거다.

바삭, 하고 부서질 것만 같다. 그런데 그것대로 너무 근사하고 아름다워서 보는 내내 바삭바삭해졌다.

그래도 어떤 이유로든 연인과 이별한 지 얼마 안 됐다면 이 영화를 보는 걸 추천하지 않는다.

바삭, 하고 부서져 사라질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멜로 영화가 남아있는 자들의 시선을 쫓았다면 이 영화는 떠난 사람의 시선을 따라간다. 병원 영안실의 이불천을 뒤집어쓴 채 고스트가 된 C는 연인과 함께 살던 집으로 돌아간다. M은 홀로 집에 남아 C가 없는 일상을 살아간다. 시간은 흘러가고 M은 몇 계절을 더 보낸 후 그 집을 떠난다. M은 자신이 머물던 공간에 쪽지를 남기는 습관대로 이 집에도 자신이 쓴 메모를 작게 접어 벽 틈새로 집어넣는다.

M이 떠나도 C는 그 집을 떠날 수 없다. 옆집에 살던 또 다른 고스트는 자신이 기다리는 사람이 누군지도 잊어버린 채 기다리다가 소멸해 버렸지만 C는 끝까지 남아 집을 지킨다. 세월이 흘러 많은 사람들이 그 집을 거쳐가고 마침내 철거되어 그 자리에 커다란 빌딩이 들어설 때도 고스트는 사라지지 못하고 시간의 흔적 속에서 어슬렁 거린다.


사라지지 못한 고스트는 높은 빌딩 위에서 뛰어내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 처음 시작되던 곳. 처음부터 리와인드되는 흐름은 그제야 퍼즐이 맞듯 모든 것이 맞춰진다. 처음으로 거슬러 올라가 영겁의 시간을 지나고서야 고스트는 M이 남긴 쪽지를 확인하게 되고 그렇게 소멸된다.


이렇게 쓸쓸하고 아름다운 이별 이야기라니.


고스트 스토리는 침묵의 영화다. 누가 극장 가서 나쵸 사들고 들어갔다가 녹여 먹었다는 후기가 있던데 나쵸뿐만 아니라 침 삼키는 소리도 낼 수 없는 영화다. 때에 따라선 이게 영화인지 사진인지 헷갈릴 정도로 데이빗 로워리 감독은 카메라 뷰파인더를 집요하게 오래오래 한 장면에 머물게 한다. 나 역시 보다가 화면 일시 정지인 줄 알고 다가가서 다시 만진 적이 있을 정도다. 그러니 그러한 침묵의 시간을 견뎌 낼 수 없는 사람들은 보지 않는 게 좋다.


화면의 비율부터 남다르다. 정사각형에 가까운 모서리가 둥근 사진 프레임에 비네팅 있는 화면은 와이드 비율에 익숙한 사람들에겐 답답하고 불안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영화의 시점이 고스트 시점으로 이뤄지다 보니 일부러 의도한 화면 편집일 터.


저예산 영화답게 고스트 표현 자체를 CG 처리하지 않고 실제로 사람이 들어가 하얀 이불천을 뒤집어쓰고 눈만 뚫은 채 만들었다. 얼핏 보면 어린 시절 이불 뒤집어쓰고 귀신 흉내 내던 비주얼이긴 한데 하얀 이불 천 주름을 얼마나 디테일하게 잡았는지 모른다. 머리 부분도 사람 머리가 아니라 헬멧 쓰고 일일이 교정하면서 찍은 거라 힘들었다고 한다. 게다가 이 고스트는 하나도 무섭지 않고 슬프고 귀엽다. 믿어도 좋다.



마음에 남는 장면 1.

C가 죽은 병원 영안실 침대를 카메라는 한참을 머문다. 삶과 죽음, 만남과 헤어짐, 그 길고 긴 터널 속을 지나고 C는 그 하얀색 이불속에서 그대로 일어나 고스트가 된다.  


마음에 남는 장면 2.

C는 M이 있는 집으로 돌아온다. M은 이웃이 만들어 놓고 간 파이를 처음에는 선채로 욱여넣기 시작해서 나중에는 부엌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쉴 틈도 없이 꾸역꾸역 먹는다. 맛있거나 배가 고파서 먹는 게 아니라 말 그대로 상실의 아픔을 잊기 위해 먹는 행위에 집중하는 것처럼 보인다. 루니 마라가 맡은 M의 이 먹방 아닌 먹방은 몇 분 동안의 긴 롱테이크 샷으로 진행되었다. 그걸 보는 내 가슴이 답답할 정도. 제발 물이라도 마시라고!


마음에 남는 장면 3.

고스트가 된 C는 우연히 옆집에 사는 또 다른 고스트와 인사를 나눈다. 그들은 서로 텔레파시처럼 말을 나눌 수 있다. 하지만 누구를 기다리는지 조차 잊어버린 또 다른 고스트는 대체 얼마나 그 집에서 떠난 사람을 기다렸을까. 마침내 떠나간 사람이 돌아오지 않을 거란 생각이 확실해지자 고스트는 스스로 소멸해 버리고 만다.



영겁의 시간을 건너 당신에게 도착한 이 사랑의 끝


누구를 기다려요.
누구를?
기억이 안 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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