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과 게이로 살아간다는 것...
주인공 라이언은 장애인에 게이다.
주인공 설정이 온갖 역경과 고난을 극복해야 할 설정 아닌가. 그도 그럴 것이 둘 중에 하나만 가지고 있어도 세상의 온갖 편견과 차별로부터 싸워야 한다는 말일 테니까. 소수자 중에서 소수자로 살아간다는 것. 얼마나 어둡고 암울한 얘기가 펼쳐질까, 싶던 마음은 그러나 첫 편부터 깨져버렸다.
넷플릭스 '스페셜'은 정말 스페셜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어둡거나 무겁지 않고 병맛스러운 코미디가 펼쳐져서 오히려 처음엔 당황스러울 정도다. 그러나 15분 분량의 짧은 에피소드 8편을 다 보고 나면 그 이야기들이 결코 가볍지만은 않다는 걸 알게 된다. 이 드라마를 쓰고 직접 출연까지 한 라이언 오코넬은 전문 배우는 아니지만 자전적 이야기에 출연한 터라 연기는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극 중 라이언은 가벼운 뇌성마비를 앓고 있는 장애인이다. 인터넷 회사 인턴으로 취업하게 된 첫날, 우연한 계기로 라이언은 자신의 장애를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말해 버리고 만다. 다리를 약간 절고 손이 불편한 것 외에는 일반인과 별반 다를 게 없어 보이는 라이언은 자신의 장애를 차라리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동정받는 편을 선택한다. 일반인이 보기엔 그게 차이가 있을까 싶은데 차이가 있다. 장애를 갖고 태어나는 것. 다른 사람과 다른 것은 모자란 것으로 치부되고 마는 사회에서는 큰 차이가 있다. 차별보다는 동정을 택하는 라이언의 선택은 그래서 씁쓸하다. 라이언의 회사 생활은 쉽지 않다. 나오는 캐릭터들도 여간 쎄지 않지만 동료인 킴만은 든든한 조력자로 친구가 되어 준다.
킴은 누가 보기에도 인싸다. 주위에 사람들도 많고 성격도 좋다. 얼핏 보기엔 라이언과는 딴판이다. 하지만 화려한 겉모습과는 달리 파산 직전인 상태다. 라이언이 장애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킴, 킴이 파산 직전인 상태를 알게 된 라이언. 두 사람은 서로의 비밀을 공유하며 비로소 진정한 우정을 꽃피우게 된다.
누군가 관계의 깊이는 좋을 때가 아니라 힘들 때 그리고 서로의 치부를 드러냈을 때 알게 된다고 한다. 용서해 줄 수 있는 관계여야 그 관계는 더욱 깊어지고 오래갈 수 있다. 그래서 성별도 성적 취향도 성격도 달랐지만 킴과 라이언은 서로를 이해하고 그대로의 모습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또 다른 관계는 바로 라이언과 엄마였다. 엄마 캐런은 오로지 라이언 하나 바라보고 사는 인물이다. 장애를 가진 아들을 위해 헌신하며 자신의 삶을 희생하는 엄마. 아들을 떼어 놓고는 자신의 삶을 정의할 수 있는 게 없는데... 어느 날 갑자기 아들 라이언이 독립을 선언한다. 다 큰 아들이 직장도 갖고 남자 친구도 사귀면서 독립을 하겠다니 대견하다 싶지만 그보다는 걱정이 앞선다. 결국 집을 얻어주지만 걸핏하면 엄마를 부르기 일쑤다.
말로만 독립이지 손발이 자유롭지 못한 라이언이 할 수 있는 일이란 많지 않다. 가구 하나 조립하기도 힘들고 막힌 화장실 뚫는 것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캐런은 아들이 떠나간 빈자리를 옆집 남자 필과의 데이트를 통해 채워나간다. 불안과 외로움은 그녀를 그에게 의지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라이언은 그런 엄마 모습이 낯설고 언짢다. 자신은 독립하고 싶어 하면서 엄마의 사랑은 인정할 수 없는 이기적인 라이언의 모습은 엄마를 한 인간이 아닌 자신의 '엄마'로만 인식하며 살아왔을 게 보였다. 그래서 엄마가 가진 외로움은 알면서 애써 외면하려 들었겠지. 불편해하는 아들의 모습을 본 캐런은 칼같이 애인을 끊어내 버린다. 평생을 아들 하나 바라보고 살아온 캐런의 모습에선 한국 엄마의 모습도 저절로 오버랩된다.
캐런과 라이언의 관계는 라이언이 커가면서 부딪힐 수밖에 없다. 아들은 저 멀리 날아가고 싶지만 엄마인 캐런은 아직 그런 아들에게 날개를 줄 수 없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라이언은 날개를 달고 독립을 꿈꾸면서도 아직은 엄마의 보살핌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필과 헤어지고 왔건만 자신을 버려둔 라이언에 대한 서운함과 그런 엄마를 이해하지 못하는 라이언. 서로에 대한 서운함이 폭발하면서 시즌1은 그렇게 끝이 난다. 아아. 시즌2가 나와야 하는 이야기인데 아직까지 소식이 없네. 시즌2가 나온다면 아들 라이언과 엄마 캐런이 서로의 삶 속에서 조금은 더욱 성숙해진 관계를 보여준다면 좋겠다.
스페셜은 코미디를 표방하지만 진지하고 묵직한 질문들을 던지는 드라마에 가까웠다.
사회에서 수없이 벌어지는 차별과 편견에 대해서, 그리고 살아가면서 맺게 되는 관계들에 대해서.
친구가 될 수도 있고 가족이 될 수도 있으며 사랑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는 관계 속에서는 장애를 가지든, 성소수자이든 크게 상관없어 보였다. 드라마는 무조건적인 희생을 강요하거나 시혜적인 태도로 장애인을 바라보고 있지 않다. 그래서 나는 이 드라마가 장애인이며 게이로 살아가는 남자의 이야기가 아니라 하고 싶은 것 많고 사랑을 꿈꾸는 한 남자의 이야기로 읽혔다.
스페셜하지만 스페셜하지 않은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 말이다. 우리는 모두 각자가 살아가고 있는 무대 속 드라마의 주인공이니까. 살아가는 것만으로 스페셜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