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으면서 들어오면 안 되는 건가
"실업급여 받으러 온 젊은이 중 실질적 구직자는 아주 어두운 얼굴로 오는데, 한 부류는 밝은 얼굴로 와서 실업급여를 받아 명품 선글라스 끼고 해외여행에 다녀온다고 한다."
국민의 힘 정책위원장의 위와 같은 말을 듣고 잠깐 내 눈을 의심했다. 실업급여 밝은 얼굴로 받아가면 안 되나? 웃으면서 받아가면 안 되는 거였어? 굳이 어둡고 절망적인 얼굴로 가야 하는 거야? 이런 낙인이 어디 있단 말인가.
이 얘길 들으니 저소득층 급식지원카드로 아이가 비싼 돈까스 시켜 먹어서 보기 불편했다는, 어디선가 본 글이 떠올랐다. 가난하고, 일할 데가 없는 사람에게 이 사회가, 일부 시민들이 바라는 상(像)이 있다는 것에 놀라울 뿐이다.
카카오니, 네이버니 하는 대기업들도 돈이 안 되는 사업을 정리하고 대대적인 구조조정에 들어가고 있는 마당에 대부분의 직장인들이란 그야말로 오늘은 일하고 돌아갔어도 내일은 자리가 없어질 수도 있는 풍전등화의 삶을 사는 것 아니었던가?
실업급여야말로 이런 풍전등화의 삶 가운데 전등은 아닐지라도 어두컴컴한 길 가운데 촛불 정도는 되어 주는 존재다. 부정수급이나 급여보다 실급을 더 많이 받아 일자리를 구하지 않는다는 일부 케이스를 마치 모든 직장인들이 전부 다 그런 것처럼 보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이게 내 일이 아닌 것 같지?
아니다. 절대 그렇지 않다. 요즘 평생직장이 어디 있는가. 40대만 되어도 점점 직장에서 자리가 위태로울 나이가 된다. 연차가 쌓이고 연봉이 올라갈수록 옮기기도 쉽지 않다. 우리 회사는 대기업도 아닌데 '희망퇴직'을 받고 있다. 대부분 중소기업 정도의 규모에선 이런 조건이 거의 없기 때문에 좋아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하루에도 몇 번씩 미친년처럼 웃었다가 울었다가 머리 풀고 거리로 나가 살풀이라도 하고 싶은 요즘이다.
1년 6개월 전쯤 면접을 볼 때만 해도 회사가 사정이 어려워져 사무실을 줄여 이전을 하고 희망퇴직을 받을 줄 알았겠는가? 이제 겨우 회사의 울타리 안에서 따뜻한 온기를 느꼈는데 폭염 가운데 거리에 나앉게 생긴 것이다. 위기가 기회라지만 40대 직장인의 덩치는 결코 가볍지 않다. 젊은 사람일수록 더 많은 '기회'를 잡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이에 따라 받게 되는 타격은 다를 수 있다. 이참에 쉬어간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당장 이직할 곳을 구해야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타격감이 다르다고 해서 그걸 낙인찍고 조리돌림해야 할 이유는 없다. 어쨌든 갑작스럽게 쳐맞은 건 사실이잖아. 맷집이 좋은 사람도, 아닌 사람도 있는 거지. 실업급여가 누군가한테는 폭염 속 유일한 생수가 될 수도 있고, 누군가한테는 에어컨 켜고 앉은 방 안에서 갈증 날 때 마실 수 있는 생수가 될 수도 있는 거지.
웃으면서 들어오면 응원과 격려를 해주면 되고, 좌절하고 힘들어서 들어오면 따뜻한 위로와 힘을 주면 되는 거잖아.
제발 사람 편 가르고, 아래위로 나누고, 선 긋고, 낙인찍고, 그러지 좀 말자.
자리를 만들어 주고 환대해 주는 일이 그렇게 힘든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