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분명 괜찮을 거야!
그 광경 그날 본 모든 것은 꿈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지금은 생각한다. 하지만 꿈이 아니다. 그 여름날, 그 하늘 위에서 우리들은 세상의 형태를 바꾸어 버렸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날씨의 아이'는 진작에 보려고 했던 작품이었으나 처음엔 실패했다. '너의 이름은'을 보고 난 뒤라 기대감이 컸던 탓에, 시작하자마자 주야장천 비가 내리는 도쿄에 가출한 소년이 나오는데 어쩐지 우울해져서 내가 원하던 애니메이션이 아니란 생각에 보다가 말았던 것이다.
그 후 몇 년이 지나도록 볼 생각을 하지 않다가, '스즈메의 문단속'을 극장에서 보고 약간의 실망감을 안고 와서 역시 '너의 이름은' 만한 작품이 없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최근에 일본 애니메이션을 이것저것 찾아보던 중에 내 눈에 다시 뜨였던 것이다.
날씨가 계속 비가 내렸고, 태풍도 한 차례 온 끝이라 어쩐지 비가 오는 여름 날씨엔 비가 오는 풍경도 나쁘지 않겠단 생각에 다시 보려고 클릭했다. 시간의 흐름이 무색하게 내가 봤던 부분에서 멈춰져 있었는데 그게 딱 가출 소년 호다카가 스가에게 찾아가 일하게 되는 장면이어서 가볍게 볼 생각에 그대로 다시 보기 시작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울면서 보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또 보게 되었다.
생각해 보면 책이든, 영화든, 사람이든 뭐든... 다 인연이라면 때가 있는 것 같다. 그 '타이밍'이라는 것 말이다. 뭐든 타이밍이 맞아야 하는 법. 아마도 이 작품, '날씨의 아이'는 지금이 나와 맞는 타이밍이었던 것 같다.
줄거리는 간단하다. 비가 계속해서 내리는 도쿄에 섬에서 가출한 소년 호다카가 유일하게 자신을 도와주는 스가가 운영하는 잡지사에 취직을 하게 된다. 우연히 햄버거 집에서 자신에게 맛있는 저녁을 대접해 준 소녀 히나를 도와주게 되면서 히나의 비밀을 알게 된다.
히나의 비밀이라는 건 사실 기도를 통해 날씨를 맑게 해주는 날씨의 아이라는 것. 돈을 벌기 위한 알바로 날씨의 아이가 되어 이곳저곳 날씨를 맑게 해 주지만 얼마 안 가 날씨의 아이가 사실은 오래전부터 존재하던 날씨의 무녀이고 도쿄의 날씨를 지키기 위해선 이 무녀가 재물로 바쳐져 희생되어야만 한다는 걸 알게 된다.
물론 호다카가 가만히 있을 리 없고 히나를 구해내기 위해 말 그대로 고군분투하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아마 내가 본 애니메이션 중에서 이토록 개고생 하는 남자 주인공은 처음 본 것 같다. 아직 어린 나이에 가출하고(가출한 이유도 아버지의 폭력이라는 썰이 있다) 도쿄에 와서도 끊임없이 힘든데 그 와중에 히나를 구해내기 위해서 어른들과 맞서야 한다.
호다카, 히나, 히나의 동생 나기까지. 모두 어린 나이에 일찍 철이 들고 홀로 서야 하는 모습이다. 호다카는 폭력의 그늘에서 벗어나 빛을 따라 가출을 감행하고, 히나는 나이 어린 동생을 책임지기 위해 나이까지 속여가며 일해야 하고, 나기는 가장 어리면서도 누구보다 어른스러운 태도로 호다카에게 나기선배라고 불려진다.
여기 어른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데 나는 이 셋을 보면서 고레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아무도 모른다'가 떠올랐다. 여기서도 어른들이라곤 아무것도 모르면서 아이라고 무시하고 떼어놓으려는 사람들 밖에 없다.
극 중에서 호다카가 우연히 권총을 얻게 되는데 비현실적이라곤 해도 이게 유일하게 자신들을 지켜 줄 수 있는 무기가 된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하다.
호다카를 도와준 스가는 호다카의 어른 버전 같아 보이기도 했다. 무기력하고 무심해 보이지만 아마 배에서 처음 호다카를 볼 때 자신의 모습을 보는 듯했겠지. 그래서 도와준 것일 테고. 하지만 그런 스가 역시 호다카가 히나를 찾으러 갈 때 막아선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고 경찰에 자수하자고 했을 때 묘하게 서글퍼진 건 호다카와 스가가 마치 거울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시간의 흐름은 막을 수 없고 소년은 자라나 어른이 된다. 어른은 적당히 현실에 타협하고 적당히 모른 척하고 적당히 멈춰야 하는 걸까. 그럴 수 없는 호다카는 다시 권총을 들고 맞설 수밖에 없다. 기어코 호다카가 얻어터지고 긁히고 넘어지면서까지 히나를 만나러 뛰어가던 장면에서 눈물이 났다.
왜일까 생각해 봤는데 호다카의 모습에서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어떤 시절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첫사랑의 아련한 감정으로 미친 듯이 가슴앓이 하던 때, 좋아하던 것이라면 어떻게든 해내려고 밤을 새우고 열정적으로 뛰어들던 때... 그건 청춘이고, 열정이고, 한 순간의 불꽃처럼 사그라든 '시절'이었다.
그래서 간절하게 바라게 된다. 호다카가 마침내 히나에게 닿기를. 날씨 따위 어떻게 되든 날씨의 아이를 구해내기를.
두 번 다시 맑지 않아도 괜찮아. 푸른 하늘보다 히나 네가 좋아. 날씨 따위 계속 미쳐 있어도 돼!
다 보고 나니, 호다카의 처음 내레이션에 모든 결말이 담겨 있었다. 호다카가 히나를 구해냄으로써 세상의 형태를 바꾸어 버렸지만 날씨란 건 원래 미쳐있었고 도쿄는 그저 원래의 형태로 돌아간 것일 뿐, 그 안에서 사람들은 적응하고 살아가게 마련이다. 그러니 마지막 엔딩처럼 우리는 괜찮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