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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볼파란 Aug 27. 2023

프롤로그: 아직 끝난 게 아니다

묘비명을 작성하기에 앞서...

인생을 잘 살았는지 아는 방법은 눈 감는 순간 알 수 있다. 그전까지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니까 섣불리 말할 수 없겠지만 사실 우린 이미 알고 있다. '아, 이번 생은 개 망했구나.' 


시간이 흘러서 깨닫는 건 망해도 보통 망한 게 아니구나인데 보통은 그 정도 경지에 이르면 자학개그로 웃음으로 승화시키거나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지구 멸망이나 해서 같이 망하자의 마인드가 된다. 그러다가 문득 현타가 와서 잠이 안 오는 밤, 이 밤의 끝을 잡고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지게 되는데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내 첫 단추는 왜 잘못 끼워졌는가'로 귀결된다. 


그럼 대체 어디까지 올라가야 하나 싶어 지는데, 내신 등급 한 등급만 올리면 서울 시내 4년제 대학 갈 수 있다고 했는데 한 등급 올리기는커녕 한 등급 더 떨어뜨렸던 고3 수험 시절인지, 하고 많은 과 내버려두고 허영심에 물들어서 덜컥 디자인학과에 등록했던 20살 시절인지, 그것도 아니면 아무런 꿈도 목표도 없이 하루하루 살았던 중고등학교 시절인지 알 수가 없게 된다. 


이번에 N번째 퇴사를 하게 되었다. 처음으로 퇴사한다고 회사에서 꽃다발도 마련해 줬는데 표정관리가 전혀 되지 않았다. 나는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누군가 대신 울어줘서 차라리 고마웠다. 밤에 집에 와서 자려고 누웠는데 다시 현타가 왔다. 자의든 타의든 그만뒀던 회사들의 퇴사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흘러갔다. 죽을 때가 가까운 것인가. 원래 죽는 순간이 되면 그동안 살아왔던 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는데 그동안 내가 다녔던 회사들이 이렇게 JU OK 같을 수가 없다. 


 "JU OK 같은 나의 회사 연대기"를 써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그렇다. 이것은 내가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 전선에 뛰어들던 그 순간부터 만났던 상사, 몸담았던 회사에 대한 단상이다. 이력서에도 차마 넣을 수 없었던 회사들의 이야기라 당연히 기억은 내가 좋을 쪽으로 왜곡됐고, 일부는 일부러 왜곡시켜 쓸 것이다. 하지만 이야기의 줄거리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이 글을 쓰기로 결심한 것은 내 삶의 '단추 끼우기'를 어디까지 했는지에 대한 복기이며, 나 스스로에 대한 비판이고, 기록이다. 더불어서 구직자들에게 조금의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과 지나간 내 회사들의 묘비명이 될 것이다.


물론 아직 끝난 게 아니다. 몇 개의 묘비명을 세우고 나서야 끝이 날지 알 수 없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니까. 인생을 잘 살았는지 아는 방법은 결국 끝을 가봐야 아는 것이다. 그러니 이 연대기는 프롤로그는 있을지언정 에필로그는 아직 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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