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웨이 엄마와 꼴통 딸의 스페인 여행 2
가장 먼저 준비했던 건 여권 만들기(신규 여권 예쁘더라), 그리고 항공권 예약, 숙소 예약. 이 3가지는 올초 2~3월에 끝냈다. 그땐 몰랐지. 내가 백수가 되어서 여행을 갈 줄...
만약 지금 알았던 것을 그때 알았더라면 7박 10일의 일정이 아니라 10일은 더 늘렸을 것 같다.(이 상황에 여행 일정 늘리겠단 소리가 나오니...) 회사는 3월에 임금 동결과 함께 점점 기울기 시작하더니 리더십의 부재와 불안감 조성, 여러 가지 루머를 타고 결국 사무실을 줄여 이사하더니 희망퇴직이라는 칼을 꺼내 들었다.
사회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안다. 여기에 내 자리가 있는지 없는지... 뭐 버틸 수야 있겠지. 존버가 이기는 거라 생각하는 사람한테는, 근데 나는 존버하는 스타일이 아니라 그럴 수가 없었다.
그래서 기울기 시작하던 3월부터 모든 여행 준비가 스톱되었다. 예약할 건 다 했으니까... 에라 모르겠다 심정으로. 그러던 것이 8월에 모든 상황이 종료되고 당장 여행모드로 바꿔야 했는데 이게 또 쉽지가 않더라. 이미 멘털이 탈탈 털려서 내가 여행을 가고 싶은 건지도 모를 지경이더라.
이 상황에 여행을 가는 게 맞는 건지, 다녀와서 당장 어떻게 하지 등등 오만가지 생각이 나서 솔직히 예전처럼 여행 준비하는 게 하나도 신나지 않았다. 엄마한텐 미안하지만 다른 사람도 아니고 엄마 모시고 갈 생각 하니 더 갑갑해졌다.
아는 분이 이런 말을 했다. "환갑 때랑 칠순 때 엄마 자유여행으로 모시고 해외여행 가는 딸은 귀하지. 상위 0.1% 아냐?" 그분의 의도는 대략 효도하는 딸이다 정도로 말씀하신 거지만 나는 상위 0.1%에 꽂혔다. 그래 0.1%가 맞지.
암튼,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한 퇴사 2주일째 조금 마음의 평화를 찾아 여행 준비를 시작했다. 벌써 코앞이라니 놀라울 뿐이다. 항공권 예매할 때만 해도 여행 가는 게 실감이 전혀 나질 않았는데 어쨌든 여차저차 나의 멘털은 여행모드로 돌아오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해외여행 간다고 하면 돈이 있어서 가는 줄 알지만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다. 여행 적금을 들어둔 사람이라면 모를까. 돈이 있어서 가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여행 적금을 미리 준비하면 좋겠지만 나는 대부분 들고 있던 적금을 깨거나 퇴직금으로 다녀왔다. 이번에도 적금을 깼고, 희망퇴직 위로금으로 다녀올 예정이다. 하하.
정확한 예산은 세우두지 않았지만 2인 800~1,000만 원을 쓸 예정이다. 부모님과 함께 하는 여행은 최대로 쓴다 생각하고 가야 한다. 더 쓰게 될지, 안 쓰게 될지 다녀와서 계산해 봐야겠지만 솔직히 별로 크게 관심 있지 않다. 나는 작은 수수료에는 벌벌 떨면서 큰돈에는 연연하지 않는 그런 사람이다. 그래도 이번엔 누군가 올려둔 엑셀 파일 다운받아 일정과 지출 기록을 해볼 예정이라 나중에 정산을 해봐야 알 것 같다.
아쉬운 부분이다. 내가 백수가 될 줄 알았더라면 이렇게 가진 않았을 것 같다. 원래 추석 때 껴서 가려던 것을 항공권이 너무 비싸 엄두도 못 내고 10월 첫 주로 옮겼다. 직항도 비싸서 경유로 알아보다가 결국 앞뒤로 하루씩 날려버리는 밤 비행기 타고 가는 일정이다. 10일은 10일인데 정확히는 7박 8일.
이 정도 일정으로 볼 거 많은 스페인을 다 보고 올 수 없다. 선택과 집중이 필요할 때. 바르셀로나와 세비야만 가기로 결정했다. 바르셀로나에 도착해서 하루 묵고 바로 세비야로 떠나 3박을 한 후 다시 바르셀로나에 와서 3박을 하고 가는 일정이다.
바르셀로나(1) -> 세비야(3) -> 바르셀로나(3)
왜 이렇게 짰냐고 묻는 다면 우선 예전에 홋카이도 여행에서 얻은 교훈으로 도착하자마자 다른 도시로 이동하는 건 굉장히 많은 변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때도 눈 때문에 연착으로 하코다테에 바로 가지 못해서 1박을 날렸기 때문이다. 바르셀로나 공항에서 바로 국내선으로 갈아타고 세비야 갈 생각도 했지만 너무 변수가 많아 지레 포기했다.
근데 다음날 세비야행 비행기도 이른 시간으로 해놔서 여독이 풀리기 전에 바로 다시 공항으로 와야 해서 걱정이 한가득이다. 나 혼자는 전혀 상관없는데 엄마가 걱정이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
다들 자유여행이냐, 패키지냐 고민할 줄 안다. 나도 그랬다. 나이가 드니까 우선 다 준비해야 하는 게 귀찮고 해외도 자주 나갔다 온 사람이나 익숙하지 나처럼 오랫동안 안 갔던 사람이 나가려니까 겁이 덜컥 났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우리 모녀처럼 캐릭터가 강한 사람들은 패키지로 다닐 수가 없을 것 같았다.
대신 스페인에 가서 할 투어를 신청해 뒀다. 가우디 반일 코스와 세비야 론다 코스다. 론다는 개인적으로도 충분히 다녀올 수 있었지만 신경 쓰지 않고 차량으로 편히 이동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비싼 값을 치르기로 했다. 역시 나이가 들면 엉덩이는 무거워지고 지갑은 가벼워진다.
국제선
카타르 항공으로 예약했다가 아랍에미레이트로 바꿨다. 이 과정에서 웃픈 사정이 있는데 카타르 항공권이 시간 안에 취소하면 무료취소라는 것에만 꽂힌 탓에 결제 취소하면 바로 돈이 들어오는 줄 알았는데... 생각해 보니 카드결제가 바로 될 리가 없다는 것이다. 당장 아랍에미레이트 항공권을 결제해야 했어서 결국 적금을 깼다. (현금으로 쓸 단 몇 백도 없었던 나...) 이번엔 적금 안 깨고 가나 했더니 어이없게 깨버려서 갑자기 통장에 돈이 쌓이니 부자가 된 것 같고..(닥쳐)
아랍에미레이트로 바꾼 건 밤 비행기라 오전에 도착하고(하루 잡아먹는다..) 카타르보다 약간 쌌다는 메리트였는데 지금은 좀 후회한다. 우선 시간이 너무 걸리고 앞뒤로 하루씩 잡아먹고... 시간은 돈인데... 아랍에미레이트 후기가 좋아서 한 번도 안 타봤으니까라며 합리화는 하고 있지만 솔직히 지금 다시 하라고 하면 돈 더 내고 직항 탈 거 같다...
경유라고 그렇게 싸지도 않아... 다들 싼 가격으로 예매들 많이 하던데 어떻게 하는 거야? 아무리 스카이캐너 들여다보고 검색해 봐도 나한텐 안 보이던데... 암튼 항공권 예약은 무조건 공홈에서 한다. 좌석 선택도 유료 좌석으로 했다.
국내선
세비야로 갈 때 국내선 부엘링을 이용하기로 했다. 나중에 검색해 보니 부엘링에 대한 악명이 높아서 제발 나만 아니면 돼라는 심정으로 떨고 있다. 수화물도 부쳐야 해서 분실 안 되고 잘 찾기를 바라고 있다. 근데 부엘링 저가 항공이라 굉장히 싸게 갈 줄 알았는데 옵티마 설정으로 해도 그렇지. 꽤 비싸더라. 대체 나만 왜 이렇게 비싸게 예약하는 건지... 너무 일찍 예약하면 오히려 비싼 건지 알 수가 없네.
부킹 닷컴으로 예약했는데 내가 가장 돈 생각 안 하고 결제하는 곳이 숙소다. 왜냐면 엄마랑 가기 때문에 무조건 호텔이어야 하고 너무 구린 데는 안 된다. 이번에도 후기가 괜찮은 곳으로 했다.
한 가지 아쉬운 건 너무 생각 없이 예약해서 바르셀로나 처음 도착해선 공항 가까운 곳으로 했어야 다음날 아침 이동하기 쉬운데 굳이 람블라스 거리 한 복판에 했다는 거다. 세비야는 대성당 근처, 다른 바르셀로나 숙소는 카탈루냐 광장 근처로 했다. 아직 가보지 않아서 만족도가 어떨지 모르겠지만 부킹 닷컴으로 이것저것 물어봤을 때 모두 다 친절하고 빠르게 알려줬다. 호텔에 궁금한 건 어플 메시지 이용해서 보내도 바로 답해준다.
가우디투어
가장 먼저 예약한 투어다. 다들 투어 하면 뭐다? 거기서 했다. 반일 차량으로 이동하는 거고 사그리다파밀리아는 따로 예약해야 해서 티켓 오픈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바로 해뒀다. 엄마랑 나는 무릎이 안 좋아서 어차피 꼭대기엔 안 올라갈 거라 내부 투어만 입장권 끊어놨다.
론다투어
론다만 가는 건 아니고 하얀 마을 뭐시기도 같이 들르는 코스다. 론다 가고 싶어서 세비야만 3박으로 했던 거라 처음엔 투어가 아니라 개인적으로 가려고 했는데... 귀찮다. 그냥 편하게 다니고 싶어서 1팀 혹은 2팀만 받는 프라이빗한 투어로 신청해 뒀다. 가격은 사실 따로 가는 것에 비해 얼마나 비싼지 모르겠다. 당연히 훨씬 비싸겠지. 근데 일정 짜다 보니까 론다 가려고 했어도 세비야는 2박만 했어도 충분할 거 같다... 막상 볼 게 없어서... 근교 다른 곳을 더 가야 하나 생각 중인데 이건 엄마 컨디션 봐 가면서 해야 할 것 같다.
몬세라트
투어가 아니라 개인적으로 갈 건데 약간 망한 거 같다. 5월부터 유료화되어서 따로 티켓 판매하는 사이트가 있다. 외국인은 여기서 예매해야 하고 내국인은 원래 홈페이지에서 예약하면 된다. 내국인은 무료다. 나는 검은 성모상은 줄 서서 보고 싶은 생각이 없고 다만 일요일 미사 드리면서 소년 합창단은 보고 싶어서 티켓 오픈할 때만 기다렸는데... 딱 한 달 전부터 오픈되는데 어찌 된 일인지 소년 합창단 예매는 토요일, 일요일 미사 예매가 막혀 있다.
대충 검색으로 알게 된 바 미사 예약은 따로 해야 한다. 이건 또 원래 사이트에서 하더라. 미사 예약은 무료다. 근데 내가 가는 날의 미사는 사이트에서 이미 풀이라 예약이 안 된다. 진작에 알았으면 미리미리 할 수 있었을 텐데 이렇게 헷갈리게 되어 있다니.
그러니까 정리하면 몬세라트 평일 예약은 당연히 티켓 사이트에서 하면 되고 주말 미사 예약은 원래 홈페이지에서 하고 가야 한다. 미사는 무료란 소리다. 하지만 엄연히 예약제라 예약한 사람먼저 들어가고 자리가 나야 들어갈 수 있다고 하는데 보장이 없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검은 성모상 예약을 미사 시간에 맞춰하면 합창단 공연을 들을 수 있다고 하는 팁을 주는데... 그렇게 까지 해야 하나 싶다.
미사나 합창단 공연이랑 상관없이 보려면 미사 시간은 피해서 가야 한다. 근데 또 티켓 사이트에는 수도원 입장권만 따로 팔아서 그냥 외국인은 돈 내고 들어오라는 건가 싶은데... 7월에 일요일에 다녀온 분에 따르면 따로 예약 안 하고 미사시간 끝나고 줄 서서 들어갔다고 한다.
이런 사정으로 되도록 예약은 하고 가고 싶어 수도원에 문의 메일을 남겨뒀는데 몇 명이나 오냐고 물어봐줘서 기대 중이다. 아직 완전한 예약 확답 메일은 안 받았지만 미사 참여에 관해선 혹시 모르니 메일이라도 보내보자.
플라멩코 공연
스페인 며칠 가는데 이렇게 예약할 게 많은 줄 미처 몰랐다. 언어(그게 스페인어든 영어든)가 능통하고 익숙하면 그냥 현장에서 부딪혀서 유동적으로 할 수 있겠지만 나 같은 언어치는 웬만한 건 다 한국에서 예약하고 가야 한다. 그래야 안심이다.
세비야까지 가서 플라멩코는 보고 와야겠다 싶었는데 난 당연히 현장에 가서 표 끊으면 되는 줄 알았더니 다들 한국에서 미리 예약하고 간다더라. 부랴부랴 어디서 봐야 할지 검색해 보고 제일 많이 가는데 예약했다. 플라멩코 박물관이 아예 따로 있는 데다 홈페이지 통해서 예약하기도 쉽다.
원래는 살 빼서 예쁜 원피스 사서 입고 갈 생각이었지만 살을 못 뺏기 때문에 입던 옷 가져가기로 했다. 가서 짐 많아지면 다 버리고 와도 좋을 그런 옷들 말이다. 10월 초라고 해도 많이 추워지지 않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여름옷에 긴 바지, 바람막이나 카디건 정도 가져갈 생각이다. 신발은 편한 운동화, 샌들.
이것도 가지고 있던 20인치 캐리어 2개 가져갈 거다. 되도록 가볍게 가져갈 건데 쇼핑은 많이 안 할 거지만 그래도 뭐라도 살게 분명해서 수화물 초과는 조심해야 한다. 홋카이도 여행 때 큰 캐리어 갖고 갔다가 무게 초과 되어서 겨울 옷 몇 개 버리고 온 기억이 있다.
스위스 갔었을 때는 사실 보안에 그렇게 크게 신경 안 썼다. 하지만 스페인은 얘기가 다르다. 오래전 배낭여행으로 유럽에 갔을 때 집시가 많다는 말에 복대까지 하고 신경을 썼는데도 2번 털렸다. 한 번은 프랑스 지하철에서 내 눈앞에서 크로스백 가져가려고 실랑이가 벌어졌고(믿기 힘들지만 정말 눈앞에서 지 가방처럼 끌어당겨서 어이가 없었다) 뜻대로 안 되자 다음 정거장에 내려서 나한테 욕과 함께 뻐큐를 날리던 어린 소녀들이 있었고, 한 번은 이탈리아에서 피자 먹다가 테이블에 올려 둔 캐논 카메랑 가방 가져갔다. 그것도 옆에 앉아 있던 사람이 알려줘서 뒤늦게 쫓아 나갔지만 이미 때는 늦으리....
시간이 오래 흘렀지만 스페인 역시 그렇다는 얘길 많이 들어서 보안에 철저할 수밖에 없다. 뱃살이 많이 나와서 복대까진 안 되겠고, 카페 공구로 미토도 크로스백 조금 싸게 살 수 있었다. 솔직히 디자인이 예쁘다곤 할 수 없다. 가슴 앞으로 메고 다니면 아기 안고 다니는 것처럼 덥기까지 하다. 그래도 어차피 예쁜 원피스 안 입을 거고 이렇게까지 한다고? 더러워서 안 가져가라고 만들 정도의 투박한 포스를 풍기고 있어서 맘에 든다. 무슨 갑옷 입은 느낌이다. 하하;;
원래 택이나 이런 거 안 하는데 캐리어가 너무 밋밋하고 비슷한 게 많아서 짐을 빨리 찾아서 나가고 싶다는 의지 어필로 커다란 네임 택과 캐리어용 스티커도 사서 붙였다. 정말 멀리서 봐도 내 거라고 보일 정도라 창피하다;;;
아이폰 XR 배터리가 맛이 갔다. 풀 충전해도 하루를 못 쓴다. 여행 가서 볼 일이 많을 테니 더 하겠지. 보조배터리 사려고 알아봤는데 XR은 무선 충전 가능한 자석이 없다. 슬프지만 그냥 일반적인 도킹형 배터리 샀다. 이거 예전에 회사에서 기념품으로 받아서 쓰다가 몇 번 만에 고장 나서 버렸는데 이번엔 좀 오래가주면 좋겠다. 이참에 아이폰 신형으로 바꿀까 싶었는데... 신형 가져갔다가 잃어버리거나 도난당하면 너무 끔찍하다.
그렇다. 모든 건 다 잃어버릴 수도 있다는 가정하에 너무 비싼 물건은 안 가져가는 게 좋다.
그 밖에 귀마개, 지병으로 인한 약, 아이패드 미니 가져갈 거고 다른 짐은 비슷하게 쌀 거 같다. 압축팩이나 멀티탭도 챙기라는 사람들이 많던데 우선 여름옷이라 압축팩이 그렇게 다이내믹한 효과를 줄 거 같지 않고, 멀티탭을 챙겨갈 만큼 충전할 게 많지 않다.
예전이랑 많이 변했다. 죄다 다들 카드만 챙겨가고 환전은 거의 안 해가더라. 이런 추세에 발맞춰 나도 그렇게 해보기로 한다. 하나는 불안해서 두 개는 혹시나 싶어 세 개를.... 가져가는 사람 나야 나.
트래블월렛, 트래블로그, 토스까지... 신용카드도 있어야 할 거 같아서 하나은행걸 신용카드로 만들었다. 트래블월렛이나 로그를 너무 나중에 알아서 대부분의 한국에서 예약은 토스로 했다. 환전은 얼마나 할지 아직 안 정했다. 환율이 어떻게 되더라...늘 그렇듯 여행 다녀오면 다 없앨 거다.(단호)
사실 올 초에 스페인어 회화를 공부하고 가겠다는 포부가 있었는데 회사가 그렇게 되면서 언어 공부도 3월에서 멈췄다. 지금은 유용한 단어라도 외우고 가자로 바뀌었다. 스위스 갈 때도 3개월 동안 시원스쿨에서 영어공부해서 갔다. 지금 생각하면 웃긴데 그때는 엄마 모시고 가는데 어리바리 헤맬 순 없다는 각오가 남달라 언어 공부에도 열심이었다.
물론 3개월 한다고 중고등학교 때 배워도 안 트인 영어가 갑자기 잘할 수 없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뱉어도 그다음에 상대방이 하는 말을 다 알아들을 수가 없다. 오히려 정확한 문장을 구사해서 물어보면 상대가 내가 영어를 잘하는 줄 알고 긴 문장으로 대답하는 경우가 많다...
차라리 핵심 단어 위주로 간략하게 얘기하면 거기서도 알아듣기 쉬운 말로 해준다. 라 꾸엔따, 뽀르 파보르나 꾸안또 꾸에스따 정도만 알고 가면 되지, 요 소이 데 꼬리아나 땡고 우나 에르마나 같은 말을 쓸 일이 뭐 있겠는가...
사실 아직도 뭘 빠뜨렸고 뭘 더 해야 할지 모르겠다. 엄마랑은 가기도 전에 벌써 2번이나 싸웠고 싸울 때마다 그깟 여행 안 가겠다고 심통을 부렸는데 그때마다 취소 수수료 내놓으라고 으름장을 놨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환갑 때 엄마와 칠순 때 엄마가 이렇게 다를 수가 있나, 다른 인격으로 변신한 거 아닌가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라 당황스럽다. 부모가 나이가 들면 아이 같아진다는 말을 왜 하나 했더니... 이해가 간다.
다른 건 몰라도 쉬고 싶거나 하고 싶지 않을 때는 무조건 말해 달라고 당부해 뒀다. 저렇게 예약한 것도 엄마한테 할 수 있겠냐고 몇 번을 물어보고 한 거긴 한 데 가서 어떻게 변할지 모르겠다. 엄마는 야간투어도 하고 싶다는데 그건 내가 안 된다고 했다. 하지만 모든 일정은 유동적이다.
돈 생각하지 않고 무조건 엄마한테 맞추기로 했다. 제발 모든 일정이 어긋나지 않고 비행기 연착 없이 수화물 분실 없이 잘 다녀오길 바랄 밖에.
Que tengas un buen viaj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