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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볼파란 Jun 29. 2023

울 엄마 칠순에 스페인을 가게 되었다!

마이웨이 엄마와 꼴통 딸의 스페인 여행 1

나는 엄마를 '마이웨이'라고 부르고 엄마는 나를 '꼴통'이라고 부른다.

엄마와 나 사이는 서로를 부르는 단어로 정리된다. 서로 안 맞는다. mbti가 유행하고서야 알았는데 엄마는 전형적인 'T', 나는 전형적인 'F'다.


여행은 대부분 혼자서 가거나 엄마와 함께 한다. 엄마가 나이 들기 전에 모시고 다닌다는 대의명분이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명분이고, 실상은 내 마음대로 하면서 누군가 곁에 있어주는 게 좋기 때문에 매번 같이 가자고 꼬신다. 엄마는 어떤 타입이냐면 '다 네 맘대로 해'라고 하고 다녀와서 딴소리하는 편이다. 다 맞춰 줘 놓고 '근데 그때 그건 아니었어' 이러는 타입.


엄마의 그런 성격 때문에 대판 싸우기도 했다. 뭐, 내가 일방적으로 삐져서 다신 엄마랑 가나 봐라, 한 것에 불과하지만... 최근에서야 알았는데 엄마는 속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겉으론 너무 좋은 티를 내지 않는다는 거다. 혹은 내가 원하는 만큼의 리액션을 해주지 않는다.


그런데 왜 또 여행을 가게 되었느냐 하면 올해가 엄마 칠순이기 때문이다. 환갑 때 스위스를 다녀왔고, 이제 코로나 격리도 해제된 마당에 엉덩이가 드릉드릉 해질 때쯤 엄마의 '칠순'이라는 대의가 생긴 것이다.


왜 스페인이냐?

간단하다. 내가 유럽에서 안 가봐서 아쉬웠던 나라가 스페인이었기 때문이다. 말로는 엄마 때문이라고 하지만 이 여행의 팔 할은 나의 개인적인 사심 만족이다. 엄마 칠순에 단 둘이 여행을 떠나는 내가 못 마땅한 동생한테는 엄마가 유럽을 좋아한다, 지금 아니면 이제 가고 싶어도 못 간다, 언제 또 가겠냐, 이렇게 멀리 여행 가는 건 마지막 일거다... 같은 말들로 구워삶았지만 동생도 알고 있다. 내 여행 레이더가 다시 발동한 것을.


올해 들어 계속 '스페인' 타령을 하다가 충동적으로 6개월도 더 남은 시점에서 여권을 다시 만들고(신규 디지털 여권 예쁘더라), 항공권을 구매했다. 날이 지나갈수록 항공권 가격이 계속 올라가서 오늘이 가장 싼 날이다라는 생각으로 카타르 항공을 구입했다가 다시 환불하고 아랍에미레이트 항공으로 재구매하는 생쇼를 하긴 했어도, 항공권을 구매하고 어플을 통해 숙소 예약을 끝마치고 나니 진짜 여행 떠나는 것이 실감 났다.


여행 가는 날이 너무 오래 남았다고 생각해 까마득하게 잊고 지냈는데 어느새 3개월 밖에 안 남았다.

지금부터 부랴부랴 다시 여행 모드를 발동해야 한다. 사실 때가 매우 좋지 않다. 항공권 구매할 때는 이렇게 될 줄 몰랐는데 회사 사정이 풍전등화에 놓여서 임금 동결에 이어 당장 내 앞날이 어떻게 될지 모르게 되었다. 하필 애매한 시기에 여행을 가는 바람에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처했다.


누가 이렇게 될 줄 알았던가. 이래서 사람은 한 치 앞도 못 보는구나. 엄마의 몸과 마음도 시시때때로 바뀐다. 오늘은 여행 가도 좋다고 했다가, 내일은 몸이 이래서 가겠냐, 그다음 날은 여행이고 뭐고 다 싫다고 했다가... 환갑 때와는 판이하게 다르다. 떠나기도 전에 이 여행이 괜찮을까 싶다. 하긴 나도 하루에도 열두 번도 마음이 변하는데 더 나이 든 우리 엄마가 오죽할까 싶다.


10월이 되어 스페인 땅을 밟고 있어야 내가 스페인 땅에 왔구나 실감 날 것 같다.

여행 준비는 항상 재미있고 신났었는데 이렇게 다운되어 힘들 일인가. 하나하나 준비하는 게 엄청난 중압감으로 다가온다. 구글 바드에 스페인 맛집 리스트 뽑아달라고 해야 할 판이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

항공권, 숙소... 그거 예매한 거면 다 한 거지.

안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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