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웨이 엄마와 꼴통 딸의 스페인 여행 3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내일 출국을 앞두고 컨디션 최악이다. 이제 가면 열흘 동안 운동 못 한다고(누가 보면 아주 그냥 운동에 미친 사람인 줄...) 연휴 내내 안 하던 운동을 어제 스쿼트에 아령까지 해대는 통에 근육통에 온몸이 아프다.
생리 때도 안 나던 뾰루지가 얼굴 오른쪽 턱에 정말 새끼손톱 만하게 나서 새빨갛게 부풀어 올라 너무 아프다.
게다가 함께 사는 또 다른 동거인과 대판 해서 말도 안 하고 지내는 터라 출국할 때까지 풀릴 기미가 없어 보인다. 가기 전에 왜 이런 일들이 나한테 일어나는 것인지 가뜩이나 여행 기분이 전혀 안 나는 이번 여행은 정말 내일 출국이 맞는지 의심까지 든다.
추석에 해외로 가족 여행을 떠난 친구에게 톡이 왔다. 여행사에서 영문 표기를 잘못해서 티켓을 못 받았다는 얘기에 소스라치게 놀라 나도 항공사에 예매한 티켓을 철자 하나하나씩 다 봤는데도 불안증이 생겼다. 친구는 연휴라 여행사에 연락도 안 돼서 결국 새 비행기 표를 끊어서 갔다.
여행이란 게 원래 뜻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 살 빼서 예쁜 옷 입겠다는 포부도, 가장 최고의 컨디션으로 가겠다는 다짐도, 가장 가까운 사람한테 응원을 받으면서 가고 싶다는 소망도 다 꺾였지만 어쨌든 떠나게 되었다. 그래도 생각지도 못한 사람들한테 응원과 격려 그리고 찬조금도 받았다. 이럴 때 하는 말 차라리 아무것도 모르는 남이 낫구나. 나는 앞으로 철저하게 기브앤테이크로 살아갈 거다.
오늘 짐을 쌌다. 유럽 여행 가는 데 20인치 캐리어 가지고 가는 사람도 나 밖에 없을 것 같다. 캐리어가 20인치라는 것도 짐 싸려고 꺼내서 알았다. 그거 아니면 혼자 홋카이도 여행 갈 때 가져갔던 28인치 캐리어 밖에 없다. 암만 생각해도 그 큰 캐리어를 가져갈 엄두가 안 난다. 이걸 들고 홋카이도 가서 눈 때문에 고생한 기억에 아찔하다. 기차 탈선해서 모든 기차가 멈춰 하루종일 기차란 기차는 다 타고 계단으로 들고 오르락내리락 개고생 하던 기억이 너무 강렬하게 남아 있다. 가져가고 싶지 않다. 그때는 젊기라도 했지...
그래서 엄마랑 나랑 사이좋게 20인치 기내용 캐리어만 하나씩 가져간다. 과연 다 들어갈까 싶었던 짐은 우리가 워낙 가져갈 게 없어서 그런지 대충 다 들어갔다. (스페인 쇼핑은 못하는 거 아냐? 가져올 데가 없네...) 이나마도 거추장스러워서 다 위탁으로 보낼 예정이다. 나이가 들면 손에 아무것도 없어야 편하다.
분명히 여행가기까지 시간이 굉장히 많았는데 그 긴 시간 동안 뭘 알아본건지 머릿속은 백지장처럼 하얗게 변했다. 공항 가는 것부터 게임 미션 클리어 하는 심정으로 가야할 것 같다. 하나하나 깨다 보면 뭐, 다시 집으로 돌아오겠지.
엄마 왈, 스트레스받아서 뾰루지 났다고 하니 여행 가는 게 그럴 일이냐면서 '그냥 되는대로 가자'고 한다. 우리 엄마가 자주 쓰는 말이 '되는대로'와 '뭔 상관'이다. 무슨 말만 하면 뭔 상관이야 내지는 되는대로 하는 거지라는 통에 속이 터질 때가 많았는데... 이번엔 그렇게 해야지.
여행은 되는대로 남들이 뭐라고 하건 뭔 상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