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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볼파란 Mar 16. 2024

서클 : 시간 여행자를 위한 운동 클럽

1.


주영은 언젠가 ‘컨택’이 올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감은 있었지만 설마 그게 닭똥집과 소주를 홀짝일 때 일 줄은 몰랐다.


또 다시 짧은 연애를 끝내고 다니고 있던 회사의 퇴사마저 앞두고 있던 초 겨울의 어느 날 밤, 주영은 하지 않던 짓을 했다. 홀로 포장마차에 들어가 닭똥집과 소주를 시켜 미련 없이 목구멍으로 털어 넘겼다. 소주 한 병을 비워 나갈 때쯤 한쪽 구석에서 누군가 다가와 쓱 명함을 건넸다.


“필요할 거 같아서요. 원한다면 가장 가까운 지점에 전화하고 찾아가 보세요.”


검은 코트를 입은 젊은 남자였다. 도톰한 명함엔 ‘Circle’ 로고와 함께 지점별 연락처와 간결한 문장 하나가 적혀 있었다.


[다시 돌아가고 싶은 과거가 있나요?]


술이 다 깰 정도로 놀라서 머리를 제쳤을 땐 이미 남자는 사라지고 없었다. 이런 식으로 컨택이 올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이라 어안이 벙벙했다.


인생에는 총 3번의 기회가 찾아온다는 말이 있다. 주영은 불투명한 시트지로 붙여 진 ‘Circle 서클’ 로고를 만지작거리며 유리 문을 밀어젖혔다. 38살 넘도록 살면서 한 번도 찾아 온 적이 없다고 생각했던 기회가 지금 바로 눈앞에 있었다.


나이가 적건 많건, 뚱뚱하든 날씬하든, 남자건 여자건 상관 없었다. ‘서클’의 컨택 기준은 서클만이 알았고 서클의 컨택이 오면 거의 대부분 사람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부름에 응했다. 그도 그럴 것이 형체는 없고 소문만 무성한 도시 전설처럼 서클에 대한 확인되지 않은 사실들이 사람들 사이에서 떠돌아다녔다.


누구는 3년 전 망친 시험을 다시 보러 가서 인생이 바뀌었다더라, 누구는 5년 전 실패한 첫 사랑을 다시 만나러 갔다더라, 누구는 2년 전 죽은 가족을 살리기 위해 갔다더라 하는 식의 이야기였다. 서클을 둘러싼 이야기들은 뼈대에 차곡차곡 살을 붙여 나갔고 마치 복권에 당첨되면 어떻게 살겠다고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의 청사진을 그리는 것처럼, 만약 제게도 서클의 컨택이 온다면 과거 어느 때로 돌아가 후회가 남지 않을 삶을 살겠노라 습관처럼 다짐을 하게 되는 것이다.


오지도 않을 미래를 그리는 것과 지나간 과거를 후회하는 것, 둘 중에 어느 쪽이 됐든 현재에 만족하는 이들은 그만큼 극히 드물었다.


서클 안은 주영이 상상하던 것과는 달랐다. BPM 120~ 140의 음악이 귓가를 때렸다. 중앙 홀에는 흔한 헬스클럽처럼 운동 기구가 놓여 있었다. 겉으로 보기엔 여느 헬스클럽과 달라 보이지 않았다.


“어서 오세요. 하주영 님이시죠?”


화려한 노란 머리에 귀걸이를 한 남자가 반갑게 맞이했다. 외모와 달리 무채색의 트레이닝 복 차림이었다. 얼떨결에 실내화를 꿰어 신고 상담실로 향했다.


시간 여행자들을 위한 헬스클럽이라고 하기엔 지극히 평범한 내부의 모습에 주영은 적잖이 실망한 상태였다. 뒤로 상담실 문이 닫히자 놀라울 만큼 음악 소리가 뚝 끊겼다.


“처음 오시는 분들은 실망하기도 하시죠. 이게 다야? 하지만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니까요.”


마음을 꿰뚫어 보기라도 하듯 남자가 눈을 접으며 웃었다.


“환영합니다. 하주영 씨. 서클에 잘 오셨어요. 전 서클 00점 매니저 이안입니다.”


주영이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를 받자 이안이 싱긋 미소 지었다. 웃음이 많은 얼굴이었다.


“서클이 어떤 곳인지 아시죠?”


“네…. 뭐. 얘긴 들어서.”


“주위에 다녀온 분들은?”


“없어요.”


“아…. 그렇군요.”


흠흠, 몇 번 목을 가다듬은 이안의 안내가 이어졌다.


“알다시피 서클은 시간 여행을 할 수 있는 곳이에요. 원한다고 해서 아무나 등록할 수 없고 철저히 저희 쪽에서 컨택하죠. 그건 시간 여행이 악용되는 걸 막기 위한 방법이죠. 일반 헬스클럽과 대부분 똑같다고 생각하면 돼요. 이용료는 한 달에 69,900원이고 3개월, 6개월 단위로 할인도 해드려요. 그 외 시간 여행은 한 번 할 때마다 500만 원의 별도 비용이 부과됩니다. 할부는 되지 않습니다. 다만 시간 여행 같은 경우 체험판이 있습니다. 원하면 하루 전날로 돌아갈 수 있는 체험판을 미리 이용해 보셔도 좋습니다. 체험판에 한해서 무료예요. 이용해 보시겠어요?”


“아….”


주영은 전화를 걸어 상담 예약하는데만 온 정신이 팔려 체험판이 있는 줄도 미처 알지 못했다.


“굳이 체험판을 이용할 필요가 없다면 안 해도 돼요. 시간 여행 기준은 10g 당 하루 씩 입니다. 1년이면 3650g 이고 3.65kg 정도죠. 오차 범위는 대략 며칠에서 몇 달이 될 수도 있어요. 정확히 원하는 날짜로 돌아가긴 힘들단 뜻이죠. 그래서 무게는 넉넉잡아서 계산해야 맞을 겁니다. 다만 시간 여행은 몸무게를 줄이는 거라 무리하면 안 되기 때문에 최대 5년 만 가능합니다. 그렇다고 10년 전 과거로 돌아가는 방법이 전혀 없는 건 아닙니다. 5년 단위로 시간 여행을 하면 됩니다. 10년 전 과거로 돌아가려면 계산 상 36.5kg이 필요해요. 한 번에 빼기엔 불가능에 가까운 수치죠. 하지만 5년이라면 18.25kg이죠. 일반 사람 몸무게에서 그 정도를 덜어내는 건 무리겠지만 서클 회원님들 대부분 과체중이 많아서 이 정도 빼는 건 무리가 아니거든요. 물론 자신의 몸무게가 덜 나간다면 살을 찌워서 다시 빼는 방법도 있어요. 5년 전 과거로 돌아가 다시 한 번 시간 여행을 하기 위해선 6개월의 유예 기간이 있어요. 그 안에 다시 원하는 만큼 몸무게를 빼시면 됩니다.”


그렇다. 서클의 시간 여행은 오로지 몸무게 수치로 계산된다. 인바디 기계 위에 올라가 몸무게를 재고 원래 몸무게 보다 빠진 만큼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 믿기 힘든 얘기지만 서클에선 가능한 일이었다. 시간 여행자들을 위한 운동 클럽이 바로 ‘서클’이었다.


주영 역시 제 나이 또래 여성들처럼 평생 다이어트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사회 생활을 하면서 술, 야식, 폭식 등으로 몸의 밸런스는 형편없이 무너져 갔고 나이를 먹으면서 살이 잘 빠지지도 않았다. 다이어트는 입으론 1년 365일 달고 살면서 정작 독하게 마음 먹고 실천해 옮긴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운동과 식단 같은 시간과 힘을 들여야 하는 방법 말고 쉽고 빠른 길로 살을 빼려 한의원에서 약을 지어 먹거나 병원에 가서 식욕억제제 같은 것도 처방 받아 먹어 본 적이 있었다.


그런 방법들이 효과가 아예 없었다고는 할 수 없다. 분명히 효과가 있었지만 요요 현상은 반드시 뒤따랐다. 맛있는 고칼로리 음식을 입안에 넣으며 짧은 죄책감과 긴 후회의 나날들이 이어지고 자기 합리화처럼 운동을 찔끔거리며 하다가 집어 치우는 악순환의 고리가 완성됐다. 그 결과는 학교 때보다 15kg 이상이 불어나 과체중에서 비만으로 진입하고 있었다.


원하는 과거로 돌아가기 위해 살을 뺀다는 것만큼 확실한 동기부여가 있을까. 주영은 서클에 오기 전에 수없이 생각하고 또 생각했었다. 과거로 돌아간다면 어느 때로 돌아갈 것인가.


수없이 후회되는 순간들은 많았지만 당장 돌아가야 한다면 그때 밖에 없었다. 3년 전 결혼을 약속했다 헤어진 강동식. 동식은 2년 간 사귄 사내 커플이었다. 결혼 이야기가 오갈 때쯤 다른 사람과 바람이 나서 헤어지게 됐다. 하필 바람 핀 상대가 동식과 같은 부서 신입 사원이었다. 주영은 동식과 부서가 달랐던 데다 평소 모든 사람에게 친절하고 상냥한 동식을 별 의심하지 않았다.


동식은 주영이 결혼 전 미리 회사에 사귀는 것을 알리자고 했을 때도 기겁을 했었다. 결혼 날짜 잡히기 전에 말해봤자 여러 사람 입에 오르내리고 피곤해진다는 이유였지만 이미 알 사람은 다 알고 있는 게 사내 연애였다. 동식이 바람 핀 것도 친하지 않던 동식의 부서 주임이 넌지시 사내 메신저를 통해 알려줘서 였다.


그때의 치욕과 모욕을 주영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었다. 바람 핀 걸 알게 된 것도 싫었지만 헤어지게 된 건 더 최악이었다. 바람을 피운 강동식은 여전히 회사를 다녔지만 주영과 바람 핀 대상인 신입 여직원만 회사를 그만뒀다. 신입은 온갖 욕을 먹고 도망치듯 떠났고 주영은 얼굴을 들고 다닐 수가 없었다. 그때는 그저 빨리 잊어버리고 싶은 마음에 회사를 그만두는 것도 감수했는데 그 뒤로 1년 가까이 악몽에 시달릴 정도로 마음 고생을 심하게 했다. 그것 때문 만은 아니겠지만 강동식과 헤어진 후로 좀처럼 진득한 연애를 하지 못하게 된 것도 있었다.


시간이 해결해 준다는 말은 어느 정도 사실이다. 시간이 흐르면 모든 감정도 옅어지게 마련이다. 옅어진 감정 위에 덧 입혀져 남은 것은 ‘억울함’이었다.


3년 전으로 돌아가 강동식의 뺨이라도 때렸어야 후련했을까? 아니면 사내 게시판에라도 그것들이 바람 핀 증거를 올리고 얼굴도 못 들고 다니게 만들거나 XXX 판에라도 뿌려서 손가락질 받게 만들어야 했었나? 그것도 아니면 5년 전으로 돌아가 아예 강동식과 사귀지 않는 게 가장 나은 방법일 것이다. 회사 워크숍에서 좋아한다고 따라다닐 때 매몰차게 거절하는 것도 방법이겠지.


주영은 돌아가 바로 잡고 싶은 과거가 고작 ‘강동식’ 따위라는 것이 여전히 과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반증 같아 입안이 썼다. 아직은 천천히 정할 수 있을 것이다. 빼야 할 살은 얼마든지 있으니까.


2.


서클엔 헬스 트레이너가 따로 없다. 하지만 모두 정직하고 성실하게 운동을 하고 있었다. 목적과 동기가 명확한 자들에겐 따로 동기부여를 해줄 존재가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모두 같은 공간에 있지만 서로 다른 시간의 레이어 위에 겹쳐져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서클 회원들 간의 ‘현재’는 전혀 다른 위치에 있었다. 주영은 2024년의 서클에 존재했지만 자신의 앞에서 미친 듯이 런닝 머신을 뛰고 있는 여자만 해도 2009년의 서클에 존재했다. 여자는 한 눈에 보기에도 비쩍 말라 보였다. 허벅지는 제 팔뚝보다 가느다랗고 볼은 움푹 패어 있었다. 더 이상 뺄 살이 있지도 않는 비쩍 마른 몸으로 땀을 뻘뻘 흘리며 뛰고 있었다.


여자와 말을 나눈 것은 정수기 앞에서 였다. 첫 날이라 긴장해서 이리저리 눈알만 굴리며 기구를 탐색하다 정수기 앞에서 물병에 물을 채우는 주영에게 먼저 말을 붙였다.


“신입이시군요?”


“아…. 안녕하세요?”


여자는 레깅스와 탑만 입고 머리는 한데 올려 묶었다.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얼굴이었다. 20대로도 보였다가 40대로도 보였다.


“첫 날이세요? 전 이현주에요.”


“네…. 전 하주영 입니다.”


“몇 년도에 살고 있어요?”


“네?”


“난 2009년에 있거든요.”


“아? 전 2024년인데….”


이안 매니저에게 설명을 듣긴 했어도 서클의 시간 개념은 헷갈리고 어렵기만 했다.


“처음엔 다들 어렵고 힘들어 하죠. 어느 때로 돌아갈 진 정하셨나요?”


“아뇨. 아직….”


주영은 처음 만난 현주에게 미주알고주알 늘어놓을 생각은 없어 대충 둘러댔다. 실제로도 강동식과 헤어질 당시로 갈지, 그 전으로 돌아가 아예 만남을 가지지 않을지 정하지 못한 것도 있어 얼버무릴 수밖에 없었다.


“저 앞에 아저씨 보이죠?”


현주가 가리킨 곳에는 40대로 보이는 배불뚝이 남자가 눈을 질끈 감고 벤치프레스를 하고 있었다. 바벨을 들어 올리는데 배가 덜덜 떨리는 게 보였다.


“저 분은 2038년에서 왔어요. 지금은 2028년에 살고 있대요. 마른 체구였는데 더 먼 과거로 돌아가기 위해서 살을 엄청 찌워서 왔어요. 말로는 어렸을 때로 가고 싶대요. 가장 그리운 시절이라고. 몇 십 년 전으로 돌아가기 위해 살을 찌웠다 뺐다… 대단하죠.”


“아….”


“저 건너편에 젊은 여자 보이죠?”


“네….”


현주는 그런 식으로 서클 안에 있던 사람들의 면면을 소개해줬다. 모두 다른 시간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이었지만 목적은 하나였다. 과거로 돌아가 삶을 바꾸고 싶다는 것.


“사실 저도 2024년에서 왔어요. 아직 원하는 만큼의 과거로 돌아가진 못했어요. 몇 년 정도 더 남아서 열심히 빼고 있죠.”


“…뺄 살이 없어 보이는데요. 괜찮으세요?”


“하하. 그죠? 제가 생각해도 이렇게 빼다간 딱 죽기 좋을 것 같은데 살을 찌우는 것보다 빼는 게 저한텐 훨씬 쉬워서요. 저는 그래도 나은 편이에요. 어떤 분은 극단적인 다이어트를 하는 바람에 거식증이 와서 결국 시간 여행을 더 이상 하지 못하게 됐어요. 저는 그렇게 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죠. 아직은 괜찮아요. 3개월 정도 시간이 더 남았거든요. 조금만 하면….”


현주의 눈에 간절한 빛이 어렸다. 그렇게까지 해서 돌아가고 싶은 과거가 뭐냐고 묻지 않았다. 서클에 있는 사람들의 사연은 다 달랐지만 모두 같은 눈빛을 하고 있었다. 어쩐지 그 눈빛들에 숨이 턱 막혔다. 그들은 ‘현재’에 속해 있지 않은 사람들 같았다. 모두 흘러가 버린 과거에 얽매어 옆을 가린 경주마처럼 미친 듯 과거를 향해 달려갈 뿐이었다.


주영은 첫 날 운동을 끝마치고 매니저 이안을 만나러 상담실로 향했다.


“저, 체험판을 이용할게요.”


“그러시겠어요? 하루면 10g이니까 음…. 손가락에 있는 반지 몇 개를 빼면 될 거 같아요.”


주영은 손가락에 끼고 있던 실반지와 은반지를 모두 빼내 테이블 위에 두고 인바디 기계 위로 올라갔다. 처음 와서 쟀던 기본 설정된 몸무게에 비해서 14g 정도 빠져 있었다.


“좋아요. 그럼 설정해 드리겠습니다. 버튼을 눌러 주세요.”


이안이 모니터를 보며 키보드를 몇 번 두드리자 인바디 화면 위로 ‘Return’ 버튼이 떠 올랐다. 주영은 망설임 없이 리턴 버튼을 꾹 눌렀다.


“이 문을 나가시면 하루 전으로 돌아가 있을 겁니다. 다시 하루를 살아보시고, 하루가 끝나기 전에 서클에 와 주세요.”


“하루를 살아보고 나서 마음이 바뀌면 어떻게 되나요?”


“그렇다면 돌아오지 않아도 좋아요. 선택은 주영 님의 판단이니까요. 저희는 기회를 드린 것일 뿐. 대부분 돌아오시긴 하죠….”


이안이 싱긋 웃었다.


“하루가 지나면 주영 님을 선택한 서클의 유효 기간은 끝이 납니다. 이점은 명심해 주세요.”


주영은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고 문을 나섰다. 이미 결심을 끝낸 상태였다. 주영은 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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