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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한 입 소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by 볼파란

진우는 호텔 정문 앞에서 잠시 주저했다. 호텔의 이름이 금빛으로 새겨진 대리석 기둥이 눈 앞에 우뚝 서 있었다. 입구에 세워 진 크리스마스트리는 그의 키를 두 배로 넘을 만큼 컸고, 가지마다 반짝이는 장식들이 푸른빛과 은빛을 교차하며 빛났다. 문이 열리자 안쪽에서 따뜻한 공기가 흘러나왔다. 진우는 코트를 여미며 안으로 들어섰다.


호텔 로비는 웅장함 그 자체였다. 천장에는 수백 개의 크리스털 조각이 박힌 샹들리에가 반짝였고, 그 빛이 로비 전체를 금빛으로 물들였다. 벽면은 대리석으로 마감되었으며, 중앙에는 마치 빙하를 조각해 놓은 듯한 투명한 유리로 만든 분수가 우아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분수 위를 둘러싼 것은 작은 미니어처 크리스마스 마을이었다. 그 안에서 작동하는 기계 인형들이 회전목마를 타고 있었고, 산타클로스 모양의 조명이 천천히 돌아가며 로비에 부드러운 그림자를 드리웠다.


진우는 자신의 초라한 코트를 내려다보며 주눅 들었다. 그의 등 뒤로는 로비에 들어서자마자 그를 스캔하는 듯한 보안 드론이 떠다니고 있었다. 드론의 차가운 빛이 순간 그의 얼굴에 스치더니, 다시 조용히 천장 쪽으로 올라가 버렸다.


로비에 있는 사람들은 전부 완벽한 젊음을 유지한 모습이었다. 고급스러운 정장과 드레스 차림의 사람들이 잔을 들고 웃으며 대화하고 있었다.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만끽하는 듯했지만, 그들 사이에는 어떤 긴장감도 없는 완벽한 균형이 느껴졌다.


진우는 자신이 이곳에 속하지 않는다는 걸 단번에 깨달았다. 그가 엘리베이터로 향하자, 거기서도 작은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고급스러운 터치 패드에 자신의 초대 코드를 입력하자, 엘리베이터가 부드럽게 열렸다. 안쪽은 마치 유리로 만든 공간 같았다. 도시의 겨울 풍경이 투명하게 펼쳐졌고, 하얀 눈이 창밖에 흩날렸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진우는 잠시 심호흡을 했다. 손바닥에 땀이 배어들었지만, 그를 부른 고객이 있는 호텔 라운지 카페로 향했다. 엘리베이터가 멈추고 문이 열리자, 더 깊은 침묵과 따뜻한 공기가 그를 맞이했다. 리안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그를 기다리고 있는 곳이었다.


리안은 카페로 향하며 한 손으로 자연스럽게 머리카락을 정리했다. 호텔 로비의 대리석 바닥은 구두 굽이 닿을 때마다 고요한 울림을 퍼뜨렸고, 크리스마스를 기념한 커다란 트리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전나무의 짙은 초록색 가지마다 섬세하게 장식된 유리구슬과 금빛 리본이 조명을 받아 반짝였고, 꼭대기엔 별 모양 장식이 다정하게 빛나고 있었다.


트리 옆에는 작은 장식품과 카드들이 전시된 테이블이 있었는데, 호텔 투숙객들을 위한 메시지처럼 보였다. ‘영원히 아름다운 당신에게’라는 문구가 새겨 진 카드 한 장을 보고 리안은 살짝 미소 지었다.

카페에 들어서자 그녀의 움직임이 자연스럽게 느려졌다.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한껏 살린 붉은빛 조명과 따뜻한 벽난로가 시선을 사로잡았고, 그 위로 재즈 밴드의 음악이 은은하게 흘러나왔다. 피아노와 색소폰의 조화가 공간을 가득 채우며 느리게 흐르는 시간의 여유를 느끼게 했다.


테이블마다 놓인 촛불은 부드러운 빛을 내며 작은 그림자를 만들어냈고, 창밖으로는 눈이 소리 없이 내리고 있었다. 창문에 비친 자신의 모습과 희미하게 겹친 흩날리는 눈송이를 보며 리안은 잠시 멈춰섰다. 지금 이 순간은 고요하고 평화로웠지만, 이런 조용한 순간이 그녀를 더 깊은 공허로 밀어 넣는다는 것을 알았다.

예약된 테이블은 카페 중앙에서 약간 벗어난 자리였다. 투명한 유리 테이블 위엔 작은 트리와 촛대가 놓여 있었고, 앉아있는 동안 그녀는 커피잔을 가볍게 손끝으로 돌리며 시계를 흘깃 봤다. 시간이 다 되어갈 무렵, 문 쪽에서 낯선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문 앞에서 잠시 머뭇거리는 듯하더니 카페 안으로 들어섰다. 매끄럽게 빗질된 머리와 단정한 정장이었지만, 호텔의 화려한 분위기와는 어딘가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었다. 리안은 그를 유심히 관찰하며 자신도 모르게 커피잔을 내려놓았다. 그는 어쩐지 젊음의 생기와 삶의 흔적을 동시에 지닌, 오래전 잊었던 것을 떠올리게 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안녕하세요, 리안 님.”


그가 자신에게 다가와 약간의 긴장감이 묻은 목소리로 말했다. 리안은 얇게 미소 지으며 손짓으로 자리를 권했다.


“앉아요. 하진우 씨.”


리안이 ‘에스코트 서비스’를 신청하게 된 계기는 몇 개월 전에 세상을 떠난 태준 때문이었다. 태준은 오랜 친구였다. 벌써 150년을 넘게 살고 있는 리안은 50년 전에 끝낸 세 번째 결혼을 끝으로 더 이상 결혼은 하지 않았다. 대신 태준을 만나 이성적인 결합보다는 우정으로서 옆에 남기를 택했다.


리안이 살고 있는 상급 구역은 불멸자들이 살고 있는 구역으로 대부분 세상을 좌지우지 하는 고위급 직업을 가지고 있거나 영향력이 있거나 부자들로써 20대의 모습에서 더 이상 나이 들지 않고 살아가는 자들이었다.


인류는 불멸에 대한 오랜 연구 끝에 불가사리, 해삼, 해파리 등의 재생 능력을 가진 해양 생물에서 답을 찾았다. ‘Bio Mare Institute’ 연구소는 심해 생물의 독특한 재생 능력 세포와 무한 세포 주기 기술을 통해 항노화 치료제를 개발하였고 여기서 추출한 물질을 통해 인간의 세포 손상 복구와 수명을 연장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Bio Mare Institute’ 연구소의 과학자들은 노벨 화학상을 받았고 인류의 수명 연장과 불멸에 한 발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되었다. 시간이 흘러 이 추출물이 상용화 되기 시작하면서 인간의 등급은 자연스럽게 나뉘게 되었다. 어마어마한 가격의 주사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이들이 모여들어 살기 시작하며 영원히 늙지 않게 되었다. 이들이 사는 구역에선 나이든 노인의 모습을 발견할 수 없었다. 20대에 들어서면 자연스럽게 ‘불멸자의 주사’를 주기적으로 맞게 되었고 100년, 200년이 넘도록 젊음을 유지하며 살았다.


상급 구역에서 밀려난 이들은 하급 구역에서 모여 살았다. 오물과 냄새로 뒤덮여 있고 건물은 낡았으며 알 수 없는 바이러스가 돌아 감염되어 죽어 나가기도 했다. 나이 들고 가난한 이들은 상급 구역에서 하지 않는 고된 일들을 하거나 도둑질을 하며 살았다.


리안이 신청한 ‘에스코트 서비스’는 하급 구역에서 젊고 아름다운 이들을 뽑아 운영하고 있는 서비스였다. 그들은 실제 나이 20살에서 30살까지의 사람들로 상급 구역의 불멸자들의 필요에 의해 암암리에 운영되고 있는 음지 서비스이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불멸자들은 ‘살아있는 싱싱한 젊음’을 동경했다. 왜냐면 그들은 겉 모습은 비록 20대 일지언정 실제 나이는 대부분 100살이 넘었다. 모두 생기 없는 조화 같은 모습이었다. 아름답지만 음울하고 아무런 향기도 나지 않았다. 오랜 세월 살아오면서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경험하면서 특별히 간절할 것도, 열정도, 순수함도, 웃음도 잃었다. 슬플 것도 없지만 딱히 기쁘거나 행복할 일도 일어나지 않는 무위의 세계가 그들이 누리고 있는 삶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정반대로 하급 구역의 생생한 생동감을 동경하기도 했다. 실제 20대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정과 활기를 그리워했다.


태준은 어느 날 ‘자발적 죽음’을 택했다. 리안의 만류에도 절대 굽히지 않았다. 상급 구역에서의 죽음이란 불멸자의 주사를 포기하고 몇 달 안에 급격한 노화로 인한 죽음을 말한다. 몇 백 년 동안 살면서 더 이상 어떠한 의미도 찾을 수 없는 불멸자들은 자발적 죽음을 선택하기도 했다.


리안은 여전히 태준의 죽음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죽음을 선택한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태준이 죽기 전 하급 구역의 ‘에스코트 서비스’를 이용했던 걸 알고 있었다. 서비스를 신청한 이유는 태준 때문이었다. 서비스를 이용해 보면 혹여라도 태준이 죽음을 선택한 이유를 알 수 있지 않을까.


“오래 기다리셨나요?”


“아뇨. 그렇게 오래 기다리진 않았어요.”


진우는 카페 안을 떠다니는 보안 드론에 신경이 쓰이는 듯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바라봤다.


“신경 쓰여요? 상급 구역에선 일상이라 몰랐는데… 신경 쓰일 수도 있겠군요. 살고 있는 곳엔 이런 게 없겠죠?”


진우의 마음을 상하게 할 의도는 없었지만 이 말에 진우의 입이 굳게 다물어졌다.


“에스코트 서비스는 처음이에요. 실물이 훨씬 낫군요.”


리안의 말에 진우가 이내 얼굴을 살짝 붉혔다.


“저도… 처음입니다.”


“나이가…?”


“25세 입니다.”


“내 나이는 알고 있어요?”


진우가 말하기 곤란하다는 듯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158세에요.”


리안의 말에 진우가 깜짝 놀라듯 고개를 들었다 숙였다. 이미 알고 있던 사실에 새삼스럽게 반응하는 게 귀여워 보였다. 처음이라더니 쑥맥처럼 구는 게 일부러 그러는 건 아닌 것 같았다. 매칭 할 때 인물을 보고 고른 건 맞지만 처음이든 아니든 상관 없었다.


리안은 실제 20대를 정말 오랜만에 봤다. 상급 구역에서 인구 수는 더 이상 늘어나지 않았다. 대부분 몸이 망가질 수 있는 출산을 선택하지 않을 뿐더러 불멸자의 주사를 맞아 젊음을 유지해도 자궁의 기능까진 유지할 수 없는지 자연 임신이 이뤄지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리안은 자신의 말에 일일이 반응하며 얼굴이 붉어졌다 굳어졌다 하는 진우의 얼굴을 보면서 선악과를 눈앞에 둔 이브가 된 듯 했다. 옳지 않은 일이라는 걸 알면서 거부할 수 없는 마음이 들었다. 진우는 아직 경험해 보지 못한 것들이 많아서 어떠한 것도 받아들이고 순수하게 반응할 줄 아는 나이였다. 자신의 25세가 어땠는지 기억도 거의 나지 않아서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리안은 그 나이 때부터 주사를 맞기 시작했으니 아마 외모로는 25세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을 터였다.


“괜, 괜찮습니다…. 충분히 아름다우세요.”


“알고 있어요. 그러라고 그 비싼 놈의 주사를 여태 맞고 있으니까.”


“아….”


진우의 얼굴이 바보처럼 되었다. 하급 구역에 사는 이들에겐 불멸자의 주사는 꿈 같은 일이었다. 에스코트 서비스를 하다 눈에 띄어 상급 구역에서 살게 되는 경우도 있긴 했다. 그렇게 되면 영생의 꿈을 이루며 상급 구역에서 살 수 있게 되었으니 많은 이들이 불나방처럼 에스코트 서비스에 뛰어들었다. 물론 그건 그들의 젊음이 다하는 아주 잠시 잠깐의 순간으로 대부분은 30세가 넘어가며 그 쓸모를 다하게 된다. 그 후엔 하급 구역에서 여러 일을 전전하며 나이 들어 가게 된다.


리안은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을 들여다 보며 커피 잔을 들어 마셨다. 재즈 밴드의 음악이 여전히 흘러 나오고 있었다. 피아노와 색소폰의 조화가 공간을 가득 채우며 느리게 흘러갔다.


“올라 갈까요?”


리안에게 주어진 시간은 아직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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