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의 마음, 과학자의 머리

외줄타기 전문가가 되어라!

by 볼파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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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실천에서 사회복지사란 '예술가'와 '과학자'의 역할을 모두 해내야 한다고 했다. 뜨거운 마음과 차가운 머리 사이의 외줄 타기 하는 사람이 바로 내가 처음 느낀 사회복지사란 직업이었다. 외줄 타기는 외롭고 힘든 일이다. 조금이라도 집중력이 흩트려지거나 발을 잘못 내디뎠다간 끝도 없는 곳으로 추락하기 일쑤다.


하지만 경력도 없이 늦은 나이에 사회복지사 일을 하려는 내게는 이 문장이야말로 자소서에 구구절절 쓸 수 있는 한줄기 빛과도 같은 존재였다. 창조적인 일을 했던 디자이너로서의 내가 사회복지 전문가로서의 학문적인 이론을 무장할 수 있다면 예술가와 과학자의 두 가지의 외줄 타기에 적임자야말로 나일 거라고 읍소했다.


인생의 2막은 쉽지 않았다. 한 가지 우물만 파며 나태하고 권태로웠던 나는 커튼콜은 고사하고 조기하차 당해 무대에서 내려와야 할지도 몰랐다. 기회를 얻기조차 힘들어 일 년 넘게 헤매었다. 돈은 떨어지고 자존감은 바닥을 쳤다. 경력 있는 신입을 뽑는 아이러니함 때문에 요즘 20대의 취업난이 심각하다는데 그건 새로운 시작을 앞둔 나도 마찬가지였다. 일을 해야 경력이 있지, 경력 있는 사람을 뽑는다니까요? 아니, 그러니까 일을 해야 경력이 생긴다니까...?


사회복지사로 숱한 면접을 보면서 느꼈던 절망감과 압박감은 나는 안 되겠구나였다. 돌아갈 길마저 막힌 진퇴양난의 심정은 이대로 다 때려치우고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백세 시대라면서 40~50대만 되어도 일했던 직장에서 뒤로 몰려야 하는 희한한 사회적 구조에 염증이 일었다. 특히 내가 일했던 디자인 분야는 더더욱 심했다. 작은 중소기업만 전전하던 인하우스 디자이너의 삶이란 한계가 명확했으니까. 나 역시 마지막 직장에서 희망퇴직 수순으로 그만두었고 다시는 디자이너로서 일을 하지 못하겠구나 싶었다.


절벽으로 밀리고 밀려서야 새로운 일을 감행할 용기가 생겼다. 사실 자격증을 따둔 것은 몇 년 전의 일이었으나 그전까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 책상 앞에 앉아 태블릿 펜을 끄적거리며 밥벌이를 해온 내가 아무리 실습까지 해봤다고 하나 사회복지사로 일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회사를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일을 알아보면서 그제야 현실 앞에 막막해졌다. 혼자 고군분투하다가 2024년을 넘기고 싶지 않아서 고용부에서 하는 '국민취업지원제도'를 통해 큰 도움을 받았다. 실업급여에 비해 지원금은 작지만 직업상담사가 일대일로 붙어 취업을 알선해 주고 응원과 지지를 아끼지 않는다. 게다가 취업에 성공하면 수당을 6개월, 12개월 두 번에 나눠서 준다. 그 금액이 적지 않다.


나는 상담사가 해준 따뜻한 말 몇 마디에 정말 큰 힘을 얻었고 바닥을 친 자존감도 조금은 회복할 수 있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상담사가 매칭해 준 곳에 취업을 할 수 있었다. 이곳에 구구절절 면접을 보러 다닌 일이나 실패했던 일을 나열할 생각은 없지만 나 같은 분에게 격려와 응원을 아끼고 싶지 않다.


느슨한 연대로서 이제 한 발을 내딛고 10개월 차가 된 사회복지사의 단상과 경험을 적어나갈 생각이다.



과거보다 더 용감해지세요. 그러면 미래가 당신에게 기회를 줄 겁니다.
- 조지 마이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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