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해도(北海道) 여행 01
2월 21일 화요일. 인천공항에서 11시 20분 비행기였다. 예정대로라면 1시 50분이면 홋카이도 신치토세 공항에 도착하는 거였다. 멀지 않은 곳이었고 일본이어서 마음도 푹 놓고 있었고 카페에 들락거리면서 비행기가 연착되었다느니 눈 때문에 뜨질 못한다느니 하는 얘기는 다 다른 사람들 이야기인 줄 알았다. 2월 말에 떠나는 여행이었고 이쯤 되면 괜찮지 않을까 하고 나 혼자 생각했다. 내가 타고 가는 제주에어는 항공권이 싼 대신 물 한잔 주는 게 다이고 무료 수화물도 15kg이지만 짧은 비행시간에 물도 안 마시면 어떠냐 싶었고 내 여행 최초로 가장 커다란 26인치 캐리어를 끌고 가면서도 15kg은 넘지 않을 거라는 근자감이 들었다. 정말 근거 없는 자신감. 현실감 1도 없이 떠나는 여행이어서 내가 잠시 어떻게 되었던 게 분명하다. 이런 근자감은 떠나는 날 모두 다 깡그리 무너졌기 때문이다.
예전에 제주도에 가면서 아시아나가 지연 출발하자 불같이 화를 냈었던 나이다. 비행기는 제시간에 떠서 제시간에 도착해야 한다고 굳게 믿었다. 그런 믿음은 물론 지금은 없다. 여행을 많이 해본 건 아니지만 하다못해 그 멀고 먼 아프리카 가면서도 비행에 문제는 없었다. 그런데 하물며 몇 번이나 가본 일본인데... 북해도라고 하지만 그래도 다 사람 사는 곳이고 눈이 오면 얼마나 오겠니... 너무 마음을 푹 놓고 있었다. 집에서 택시를 타고 공항철도를 타고 공항에 도착했다. 이른 아침이었고 여유롭게 셀프체크인을 하고 수화물도 문제없이 보냈다. 느긋하게 해물순두부로 아침을 때웠다.(많이 먹어둘걸....) 출국장 줄이 너무 길어서 잠깐 헉했지만 줄은 금세 줄었고 생각보다 면세품 포장한 것이 상당한 부피여서 놀랐지만 별문제 없이 인도장에서 미리 사둔 면세품도 잘 받았다. (원래 면세쇼핑을 전혀 안 하지만 큰 맘먹고 가족들 화장품을 사둔 터였다.) 해물 순두부를 거의 다 남겨서인지 다시 배가 고파져서 게이트 앞에 있는 카페에서 크루아상과 아이스커피를 먹었다.
내 자리는 바로 앞좌석이었다. 저가항공을 끊으면서 대신 유료 좌석으로 업그레이드 시켰다. 가장 빨리 내릴 수 있는 자리. 이게 다 무슨 소용이었던가. 초반 비행은 순조로웠다. 내 옆좌석엔 나이 든 부부가 앉았다. 내가 먼저 좌석을 예약했던 건지 내 바로 뒤에 딸이 앉았다. 딸과 함께 가족여행차 홋카이도를 가는 거였다. 나중에 나한테 간식도 챙겨주시고 정이 많으신 분들이었다. 나는 가져간 노트북으로 영화를 보았다. '칠드런 오브 맨' 이런 세기말적인 영화를 여행지에서 보기는 무언가 맞지 않았지만 좋은 영화였다. 다 보지는 못하고 영화를 보다가 ebook으로 가지고 간 책을 보다가 이쯤 되면 내릴 때가 되지 않았나 싶었는데 안내 방송이 나왔다. 신치토세 공항 혼잡으로 하늘에서 잠시 대기해야 한다는 얘기였다. 이때만 해도 사태는 나쁘지 않았다. 창 밖으로 약간씩 눈이 흩날리고 있었지만 모두 즐거운 분위기였다. 오히려 하얗게 눈 쌓인 삿포로를 얘기하며 저마다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비행시간이 길어지면서 배가 고파졌다. 이렇게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지만 제주에어 기내식을 사 먹었다. 그래서 고른 게 다시 커피와 크루아상... 그때만 해도 곧 도착할 거라 생각했고 간단하게 먹고 가서 제대로 된 에끼벤을 먹을 생각이었다.
분위기가 바뀐 건 눈 때문에 신치토세 공항이 폐쇄되면서 나리타로 회항한다는 방송이 나오면서부터였다.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폐쇄라니? 폐쇄라니... 멀쩡하던 공항에 눈이 얼마나 내렸길래 폐쇄라니! 나중에서야 알았지만 폐쇄가 아닌 앞에 비행기가 착륙하면서 약간의 사고가 있어서 부분 폐쇄가 되었던 것이고 내 추측엔 나리타로 회항한 건 제주에어가 기름이 떨어져서 주유를 하기 위해서였지 않나 싶다. (항공사 놈들은 그 어떤 얘기도 정확히 해주지 않아 분통을 터지게 만들었다. 그리고 결국 어떠한 해결도 해주지 않았다!) 나리타로 회항하는 몇 시간 동안 나는 멀미가 나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내 첫날 일정은 삿포로가 아니었다. 무슨 생각으로 첫날부터 공항에서 4~5시간 떨어져 있는 하코다테에 가겠다고 결정했는지 모르겠지만 공항에서 내려서 바로 JR레일패스를 사고 하코다테에 가는 기차에 몸을 실을 예정이었다. 첫날 숙소도 그래서 하코다테에 예약해두고 가는 터였다. 이렇게 되면 어쩌면 첫날에 하코다테에 가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들 나리타 공항에 도착해서 밖에 나가지도 못하고 비행기에 갇혀 호텔에 전화하기 바빴다. 나는 오면서 통신사 로밍을 완전 차단하고 왔다. 데이터뿐만 아니라 모든 음성도 완전 차단.... 포켓와이파이만 빌려갖고 온 터라 전화를 할 수도 없는 상황... 미리 예약해둔 하코다테 숙소에 메일만 보내 놓을 수밖에 없었다. 차라리 나리타에서 하룻밤 묵고 다음날 넘어가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리타에서 생각보다 오래 머물렀는데 이유는 기름 주유도 해야 했고 항공 승무원들의 업무 규정상 근무시간이 오버가 되기 때문에 인천서부터 오는 승무원들을 기다렸다가 승무원 교체까지 하고 가야 한다는 거였다. 어이가 없었는데 결국 우리가 그토록 오랫동안 발이 묶여 있던 건 신치토세 공항의 눈 때문이라기보다는 미숙한 제주에어의 대처 때문이라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승무원 교체하는 데까지는 시간이 오래 걸렸다. 나가지도 못한 채 비행기 안에서 발이 묶여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고성이 나오기 시작했다.
내 옆좌석에 느긋하게 웃으면서 상황을 관조하던 부부도 동요하기 시작했고 아저씨 입에서 험한 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이 소리를 고스란히 감당해야 하는 건 타고 있는 승무원들이지만 한두 번 겪어본 게 아닌지 하는 말은 똑같았다. 신치토세 공항이 원래 겨울엔 변수가 많아서 이런 일이 자주 있다는 말.... 왜 난 이걸 생각도 하지 않았을까? 이미 하코다테로 가는 막차는 끊어진 상황, 승무원에게 사정을 털어놓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자 오히려 승무원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날 놀라서 쳐다본다.
아니, 여자 혼자 오셨어요?!
여자 혼자 늦은 밤에 신치토세 공항에 떨어지는 것을 나보다 걱정하는 승무원 때문에 내가 더 불안해졌다. 아니! 여기가 남미도 아니고 일본인데 혼자 오지, 그럼 누구랑 온단 말인가. 여행 카페에 글을 남기니 누군가 국내선 4층에 우리나라 찜질방 같은 시설이 있다고 알려줬다. 찾아보니 편안한 잠자리는 아니지만 조식도 있고 짐도 맡아주는 곳이라 공항에서 나가지 말고 이곳에서 묵고 다음날 하코다테로 떠나는 게 제일 나을 것 같았다. 나는 화도 나지 않았는데 작은 화는 큰 화를 이길 수 없고 이미 엎질러진 물은 담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당장 도착해서가 걱정이었다. 비행기는 다시 신치토세로 향했다. 비행기 안에서만 10시간이었다. 하루 종일 먹은 거라곤 해물순두부 조금과 아이스커피와 크루아상, 다시 기내에서 먹은 아이스커피와 크루아상이 전부였다. 신치토세로 가는 길에 승무원들이 주먹밥을 나눠줬다. 마치 피난 가는 길에 구조 식품 받아먹는 난민이 된 기분이 들었다. 비행기는 야속하게 신치토세 공항에 밤 9시가 넘어서야 도착했다. 아무도 없는 공항에서 부랴부랴 공항 직원들이 나와 입국 수속을 밟고 짐을 찾고 모두 다 흩어졌다. 다 어디로 갔을까? 나처럼 혼자였던 사람은 없었던 것 같다. 여자 혼자 오셨어요?라고 놀란 토끼눈으로 날 바라보던 승무원의 말이 귓가에 계속 맴돌았다. 다들 어디론가 전화를 하고 난리였는데 나는 전화도 할 수가 없어 애꿎은 핸드폰만 들여다보다가 국내선 쪽으로 향했다. 공항 자체는 크지 않아서 오히려 다행이었다. 나 같은 길치 방향치가 공항까지 넓어서 어디가 어딘지 몰랐으면 울뻔했다. 국내선 가는 길은 그냥 쭉 따라서 직진만 하면 된다. 원래대로라면 지하로 내려가서 레일패스를 사서 기차를 타야 했지만 나는 4층으로 올라갔다. 공항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는데 4층에 올라가서 깜짝 놀랐다. 없었던 사람들이 죄다 4층에 있었나 보다. 그것도 시끄러운 중국 관광객들이 단체로 떼를 지어 삼삼오오 앉아있다. 공항에서 노숙이라도 할 생각들인지 아예 자리를 잡고 앉아있었는데 그 와중에 사우나실을 찾겠다고 혼자 캐리어에 백팩을 메고 돌아다녔다. 사우나실은 이미 풀이었다. 왜 중국사람들이 밖에서 진을 치고 있었는지 알겠더라. 더 이상 사람을 받지 않는 사우나 앞에서 2차 멘붕이 왔다. 이것만 믿고 왔는데 중국 사람들과 이곳에서 노숙을 해야 할 판이었다. 혼자 세상의 끝에 버려진 기분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