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코다테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아름답다

북해도(北海道) 여행 04

by 볼파란

- 2017년 2월 22일 수요일

하코다테 '뉴오테 호텔'은 일본식 값싼 비즈니스호텔이다. 1박에 4,800엔 정도다. 이곳을 고른 이유는 싸고 아침 시장 바로 앞에 있기 때문이었다. 일본 호텔들은 체크인할 때 결제가 다 이루어진다. 현금, 카드 모두 가능하다. 부킹닷컴에서 2박을 예약하고 간 터라 이메일을 보냈지만 (여행기 1화 참조) 확인을 안 하고 있어서 걱정스러웠다. 하지만 눈 때문에 못 왔다는 내 얘기를 알아들었는지 아니면 문제 될 게 없었는지 1박 요금만 받았다.


뉴오테 호텔은 시골 느낌이었는데 (오래됐지만 깔끔하고 뭔가 촌스러우면서 단란한 느낌이랄까?) 카운터에 계신 분부터 나이가 지긋하신 아저씨였고 식사를 하고 정리를 못한 건지 윗니 사이에 고춧가루가 인상적이었다. 영어는 잘 못했지만 친절했다. 힘들게 눈 녹은 진흙길을 온터라 체크인 하고 방에 들어와 벌렁 누워버렸다.


방안은 크기랄 것도 없이 한 사람 누울 침대와 머리맡 쪽으로 아주 작은 화장실(이런 곳에서 욕조에 몸을 담글 사람이 있을까 싶게 욕조도 꼭 있다.) 그리고 창문 쪽에 화장대 겸 테이블이 있고 바로 옆에 따로 탁자와 의자도 있는 있을 것은 다 있는 구조였다. 모든 공간은 걸어서 5 발자국 이내에 다 해결된다.


방안은 엄청나게 건조하다. 조금만 틀어도 사진 속 저 위 격자 구멍에서 바람이 어찌나 나오는지 얼굴이 쫙쫙 땅기는 기분이다. 가지고 간 미니 가습기가 큰 도움이 되었다.


더 늦기 전에 서둘러 야경 보러 갈 준비를 한다. 눈은 더 이상 오지 않지만 날씨가 흐려서 하코다테 로프웨이 전망대 홈페이지를 찾아봤는데 로프웨이 운영은 다행히 하고 있다. 로프웨이 가는 버스는 역 앞에서 타면 된다. 정류장에서 기다리니 일본 커플이 온다. 둘 다 삐쩍 말라서 좋아 죽는 이 커플은 하코다테 야경뿐 아니라 나중에 럭키 삐에로에서 까지 보게 된다. 일본인 커플도 야경 보고 럭키 삐에로에서 햄버거 먹는 코스는 똑같구나. 나중에 햄버거집에서 다시 볼 때는 아는 사람이라도 만난 것처럼 움찔거렸다.


버스는 로프웨이 전망대 바로 앞에서 세워준다. 전망대 갈 티켓을 끊고 줄을 서서 올라간다. 줄이 많다. 보이지 않던 모든 관광객들이 여기 다 서있는 것처럼 줄이 길다. 일본인도 많고 중국인, 동남아시아인들도 많다. 중간중간 남미 사람들, 백인들까지 뭐랄까 모든 지구인들을 만나는 기분이다. 지구는 둥그니까.


전망대로 가는 케이블카 안은 사람들로 꽉 찬다. 아래로 보이는 하코다테의 전경을 보자니 조금만 더 날씨가 좋았으면 싶다. 아, 아쉬워라. 어떻게 온 하코다테인데.


야경은 망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다닥다닥 붙어서 어떻게든 사진을 찍어보려 했지만 야경은 흐린 날이어서 잘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사람들 얼굴을 보자니 야경 따위가 문제가 아니라 여기 와서 함께 사진을 찍는다는 기쁨이 더 큰 것 같다. 비좁은 틈 사이사이로 어찌나 사진들을 잘 찍는지. 나처럼 혼자 온 사람들은 야경이 아쉽기만 하다. 그러는 와중에 감히 범접할 수 없는 프로를 만났는데 일본인으로 보이는 혼자 온 여성분이 엄청난 포즈와 표정으로 셀카를 찍고 있었다. 핸드폰과 디지털카메라로 번갈아 가며 셀카를 찍고 있었는데 표정이 혼자 보기엔 아까울 정도로 모델 표정이었다. 볼을 부풀리는 것은 기본이고 온갖 깜찍한 표정으로 하코다테의 어두운 야경을 밝히고 있었다. 이 여성분은 전망대에서 내려오면서 같은 정류장에서 또 만났다. 포즈를 취하고 있지 않은 얼굴은 어쩐지 우울해 보였다. 암튼 그 여성분을 한참 구경하다가 나도 정신을 차리고 야경을 찍었다.


비켜봐, 안보이잖아
이게 최선입니까?
헉, 불바다여
그나마 건진 컷. 이 날 이게 최선이었다.
야외 전망대에서 내려오면 유리창 너머로도 야경을 감상할 수 있다
나도 위에서 만난 셀카찍던 여성분처럼 표정을 짓고 싶었으나 할 수 없었다.;;;


한국분들은 없는 건가 싶어서 두리번 거리니 어디서 있다 나오셨는지 많이 오셨다. 모두 가족 단위로 오셔서 사진 찍는데 여념이 없어 아는 척도 못하고 내려왔다. 혼자 보는 야경은 역시 쓸쓸하구나. (물론 아닌 경우가 있는데 그 예외는 삿포로 시내 야경이다. 이건 다음 글에...)


기념품 파는 곳엔 사람들로 북적였는데 한참을 하코다테 야경 엽서를 살까 고민하다가 그냥 나왔다. 지금은 사 올걸 후회된다. 할까 말까 고민스러울 땐 무조건 하고 보는 거다. 전망대를 내려올 땐 버스를 타지 않고 걸어서 내려왔다. 전망대에선 그렇게 사람이 많았는데 내려올 때는 그 많던 사람들이 한 명도 안보이고 너무 고요하고 한적한 길이어서 조금 무서웠다. 일본이라 밤길 다니는 것은 문제가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날씨가 추워서 그랬는지 더 움츠러들었다.


걷다가 보니 눈길에 동그랗게 파인 맨홀이 눈에 들어온다. 상징인 별 모양으로 하코다테가 쓰여있다. 일부러 보이게 하기 위해서 동그랗게 파냈을 걸 생각하니 귀엽고 따뜻하다. 이런 작은 것까지 신경 쓰다니. 별 모양을 보고 있자니 가지 못할 고료카쿠 공원이 떠오른다. 이렇게 하코다테는 여러모로 꼭 다시 와야 할 곳이 되었다.


빙판길 위에서 균형을 맞추며 걷는 것이 쉽지 않은 데다가 생각보다 먼 거리에 지쳐서 결국 중간에 숙소 근처까지 버스를 타기로 했다. 정류장이 어디쯤인지 헤매던 찰나 용케도 눈앞에 노면전차 플랫폼이 보인다. 이렇게 전차도 타보는구나! 버스나 전차를 탈땐 표를 끊어서 타도 되지만 일부러 끊을 필요는 없다. 거리에 따라 요금을 받기 때문에 자신이 내릴 정류장 번호에 맞춰서 요금표시가 나와있다. 그 요금만 내면 된다. 지폐일 경우엔 직접 지폐를 동전으로 교환해서 내면 된다.


그런데 여기 전차 플랫폼이 엄청나게 좁다. 한 사람이 서있으면 전차 사이와 거리가 거의 없다. 조금만 밖으로 나가 있어도 그냥 칠 정도다. 이 정류장만 그런지 몰라도 깜짝 놀라서 벽 쪽에 완전히 붙어서 있었다. 그러다가 방향이 또 헷갈려서 반대방향에서 한참 기다리다가 뒤늦게 깨닫고 건너편으로 건너갔다. 이미 내가 가야 할 방향의 전차를 놓친 후였다. 널 어쩜 좋니.

차에서 내려 구글을 켜고 럭키 삐에로로 향했다. 럭키 삐에로 자체가 하코다테에만 있는 햄버거 체인점이라 여기까지 와서 무슨 햄버거냐 싶어도 꼭 먹어봐야 했다. (맛집이라고 해서 먹어보면 늘 실망하면서 찾게 되는 심리는 뭘까?) 내가 간 곳은 역 근처 숙소와 가까운 곳이었다. 맥주와 함께 숙소에서 먹을 거여서 포장할 생각이었는데 가서 보니 앉을자리도 없었다. 이미 내 앞에 주문하고 기다리는 사람도 많았다. 아까 말한 대로 전망대 가는 버스에서 만난 비쩍 마른 일본인 커플도 이미 와있었다. 관광객들도 많았지만 내가 보기엔 이곳에 사는 사람들도 많이 와서 먹거나 포장해서 갔다. 내 뒤에 있던 남자도 회사원 같은데 퇴근하는 길에 저녁으로 포장해서 들고 갔다.


나는 음료는 빼고 제일 유명한 차이니즈 치킨버거와 포테이토만 포장했다. 식기 전에 먹어야 했으므로 서둘러 편의점에서 맥주와 샐러드만 사서 숙소로 향했다. 일본 편의점은 좋은 게 1인분 샐러드 포장도 판다. 사실 일본에 온 이후로 계속 속이 편하지가 않아 뭐만 먹었다 하면 설사 중이라 맥주뿐만 아니라 햄버거 자체가 좋을 리가 없지만 기저귀를 차고 다닐 망정 여기까지 와서 안 먹고 갈 순 없었다. 해서 샐러드는 내 몸을 생각한 최소한의 배려였지만 설사하는데 채소 먹으면 그칠 거라는 생각은 왜 했는지 모르겠다.


발걸음도 가볍게 숙소에 돌아오니 내 방 맞은편 객실 두 개의 문 앞에 비닐봉지가 걸려있다. 홋카이도의 거의 모든 숙박시설에는 작든 크든 온천이 있다. 이런 호텔에선 온천이라고 해봐야 작은 탕일 게 분명하지만 이사람들은 미리 온천 이용을 얘기했던 모양이다. 얼핏 봐선 수건과 유카타가 들어있는 것 같다. 잠시 온천물에 몸을 담그고 노곤해져서 잠자는 상상을 해봤지만 아무래도 여기에선 온천보다 햄버거가 중요해서 방에 들어왔다.


럭키 삐에로의 햄버거와 삿포로 클랙식. 역시 맥주는 햄맥이지.
차이니즈 치킨 버거. 움. 어쩐지 실망스러운 자태.
자, 다 먹어버리자.


작은 탁자에 다 펼치고 부어라 마셔라. 샐러드까지 다 먹고 나자 배가 불러 죽는 줄 알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햄버거는 내 취향이 아니었다. 다시는 내가 블로그 후기들 믿나 보라지. 흥. 간이 조금 쎈 그냥 햄버거일 뿐. 다른 버거를 먹을 걸 그랬다. 하지만 포테이토는 맛있다. 굵고 실한 포테이토에 찐득한 치즈의 향연. 딱 맥주 안주다. 다시 먹으라면 일부러 찾아가지는 않을 것 같다.


내일은 아침 10시에 삿포로로 넘어가서 하코다테 여행은 사실 이게 끝이다. 아쉬운 마음에 먹고 나서 밤거리를 더 걸어볼까 하다가 그만뒀다. 아침 시장이 문 여는 것에 맞춰서 이른 아침에 가기로 했기 때문에 차라리 빨리 씻고 자는 게 나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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