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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볼파란 Nov 01. 2015

03. 엽기적인 그녀

엽기적인 '그 녀석'을 만나다

그때 그 시절

지금 살고 있는 동네에 이사 온 것이 벌써 20년이 다 되어간다. 처음 이사 왔을 때만 해도 이 동네는 수도권 근방의 개발지역으로 논과 밭이 있는 시골이었다. 그러던 것이 하나둘씩 아파트들이 들어서고 사람들이 들어오고 논과 밭이 사라져 가더니 이젠 도시가 되었다. 이 모든 것이 20년 안에 이뤄졌다. 하나의 도시가 들어서는 데는 몇 년이 걸리지 않는 것 같다. 이젠 아파트 숲이 되었으니까. 카페베네, 스타벅스 같은 브랜드 커피숍도 들어오고... 들어서는 것이 있으면 사라지는 것도 있는 법. 동네 서점이 사라졌고 오래된 세탁소가 사라졌고 더 오래된 구멍가게가 사라져갔다. 그리고 시장 안에 있던 버스터미널 나이트클럽도 없어졌고 함께 있던 극장도 사라졌다.


극장은 이사오던 20년 전만 해도 동네에 유일하게 있던 극장이었다. 버스터미널 안에 있었는데 말이 극장이었지. 덜렁 하나 있는 커다란 홀은 천정이 유달리 높고 귀신이라도 나올 것처럼 음침하고 습한 곰팡이 냄새가 나던 곳이었다. 좌석도 따로 없이 서있는 누군가에게 표를 사서 줄 서서 선착순으로 들어가던 곳. 그 극장을 절대 가지 않겠다. 서울에서 이사 왔던 나는 나름 도시부심이 있었던 건지, 극장만큼은 서울로 다니곤 했는데... 무슨 이유인지 이 영화를 이곳에서 보았다. 아마 꼭 보고 싶었던 영화였는데 막상 갈만한 사람이 없었거나 동생을 꼬여 가기엔 집에서 가까운 곳이었기 때문이었으리라. 이 영화를 동생과 보았으니까.



엽기적인 그녀

이 영화를 꼭 봐야만 했던 이유는 전지현도 아니고 차태현도 아니었다. 영화 홈페이지 때문이었다. 지금이야 영화 홈페이지를 찾아보는 사람이 많지 않을 텐데... 그 시절만 해도 영화 홈페이지가 한참 유행이었다. 온라인 붐이 일어나고 너나 할 것 없이 플래시 등의 모션그래픽을 배우고 사용할 때였다. (내 직업상 더 예민했을 거다) 이 영화는 그때 당시 모션그래픽을 사용한 개인 홈페이지로 유명세를 탔던 설은아가 만들었었다. 설은아 홈페이지를 보고 충격을 받았던 때가 기억난다. 심지어 지금도 그대로 열려있는 홈페이지. 설은아홈페이지

엽기적인 그녀 홈페이지도 그때 당시로써는 배우들의 목소리를 하나하나 따서 유저들로 하여금 다양한 영화적 경험을 하게 하는 모션그래픽이 훌륭한 홈페이지였다. 


그래서 갔던 동네 터미널 극장. 그것이 그곳에 간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줄을 서서 들어간 곳은 더러웠다. 앉기도 싫을 만큼 먼지가 뿌옇게 앉아있었다. 영화를 보는 중간에 갑자기 영화가 중단되기도 했는데... 정전이었다. 두 번 정도 중단되고 몇 분을 기다렸다가 다시 보고...  


내가 여길 왜 왔던가... 나는 누군가 여긴 어디인가... 그러다가 도미노처럼 비명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어리둥절 하던 것이 금세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는데 쥐가 나타난 것이다. 쥐가 어찌나 크던지 오동통하게 살이 오른 엽기적인 그 녀석은 극장이 지 안방인 줄 아는지 사람을 무서워하지도 않고 쫄쫄 거리며 바닥을 기어 다녔다. 나와 동생도 소리를 지르며 다리를 올려야 했고... 결국 영화 후반 내내 다리를 어정쩡하게 올리고 봐야 했다. 엽기적인 그 녀석이 나온 극장에서 그렇게 봤던 영화. 엽기적인 그녀. 




영화는 당시 대학생이던 김호식씨가 웹에 연재하던 웹소설을 바탕으로 기획되었고 이 영화로 전지현은 엄청난 인기를 얻게 되었다. 최근작 "별에서 온 그대"로 제2의 전성기를 맞기 전까지는 전지현 하면 엽기적인 그녀였으니까. 영화에서 교복을 입고 나이트클럽에 입장하면서 주민증을 꺼내 보이는 장면이 많이  패러디되었지만 나는 차태현이 전지현을 처음 만나던 전철씬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전지현이 앉아있던 남자의 머리 위에 토하면서 차태현을 보던 장면;; 예쁜 여자는 토해도 예쁘구나. 엽기적인 그녀도 전지현이 했으니까 예쁜 거지. 뭐 이런 느낌이었달까. 이 영화로 남자친구에게 여자구두 신겨놓고 나 잡아봐라 했던 여자들 꼭 한두 명씩 있었을 듯. 


OST도 좋았는데 신승훈의 "i believe"가 유행했었다. 지금까지도 엽기적인 그녀와 신승훈의 이 곡은 많은 영화와 드라마에서 패러디되고 오마쥬 되고 있다. 


세월이 흘러도 전혀 어색하지 않고 마치 타임캡슐을 꺼내보는 듯한 영화. 차태현씨가 대체 무슨 생각으로 찍었는지 몰라도 아마 "의리"때문이었으리라 미뤄 짐작하게 하는 영화 "엽기적인 그녀 2" 대륙 진출을 목표로 했는지 빅토리아와 함께 찍은 이 영화는 한국에선 전혀 이슈가 되지 못했다. 전지현과 찍었다면 달랐을까? 지금도 여전히 아름답지만 볼살 있는 통통 튀는 전지현을 만나보고 싶다면 역시 이 영화를 강추한다. 누구와도 대체 불가이니까.


지금과도 별 차이가 없는 두 배우
나이트 클럽에 교복입고 들어가 당당하게 주민증 꺼내보이던 유명한 장면
긴머리의 청순한 전지현과 장난끼 어린 개구쟁이 차태현의 케미는 매우 훌륭했다
엽기적인 그녀 OST - 신승훈 "i  belie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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