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볼파란 Oct 09. 2017

무음의 세계

돼지가 되어버렸으면 

'대체 무음으로 왜 해놓는 거야?' 

'글쎄...'


언제부터인지 핸드폰을 무음 상태로 해놓고 있다. 그렇다고 내가 수시로 연락을 받아야 하는 사람도 아닐뿐더러 오히려 내 핸드폰은 전화가 거의 올 일이 없는 편이다. 내 인간관계는 매우 협소하고 제한적이므로 사실 벨소리로 해놔도 무방하다. 수시로 톡을 해대는 것은 동생뿐이며 급한 일 생길 때 연락할지도 모르는데 무슨 똥 배짱으로 무음으로 해놓는지 모르겠다고 볼 때마다 잔소리다. 그러므로 사실 벨소리로 해놔도 진동으로 해놔도 상관없지만 어쩐 일인지 무음으로 해놓을 때가 대다수다. 


무음의 세계는 고요하다. 알람이 떠도 전화가 와도 톡이 와도 조용하다. 언제 봐도 무방하다. 혹은 안 봐도 상관없다. 철저하게 내 컨트롤 아래에 놓여 있게 된다. 세상이 시끄럽고 내 마음도 시끄러운데 굳이 내 핸드폰까지 시끄럽게 울릴 필요가 있을까? 


종종 버스나 지하철에서 시끄럽게 울려대는 톡 알람 소리나 벨소리가 들릴 때가 많다. 매너 없는 그들은 시끄럽게 울려대는 그들의 핸드폰 소리만큼 시끄럽다. 나는 핸드폰 진동소리도 싫다. 드드드드. 말도 안 되는 소리 같지만 스마트폰이 진화해서 나중에는 기계 가체도 없어지고 손목이나 어딘가에 칩으로 이식해서 연락이 오는 것은 몸에서 알려주는 것이면 좋겠다. 전기가 통하는 거면 아플 테니까 손톱에 불이 비치는 것이다. 엄지손톱에 빨간 불빛이 나오는 건 전화가 오는 것이고 새끼손톱에 파란 불빛이 나오면 문자가 오는 것이다. 문자와 영상통화가 바로 눈 앞에 홀로그램으로 그려지고 펼쳐지는 세계가 올 지도 모를 일이다. 혹은 귀에도 칩이 이식되어 귓바퀴 밑을 누르면 바로 음성통화가 되겠지. 그때쯤엔 지하철이나 버스 등은 사라지고 공중에서 수시로 개인 자가용들이 날아다닐지도 모른다. 


새벽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때가 세상이 제일 고요할 때이기 때문이다. 아무 소리도 안 들리는 세상은 마음을 평안하게 한다. 오롯이 북적이는 내 마음의 소리만 들리는 시간이다. 오래전에 내 마음속에 각인된 장면 하나가 있다. 버스를 타고 퇴근하던 시간, 막히는 도로에서 버스 옆으로 트럭 한 대가 멈춰 섰다. 경북 종돈이라는 조약한 페인트칠이 되어 있는 그 차에는 어둡지만 누군가의 시선들로 가득 차 있었다. 밤이라 처음엔 잘 보이지 않던 차 안에는 빼곡하게 돼지들이 서있었다. 돼지들은 원래 시끄럽게 꿀꿀 거리는 것이 아니던가. 하지만 그 날의 돼지들은 너무 조용했다. 아무 소리 없이 내다보는 시선들은 무서우리만치 고요했다. 더러운 오물을 잔뜩 뒤집어쓰고 발 디딜 틈도 없이 차 안에 갇혀 있던 돼지들의 무음의 세계. 완벽한 침묵이 그곳에 있었다. 


미안하지만 버스 안에서 시끄럽게 울려대는 소리들과 시끄럽게 떠들어 대는 사람들이 모두 저 안의 돼지들이 되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 BGM : NUZ 'Heaven's Door'(Feat. Nucksal) (Remaster Ver.)

추석 연휴가 다 지나갔다. 매거진 정리를 해버렸다. 이미 내 개인 네이버 블로그에 여행기를 정리하는 것도 벅차서 이곳에는 여행기를 쓰지 않으려 했지만 북해도 여행기를 이미 써버려서... 나중에도 종종 쓸 일이 있을 것 같아 여행 관련 매거진을 만들고 그 외에 쓰는 것은 한 군데 묶어 버렸다. 


사는 것은 여전히 힘들지만 뭐 어떻게든 되겠지. 하고 있다. 

브런치 글은 사실 잘 써지지 않는다. 하지만 매일 들어와 들여다보고 있다. 글 잘 쓰는 분들은 참 많다. 

내일모레면 다시 짧은 여행을 떠난다. 다시 쓰겠지만 이번 여행은 100% 현실 도피다. 돈이 없어 짧게 갈 뿐.






매거진의 이전글 알밤이 딱, 하고 까지듯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