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사쿠사의 종이학.

도쿄 여행 02

by 볼파란

2017년 1월 11일 목요일


나리타 공항은 처음이었는데 말로만 듣던 금괴 있냐는 질문을 받았다. 신치토세, 간사이 공항 모두 다 가보았지만 나리타 공항 입국 심사가 제일 꼼꼼했다. 젊은 여성이고 일본이 처음이 아닌 사람한테는 으레 묻는 질문이기는 했지만 생뚱맞게 금괴 사진 보여주면서 금괴 가지고 있냐는 질문을 받았을 땐 하마터면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물론 웃으면 안 된다. 진지하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니 메고 있던 에코백 안을 들여다 보고 다행히 기내용 캐리어는 열어보라고 하지 않았다. 뒤로 사람들이 줄줄이 서있는 상황에서 팔을 들고 몸수색을 당한 것은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으나 내 옆에 아줌마는 캐리어를 죄다 열고 있어서 그나마 이 정도로 끝낸 게 다행이었다.


나리타 공항에서 처음 만난 한글 광고는 변비약 광고였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일본에서 약을 많이 사가긴 하나보다. 첫 관문인 공항에서부터 약 광고를 해대는 걸 보면. 하긴, 나도 일본 국민 위장약이라는 카베진과 오오타 이산을 사러 왔지. 일본은 방사능과 지진 문제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나라인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뭘 믿고 약을 사고 뭘 믿고 이렇게나 많이들 오나. (뭐라니)


입국 심사를 마치고 공항 로비에서 사 온 유심칩으로 바꿔 꼈다. 별 탈 없이 잘 된다. 별거 아니었다. 역시 해보면 별거 아닌 일이 많다. 이번 여행에서 일본인에게 질문을 해본 일이 없다. 이게 다 구글 덕분이다. 테크놀로지는 점점 세상을 조각처럼 다듬고 있다. 내가 늘 말하는 것처럼 세상은 둥글어지고 둥글어지고 둥글어져서 점처럼 사라질 것이다. 게다가 표지판도 큼직큼직하다. 색깔 구분도 확실해서 지옥도가 따로 없다는 일본 지하철 타기는 생각보다 수월했다. 라인을 잘못 탈일 보다는 각각 다른 회사로 이뤄진 환승구간에서 욕이 나왔다. 공항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지하로 내려가 핑크색 기계에서 파스모 카드를 발급받고 오렌지색 길을 따라 스카이 액세스를 타러 갔다. 노란 벽돌 길을 따라가는 오즈의 마법사 도로시가 된 것 같다.


하네다 공항행 스카이 액세스를 타면 아사쿠사에서 내릴 수 있다. 숙소를 아사쿠사로 정한 이유는 내가 가게 된 호텔 조식이 가장 큰 이유였고(일본식 향토음식이 나온다), 아사쿠사가 도쿄 같지 않다는 이유가 두 번째 이유였다. 아사쿠사는 일본의 전통적인 색깔을 많이 간직하고 있는데 아마도 센소지가 있어서 그렇지 않을까. 아사쿠사 역에 도착해 엘리베이터가 있는 A2b출구로 나간다. 조금만 검색해보면 짐이 많을 때 어떤 출구로 나가면 될지도 나오는 세상이다. 내가 어떻게 살아가면 좋을지도 알려주면 좋으련만.


좁은 엘리베이터에 초록색 체육복 위에 검은색 패딩점퍼를 걸친 서남아시아 여성분들을 만났다. 일본은 아직 더운데 패딩점퍼를 걸치고 유유히 캐리어를 끌고 간다. 단체로 온 것 같은데 초록색 트레이닝복만 봐선 도통 정체를 알 수 없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그녀들을 따라가다가 방향을 잃었다. 다시 건너와 반다이 건물로 향한다. 아사쿠사에 완구 회사라니. 반다이 건물 밖에는 캐릭터 인형들이 세워져 있다. 잠시 멈춰 사진을 찍어도 좋다. 반다이가 보인다면 다 온 셈이니까.


아사쿠사는 날이 흐리고 바람이 분다. 오기 전부터 날씨 체크를 열심히 했다. 불행히도 내가 묵는 삼일 중 이틀은 30도에 육박하는 더운 여름 날씨였고 마지막 날에는 비가 올 예정이었다. 반팔을 챙기고 우산을 넣었다. 모자는 챙기고 선글라스는 집에 두고 왔다. 도착해보니 생각보다 날씨가 흐리고 선선하다.


KakaoTalk_20171021_201409645.jpg 가로수와 함께 서있는 캐릭터들이 아사쿠사에 온 걸 환영해준다
KakaoTalk_20171021_201409049.jpg 한 때 좋아했던 호빵맨
KakaoTalk_20171021_201410096.jpg 도라에몽


숙소는 호케 클럽 아사쿠사이다. 여러 지역에 지점이 있는 호텔로 후기에 가장 많이 나오는 지역은 후쿠오카인듯하다. 조금 특색 있는 조식을 제외하곤 평범한 일본식 비즈니스호텔이다. 후기에 보면 유난히 좁다는 의견들이 지배적인데 나는 넓고 좁은 것에 연연하지 않는 데다가 혼자여서 그런지 더 좁다고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일반적인 비즈니스호텔 치고도 좁은 편이긴 하다. 2인 이상이라면 이곳은 별로 추천하지 않는다.


체크인은 3시부터인데 2시쯤 도착했다. 조금 일찍 체크인을 할 수 없냐고 했더니 3층 룸을 주었다. 이 호텔은 짐을 맡기고 가면 체크인 시간에 맞춰 방으로 짐을 가져다준다. 짐을 맡기는 대신 이른 체크인을 한 것은 편하게 화장실도 가고 짐도 풀고 조금이라도 쉬고 싶어서였다. 게다가 뷰가 좋을 리도 없기 때문에 낮은 층이어도 상관없었다. 역시나 창문을 잠깐 열어보니 보이는 거라곤 옆 건물의 벽뿐. 다시는 창문을 열어보지 않았다는 슬픈 이야기.


KakaoTalk_20171021_201408350.jpg 호케클럽만의 웰컴 종이학


데크 위에 청소 담당하시는 분의 성함과 종이학이 놓여 있다. 작은 것이지만 손수 쓴 글씨와 종이학은 정성을 느끼게 한다. 뭐든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작은 것을 소홀히 하고 큰 것을 이룰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이동진 기자의 '하루하루는 성실하게, 인생 전체는 되는대로'라는 말을 좋아한다. 성실하고 정성스러운 작은 것들이 모여서 전체를 이루고 큰 것을 이루어 나간다.


잠시 침대에 누워 있다가 호텔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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