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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원한 바람 Mar 03. 2023

다양성을 믿는다

내가 아는 세상은 참 좁다

  나는 두 번의 그룹 연수를 받아봤다. 첫 번째는 삼성물산에서 두 번째는 모 식품회사에서이다. 식품회사에서 일했던 경험은 좋은 경험도 많았지만, 나쁜 기억이 있어서 이름을 밝히고 싶지는 않다. 그때까지 나는 세상을 잘 안다고 생각했다. 다양한 사람들을 잘 이해한다고 생각도 했다. 오만했던 것 같다. 내가 자라온 환경은 사실 나랑 비슷한 가정환경을 가진 나랑 비슷한 학습을 하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었고, 내가 다녔던 학교들도 고등학교 대학교는 모두 비슷한 학습 능력을 가진 학생을을 선발하는 학교였기 때문에, 다들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소위 공부 잘한다는 아이들에 둘러싸여 공부하다 보면, 누가 가장 빨리 정답에 접근하는가, 누가 더 그 정답을 설명할 수 있는가. 누가 배운 이론을 다른 상황에 더 잘 적용할 수 있는가가 경쟁의 핵심이었고, 학습은 그런 활동을 수행하기 위한 끊임없는 연습이었고 또 발현이었다.


  그 식품 회사 그룹 연수에서 나는 홀로 마케팅 팀에서 왔고, 다른 팀원 들은 모두 영업에서 온 나이가 많은 오빠들이었다. 나는 그룹 연수라는 개념, 여러 명이 한 방에서 자고, 또 다 같이 밥을 먹으러 줄지어 가야 하고 다 같은 티셔츠를 입어야 하는 것이 싫었다. 하지만 우리 팀 토론이나 활동은 그렇게 재밌을 수가 없었다. 늘 문제를 마주하면 또 정답에 가까이 가야 하고, 출제자의 의도를 파악하기가 바빴던 나였는데, 이 오빠들은 너무 달랐다. 해야 하는 과제를 무시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 상황 자체를 굉장히 가볍게 받아들이고, 끊임없는 쓸데없는 이야기와 농담은 시종일관 나를 웃게 했다. 정답에 가까운 아이디어와 생각을 나는 계속 뽑아냈지만,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조금 진지해질 만하면 누군가 또 폭소를 끌어냈다. 나중에는 아예 과제를 수행해야 한다는 부담감도 가볍게 이겨내고, 어떻게 하면 더 재치 있게 말을 받아치나 하는 경쟁을 하듯이 말이다.


  그때 느꼈다. 나는 그동안 정말 나랑 비슷한 사람들하고만 살아왔구나. 내 친구들 혹은 교수님 속에서는 우리는 그냥 같은 부류였구나. 내가 많이 알았다는 세상 혹은 사람들의 생각, 삶은 사실 훨씬 넓은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구나. 그리고 그런 다른 사람들과 일하고 이야기한다는 것은 정말 즐겁구나.


  과제 중에 모의 기업 경영이 있었는데, 놀라운 것은 우리 팀이 1등을 했다는 것이다. 그게 내가 만든 알고리즘에 의해서인지, 우리가 정말 굉장한 솔루션을 만든 것인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1등을 했고그 순 간, 폭죽이 터지는 것 같은 희열을 느꼈다는 것만 기억이 난다.


  그 경험을 통해, 난 다양성이 가진 힘을 굳게 믿게 되었다. 다양성, 집단 지성, 서로 다른 의견을 존중하는 것, 아직도 내가 그것의 힘을 다 활용하고 있다고는 말할 수 없다. 내가 지금 일하는 곳에도 우리 인사팀이 열심히 일해서 그런지, 비슷한 생각의 사람들이 많고, 정답에 가까이 가고자 노력하는 나와 같은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늘 나는 귀를 열어 놓으려고 한다. 특히 나는 내 생각 내 아이디어를 밀어붙이려는 의지가 강하기 때문에, 어떤 상황에서는 일부러 내 아이디어를 앞으로 내어 놓지 않는다.


  다양성은 단순히 물감이나 색연필의 색상 개수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의 가치를 믿는다. 내 생각을 반복해서 말하고 관철시키고 싶지만, 그럴 때마다 한두 번 말하는 것을 아끼고, 먼저 귀를 열어두려고 한다. 그리고 늘 세상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일들에 대해, 사람들이 느끼는 다양한 감정, 서로 다른 반응들을 더 알려고 노력한다. 더 많이 다양성이 주는 희열을 느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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