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선정 평가서가 남긴 문장들

서류는 떨어졌지만, 문장은 남았다

by 망한 대표
창업기업 서류평가 평가의견(미선정 비식별) (1).jpg

결과 발표 메일은 짧았다.
“아쉽게도 이번에는 선정되지 않았습니다.”

짧지만 묵직한 문장이었다.
며칠간의 공백 끝에 도착한 문장이었고,
그 안에는 숫자보다 훨씬 많은 감정이 담겨 있었다.


그때는 몰랐다.
그 문장 뒤에, 내가 보지 못한 것들이 있었다는 걸.



"시스템 고도화 및 콘텐츠 추가 개발 등에 대한 구체화된 내용 제시가 미흡함.”
“유사한 서비스와의 차별성 및 시장 진입 전략 제시가 미흡함.”


나는 억울했다.
특허도 있고, 콘텐츠도 만들었다.
뭐가 부족하다는 걸까.




시장을 모르는 창업자

"시장 조사가 충분하지 않아 타겟 고객층의 서비스 수요를 파악하기 어려우며, 수익 예측이 어려움.”


‘시장조사’라는 단어가 형식적으로 느껴졌다.

시장조사는 숫자를 쓰는 일이 아니었다.
현실을 직면하는 일이었다.
그 숫자 안에는 냉정한 사람들의 선택이 들어 있었다.

시장조사는 창업자의 착각을 깨는 과정이었다.




좋은 아이템만으로는 부족했다

"개발 기술 내용이 상세하게 구성되어 있으나 추가적인 개발의 정량적 평가 제시가 필요함.”
“사업화 방안이 구체적으로 서술되어 있지 않음.”

좋은 아이디어와 좋은 사업은 전혀 다른 이야기라는 것.

아이템은 시작이지만,
사업은 끝까지 살아남는 구조였다.

이를 위해선, 정량적인 평가와 구체적인 사업방향 설정이 필요했다.




실패가 아니라 피드백이었다


미선정은 불합격이 아니라 피드백이었다.
평가서의 한 문장 한 문장이
그때의 나에게 던진 질문이었다.


“너는 시장을 이해하고 있니?”
“고객의 목소리는 들어봤니?”


창업을 하다 보면 ‘선정’보다 ‘미선정’이 훨씬 많다.

하지만 그 안의 문장들을 읽어보면,
그건 ‘끝’이 아니라 ‘다음 문장’의 초안이 된다.





《망한 스타트업 대표 이야기》는 소설입니다.


그 소설엔 제 경험이 섞여 있지만, 온전히 저만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건 창업자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제가 제 이야기를 그대로 쓸 수 없었던 이유는 단순합니다.
창업의 실패는 대표 개인의 이름과 함께 남기 때문입니다.

한 줄의 기록이 누군가의 신뢰, 관계, 계약으로 이어질 수 있기에
그 무게를 감당하기엔 아직 조심스러웠습니다.


그래서 저는 소설이라는 틀을 빌렸습니다.
익명성 속에서 현실의 인물들을 엮어 ‘우리의 이야기’로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매거진, 《성공 사례집엔 나오지 않는 이야기》에서는
그 껍질을 조금 벗겨보려 합니다.

익명성이라는 울타리는 남겨두되,
그 안에서 좀 더 솔직하게 제 목소리를 써보려 합니다.


그땐 몰랐는데, 이제는 보입니다.


이건 ‘그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결국 나 자신에게 보내는 기록이기도 하니까요.




평가서의 개인정보 및 기관명 등은 모두 제거되었습니다.

문제시 즉시 삭제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