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능 우울에 관하여

멀쩡해 보이지만 속으로는 무너지고 있다

by 망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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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으론 멀쩡했다.
회의도 잘했고, 프레젠테이션도 깔끔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아무 말도 하기 싫었고,
메일을 열면 숨이 막혔다.
누군가의 기대가, 책임이라는 이름으로 달라붙었다.


그땐 몰랐다.
이게 우울의 시작이라는 것을.
‘완전히 실패했다’는 감정보다는
‘조용히 지쳐가는 상태’라는 걸.




조용히 무너지는 사람들


고기능 우울은 ‘일이 너무 많아서’ 또는 ‘번아웃’으로 치부된다.
하지만 중요한 건 이 증상이 겉으로는 유지되지만 속은 침몰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상태의 사람들은 외부에 드러나는 기능을 유지하면서도
내면에서 빈 공간과 피로, 자존감 저하, 집중력 저하를 겪는다.
오리는 물 위에서는 평온히 보이지만 발 아래에서는 필사적으로 노를 젓고 있었다.


문제는 이 상태를 나도, 타인도 잘 인지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일도 잘 하고, 웃는 모습도 보이고, 책임도 다 하고 있으니 괜찮다”라고 주변이 판단하고,
본인도 “아무 탈 없는 걸로 봐선 난 괜찮아”라고 스스로 속일 수 있다.




완벽함이라는 가면


‘완벽하고 괜찮은 대표’가 되고 싶었다.
실패하지 않고, 흔들리지 않고, 팀을 이끌 수 있는 사람.
그러나 그 가면이 점점 무거워졌다.


고기능 우울증의 특징 중 하나는 “기능은 유지되지만 감정은 침식된다”는 것이다.
나는 웃고 있었고, 책임지고 있었다.
그런데 속으로는 자꾸만 물러나고 있었다.

감정이 마비되고, 기력이 빠지고, 존재감이 흐려졌다.

그렇다고 일을 멈추진 않았다.


멈추면 내가 사라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더 빨리, 더 많이 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나라는 사람이 조금씩 사라져갔다.




감정을 숨기는 기술


불안은 ‘리스크 관리’로 포장됐다.
두려움은 ‘도전정신’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슬픔은 ‘집중력 부족’이 되었고,
우울은 ‘피곤해서 아무것도 하기 싫다’ 정도의 말로 축소됐다.


이런 식으로 자신을 포장하면
덜 아픈 줄 알았다.
하지만 포장은 힘을 쓰지 못했다.
감정은 어느새 내 안에 침묵으로 자리잡았다.




불완전하지만 괜찮은 사람


불완전하지만 괜찮은 사람이고 싶다.
겉으로 괜찮아 보이기 위해 애쓰는 시간보다,
그냥 잠시 괜찮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 더 중요하다는 걸 안다.


“괜찮다”는 말보다,
“괜찮지 않다”는 고백이 내게 더 진실하다.






고기능 우울증이란?


고기능 우울증은 공식 진단명은 아니지만, 심리·정신건강 영역에서 자주 언급된다.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다.

- 외부에서 보기엔 업무·관계·생활이 정상적으로 유지된다.

- 내면적으로는 지속적인 슬픔, 무기력감, 자존감 저하, 집중력 저하, 수면 장애 등이 존재한다.

- 본인이나 주변이 심각성을 인지하기 어렵다.

- 오랜 기간 이어질 수 있으며, 방치 시 더 큰 우울로 이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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