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한 스타트업 대표 이야기

2장. 달콤한 유혹(4/5)

by 망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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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정부라는 후원자와 함께 시장에 나서는 진취적인 창업가라 믿었지만, 어느새 시장이 아닌 지원사업만을 위한 회사가 되어 심사위원을 만족시키는 문서와 발표에 매몰된 채, “지원금은 나를 살렸지만 시장은 나를 잊었다”라는 고백을 남길 만큼 본질에서 멀어진 나 자신을 마주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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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지원사업을 통해 창업을 시작하는 나 자신이 꽤나 진취적이라고 생각했다. 마치 정부라는 든든한 후원자와 함께 시장이라는 전쟁터에 나서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시장이 아닌, 정부지원사업 그 자체를 위한 회사가 되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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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금이 끝나갈 무렵, 나는 다음 사업 공고를 기다리며 새로운 사업계획서를 작성하고 있었다. 기존의 아이템을 ‘고도화’ 또는 ‘스케일업’이라는 명분 아래 포장하고, 이전 평가자들의 코멘트를 반영해 문구를 다듬고, 발표 형식을 바꿨다. 발표자는 나로 고정되었고, 슬라이드엔 그럴듯한 수치와 그래프를 덧붙였다. 고객 수요가 아닌, 심사 기준에 맞춘 기획. 우리가 팔고자 했던 것은 제품이 아니라, ‘지원 가능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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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원들과의 대화도 점점 바뀌었다.

“이번엔 기술성보다는 사회적 가치 쪽을 더 강조해보죠.”

“좋아요. ESG 같은 키워드 많이 넣고요. 평가위원들 그거 좋아하잖아요.”

어느새 나는 제품이 아닌 ‘문서’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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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은 매일같이 바쁘고 활기찼다. 이메일, 회의, 보고서 작성, 발표 리허설까지. 바쁠수록 나는 사업이 잘 되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들었다. 하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것—제품의 본질, 고객의 반응, 수익 모델—에 대한 고민은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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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은, 멘토가 조용히 말했다.

“지금 굉장히 열심히 하고 계세요. 근데… 혹시 너무 지원사업에만 몰입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멘토는 말을 이었다.

“지원사업은 말 그대로 ‘지원’일 뿐이에요. 중심은 항상 ‘시장’이어야 하죠. 지금은… 평가를 위한 준비가 너무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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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말이 너무 날카롭게 들려왔다. 나는 시장에서 싸울 준비가 아니라, 계속 심사위원 앞에서 경쟁할 준비만 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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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나는 오랜만에 아주 솔직한 문장을 노트에 적었다.

“지원금은 나를 살렸지만, 시장은 나를 잊었다.”

노트 옆엔, 심사 통과 후 기념으로 찍었던 사진이 끼워져 있었다. 나는 밝게 웃고 있었고, 그 웃음이 지금은 너무 낯설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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