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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니키키 Jul 21. 2018

독일인과 비교해 본 한국인의 강점

독일 사는 한국 여자의 지극히 개인적인 관점으로

독일에서 산 지 어쩌다 보니 햇수로 어언 7년. 대학교 시절 1년짜리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계기로 오게 된 이 나라는 처음에 봤던 음울하고 어려운 이미지와는 달리 살면 살수록, 알면 알수록 산뜻한? 묘한 나라다. 그래서 여기서 한 번 잘 살아봐야겠다고 마음먹은 건지도 모르겠다.

독일 교환학생 시절 살았던 집 근처 표지판. 

그리 짧지도 길지도 않은 독일 생활을 하며 나름 많은 일이 있었다. 독일어를 배웠고, 공부했고, 일했고, 여기서 만난 다양한 친구들과 어울려 독일의 경치와 유흥과 여유를 즐겼고, 여행했고, 연애했고, 결혼도 했다. 그러는 중간중간 마음먹은 것처럼 되지 않는 타지 생활에 좌절도 많이 했다. 이런저런 과정을 겪으며 당최 나라는 한 인간이 누구인지 여러 번 관찰하고 의심하고 고민해 본 결과, 나는 내가 그냥 '독일에 사는 한국 여자'라는 별 볼 일 없고 매우 당연한 일차적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이 특별할 것 없는 내가 이 곳 독일에서 잘 먹고 잘살기 위해 발휘할 수 있는 강점들은 무엇일지 다시 한번 차근차근 살펴보았다.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과 개인적인 성향을 토대로 쓴 글이니 감안하고 읽어주시길.  



1. 악바리 근성


네덜란드와 독일에서 다양한 유럽인들과 섞여 석사과정을 밟을 때, 나는 살면서 처음으로 내 지적, 정신적, 체력적 한계를 절실히 느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과정들을 끝까지 버티고 졸업까지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그 유명한 "악바리 근성". 악에 받쳐서도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되면 어떻게든 끝장을 보는 그 집착. 나는 가정과 학교로부터 늘 보고 듣고 전수받은 이 악바리의 미덕?을 너무 당연하게 여겼기에, 자신의 학업 또는 일에 자부심과 욕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악바리 같은 면을 갖고 있는 줄 알았다. 하지만 적어도 이곳에서는 절대 아니었다.

아버지의 앨범에서 발견한 옛 사진 한 장. 안되면 무조건 되게 하면서 살아야 되는 줄 알았던 나를 반영하는 듯.


같이 공부하던 친구들은 대부분 본인들의 할 일은 알아서 제 때, 그리고 훌륭하게 해낼 줄 아는 책임감 있고 계획성 있는 사람들이었지만, 어느 누구도 나만큼 극단적으로 스트레스를 받으며 공부하지는 않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다들 이런저런 학업 외 활동들을 통해 스트레스를 '관리'하고 본인을 몰아부치치 않으려 부단히 노력하면서 공부하더라. 몰아붙여서 해야 할 일을 해야 빠르고 성공적으로 해낼 수 있다는 생각에 그간 내 25년 삶을 스스로 압박하고 다그쳤왔던 나에게는 제일 적응하기 힘들었던 마인드셋과 생활방식이었다. 아직도 적응하려 부단히 노력 중이다...


하여튼, 그 악에 받쳐서도 본인을 채찍질해가며 버티고 버틴 덕분에 비루한 실력을 가지고도 계획대로 졸업장도 제 때 다 따고 그랬다. 그러나, 그 당시 내가 느꼈던 압박 및 스트레스 레벨을 그 친구들이 경험했다면 장담하건대 그 애들은 바로 학업 중단했을 것이다. 이 공부는 나와 맞지 않는다는 쿨한 한마디와 함께.

스트레스도 관리해야 하는 줄은 예전에는 미처 몰랐다. 근데... 한국인이라서가 아니라 혹시 나만 몰랐나???

그렇지만 나는 안다. 쥐뿔도 없고 뭣도 없는 극한 상황에서는 악바리 근성은 성취를 위한 필수요건이라는 것을. 북한만 봐도, 우리 모두 북한이 왜 그렇게까지 핵무기에 필사적이었는지 굳이 설명들을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북한의 그 악밖에 안 남은 상황을 이해하니까. 반면에 유럽에 있는 많은 사람들은 북한의 외교방식을 아예 이해조차 하지 못하며, 정말 핵무기를 터뜨릴 건지, 도대체 왜 돈도 없고 능력도 정말 정말 없으면서 굳이 무리하게 핵무기를 개발하는 건지 공감하지 못한다.


2. 눈치와 배려심


유럽 대륙에 사는 많은 동포 여러분들이나 유럽 현지 친구가 있는 사람들은 말 안 해도 알겠지만 유럽 사람들의 눈치 제로 레벨은 상상을 초월한다 (연륜 있고 직업상 정치 또는 대외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은 제외). '눈치를 보다'는 표현 자체를 설명하는데도 엄청난 시간과 에너지를 소모해야 하는 기이한 현상을 여러 번 겪다 보면 아 이 인간들은 정말 눈치 자체를 안 보고 사는구나!!! 하는 엄청난 깨달음을 얻는다. 더불어 아시아 사람들은 정말 그렇게까지 남 생각하면서 힘들고 복잡하게 살아야 하냐는 그들의 탄식 어린 코멘트와 함께. 또 이런 자잘 자잘한 코멘트들에 여린 마음 상처받고 유럽에 평생 살면서도 백인들과는 담쌓고 지내는 한인 또는 아시안들 종종 본다. 하지만 걔네는 그 코멘트를 말하는 그 순간까지도 눈치 안 보고 그냥 내뱉는 거다. 그래서 상처받을 필요가 사실 전혀 없다. 그리고 상대방이 상처받았다는 사실조차 그들은 눈치채지 못한다..   

눈치 안보고 살아도 잘 돌아가는 형상을 사진으로 표현하고 싶었으나 그냥 포기하고 지금 사는 독일 뒤셀도르프 사진 한 장 공유해본다.


그러나 거꾸로 생각해보면, 나는 한국인이자 아시안으로서 가진 눈치와 배려심으로 다른 사람의 기분을 상하게 할 확률이 매우 낮다는 것이니 이 얼마나 강점인지. 본의 아니게 서로 다른 문화 차이로 상대방을 기분 상하게 한 경우라도 이 사람들은 꽁해있지 않고 바로 기분 상한 티를 팍 내거나 직접적으로 이야기를 하는 편이니 그때그때 제대로 사과를 하면 된다. 다르다고 포기하지 말고, 다름을 빨리 "인정"하고 그들의 방식을 잘 받아들이면 아주 편하다.


대신 여기서는 다른 사람을 배려하거나 눈치를 볼 때 말 몇 마디 해주면 낫다. 쉽게 말해 배려도 생색을 내가면서 해야 한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 사람들은 눈치 유전자 자체가 없기 때문에 우리의 매우 속 깊은? 배려는 아예 받는지조차 모르는 사람이 많을 테니.


3. 건강하고 맛있는 식문화


비건과 베지테리언과 히피와 힙스터들이 넘쳐나는 이 독일 사회에서, 그것도 국제 환경 NGO에서 일했던 내가 나의 고기를 먹는 행위 자체에 그다지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최근까지 별문제 없이 살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독일 사람들의 엄청난 고기 및 유제품 소비량 때문이다. 이들이 먹는 소시지, 스테이크, 버터, 치즈, 계란, 요구르트 등등등의 어마어마한 양을 보고 있노라면 고기보다는 생선과 해산물을 좋아하는 내가 그간 살면서 먹어왔던 삼겹살, 소갈비, 치킨쯤은 정말 별거 아니라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참고로 독일인 1인당 평균 육류 소비량은 1년에 59.7kg이라고 한다 (2017년 기준, 참고: https://www.statista.com/statistics/525199/meat-per-capita-consumption-germany/).   

독일 맥주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고기식사들.
소시지로 유명한 독일. 윗 사진은 소시지 위에 소스와 커리가루를 뿌려먹는 커리부어스트.

한국에서도 고기를 많이 먹기는 한다. 그래도 우리 고유의 한식문화는 채식 중심이면서도 맛있는 음식이 정말 많다. 배추전, 파전, 버섯 뭇국, 비빔국수, 연근조림, 채소 된장국, 콩국수 등등의 음식을 생각해보면, 들을 땐 심드렁할지언정 만들어 먹어보면 그 맛은 늘 평타 이상이지 않은가 (내 입맛이라 그럴 수도...). 제아무리 맛없는 식재료로 만들었다 할지라도 우리의 간장, 된장, 고추장, 참기름, 들기름의 적절한 도움을 받으면 음식의 맛이 안 날래야 안 날 수가 없다. 나는 4개월 차 플렉시테리언(Flexitarian)이라 적어도 집에서는 주로 채식 식단으로 생활하는데, 현재 고기 섭취를 거의 안 하니 건강이 정말 좋아졌고 시중에 많이 알려진 비건 조리법도 몇 번 접해보니 한식 조리법과 많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고기가 들어간 음식을 만들 때는 고기 대신 두부나 버섯을 쓰면 되고, 고기를 빼버리니 조리법이 간단하고 짧아져 요리하기 훨씬 간편하다. 그렇지만 만약 내가 스테이크와 소시지를 즐겨먹고 두부나 콩 같은 건 별로 먹어본 적 없는 독일인이었다면, 채식 위주로 식단을 바꾸는 그 자체가 정말 엄청난 도전이었을 것이다. 최근에 시작한 나의 채식 위주의 식생활에 내가 한국사람이라는 점이 이렇게 도움이 될 줄은 정말 몰랐다.

고기 대신 두부와 버섯을 넣은 채식비빔밥. 사진출처: Flickr, Lazy Smurf's Guide (https://lazysmurf.com/)
역시 고기 대신 두부를 많이 넣은 팟타이. 사진 출처: Flickr, Marco Verch (http://foto.wuestenigel.com/)

한국인의 강점이라고 써놓은 위 세 가지 모두 예전에는 오히려 독일에서 사는 데에 발목을 잡을 나의 어쩔 도리 없는 약점이라고 생각하며 나를 괴롭히던 것들이다. 전에는 악바리 근성 없이 여유를 부리며 사는 이 곳 사람들이 부러웠고, 남 눈치 안 보고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사는 모습이 부러웠고, 다른 반찬 없이 고기만 후딱 구워서 먹고도 근사한 식사가 되는 그들의 식문화가 부러운 적도 있었다. 하지만 독일에서의 내 인생 잘 꾸려보려고 다시금 생각해보니, 사실은 독일인들과 달라서 힘들었던 것들이 오히려 나의 독일살이에 이점으로 작용할 때도 많았다.


결국 어디에서 무엇을 어떻게 하든 "산다"는 것은 다른 사람의 삶과 비교해서 누가누가 더 잘했나를 재는 것이 아니라, 타인과의 다름은 인정하고 나의 강점은 무엇인지, 그리고 가진 강점들을 활용하여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물음에 대한 자기만의 대답을 각자 찾아가는 여정이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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