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2021년 12월. 회사 사내 게시판에 ‘SBS 골 때리는 그녀들'의 포스터가 한 장 올라왔다. 축구 아카데미에 자녀를 보내고 계시던 한 분의 축구 레슨 모집 글이었다. ‘어머니 반이 생긴다는데 같이 하실 분 없으신가요?'라는 글에는 “아 … 엄마가 아니어도 해도 될까요?”, “미혼이어도 괜찮을까요?” 등의 기혼/미혼 관계없이 많은 여성 동료의 뜨거운 관심의 댓글이 달렸다. 우리의 시작은 놀랍게도 ‘어머니반'이었다(이 글의 저자 중에 어머니는 아무도 없지만 말이다).
회사 동료들과 축구를 같이 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더 즐겁고 묘한 해방감을 준다. 사무실 안에서 지켜오던 직장인으로서의 퍼스널 스페이스가 잔디를 밟는 순간 사라지기 때문이다. 몸싸움이 필수적인 축구에서는 자연스레 몸을 부딪쳐야 하고, 향수 냄새보다는 땀 냄새를 더 먼저 기억하게 되며, 발소리보다 서로의 숨소리를 더 가까이에서 듣게 된다. 어느새 각자의 퍼스널 스페이스로 서로를 들이게 되는 것이다. 또한, 통성명과 함께 나이를 확인하는 위계질서가 강한 한국 사회에서 우린 직장에서 만난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서로의 나이나 결혼 여부, 축구 이외의 취미나 개인사에 대해 오랜 기간 모르며 지냈다. 마치 인터넷 세상에서 만난 덕질 메이트처럼. “축구는 왜 재밌을까요.” “골대 앞에서 정말 침착하시네요” 등 왜 이렇게 축구가 재밌고 또 우리는 왜 선수도 아니면서 미치도록 잘하고 싶은지, 운동장 안에서 서로의 장점이 무엇인지에 대해 말하기에 바빴다. 운동장이 아닌 회사에서 우연히 마주칠 적에는 ‘너도 오늘 힘들구나. 얼른 퇴근하고 같이 공 차러 가자.’라는 우리만이 아는 응원의 눈짓을 주고받는다. 힘든 사회생활 중 운동장의 동료를 마주하는 것 자체가 잠시나마 숨통이 트이게 해준다고나 할까?
그렇게 회사 여성 축구 동호회 ‘팀카카오’가 시작되었다. 다른 회사 동호회와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우리는 여러 계열사가 함께 한다는 점인데, 한 회사로서의 ‘문화'는 함께 공유하되 사실상 같은 회사는 아닌 동료 사이인 것이다. 회사의 창립기념일도, 휴일도, 재택근무 여부도 다른 별개의 회사지만 하나의 문화를 공유하는 구성원이라는 점이 우리를 느슨하면서도 끈끈한 관계로 이어져 오게 하고 있다.
일주일에 못 해도 한 번, 많게는 5~6번씩 같이 공을 차고 같이 축구에 대해 떠들다 보니 어느덧 농도 짙은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우리는 그동안 함께 나눴던 감정과 기억, 혹은 오래 마음속에 간직해둔 이야기를 꺼내보기로 했다.
내성적이거나 혹은 외향적이거나, 이과생이거나 혹은 문과생이거나. 운동장 밖에서는 너무도 다른 직장인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 10명의 동료와 이 책을 함께 썼다. 우리는 왜 오늘도 퇴근하고 운동장으로 다시 출근하는지, 도대체 축구와 팀 스포츠의 매력이 무엇인지, 평범한 직장인들이 축구를 하며 느꼈던 희로애락과 동지애가 이 책에 담겨있다.
코로나로 무기력하던 시기에, 사회생활을 막 시작하던 신입 시절에, 10년 차가 넘어 새로운 무언가가 필요했던 순간에. 각자 인생의 다른 순간에서 우연히 마주한 축구, 그리고 우리. 지금 각자의 인생의 사이클은 다르지만 가장 빛나는 시기를 함께 지나며 서로가 서로의 가장 찬란한 모습을 기억하고 사랑해주고 있다. 그렇게 우리는 오늘도 함께 사무실에서 퇴근 후 다시 운동장으로 출근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