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FP가 정착한 취미 '풋살'
취미부자에게 생긴 새로운 취미
‘제인, 아지트(회사에서 사용하는 업무용 소셜 커뮤니티 서비스)에 여자 풋살팀 모집 글이 올라왔는데 봐 봐요!’
팀카카오, 이 열정적인 여자 풋살팀에 들어온 계기는 어느 날 회사 톡방에서 팀원 한 분이 던진 링크에서 시작되었다. 당시 나는 회사 신우회, 영화 제작 동아리, 그리고 회사 밖에서의 댄스 동아리까지 세 개의 동아리 활동을 하며 알찬 외향인의 삶을 살고 있었다. 모집 글을 보니, 회사 사람들의 큰 관심 속에 목요일 레슨반이 추가로 열리며 두 번째로 팀원 모집을 구하는 글이였다.
<골 때리는 그녀들>이라는 프로그램이 인기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여자 축구가 이만큼이나 활성화되었다는 사실에 크게 놀랐다. ‘축구라…’ 마지막으로 축구공을 찼던 열세 살 무렵의 기억이 공의 궤적처럼 시작되었다.
이제 막 총총 뛸 수 있었던 나이부터 밖에서 사람들이랑 노는 게 좋았다. 어느 정도였냐면 밥 시간에도 집에 들어가지 않아서 엄마가 손수 한입 거리의 미니 주먹밥을 만들어 놀이터에서 식사를 챙겨 줄 정도였다. 나는 여느 남자아이처럼 자랐는데, 초등학교 체육 시간엔 여자는 피구, 남자는 축구를 할 때 혼자 ‘남자 팀’에 들어가 축구를 했었다. 상대 팀의 남자아이들이 “여자애가 무슨 축구냐”라고 비아냥대기도 했지만, 우리 반 친구들이 “얘, 잘해”라고 말해 줄 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소속감과 제대로 보여줘야겠다는 승부욕을 동시에 느끼기도 했다. 간혹 비속어가 섞인 큰 소리로 서로를 비난하거나 칭찬하기도 하면서, 땀 냄새와 흙 냄새가 섞인 공기를 마시며 운동장을 맘껏 뛰어다녔었다.
그렇지만 팀원분이 풋살을 추천해 주셨던 당시 나는 풋살을 배우고 있지도 않았고, 축구 광인도 아니었는데 내게 그 모집 글을 권해 주신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심지어 팀원분들과 축구와 관련 토크조차 해 본 적도 없었는데 말이다. 최근에야 그 이유를 여쭤보니 내가 회사 내 다른 동아리들도 열심히 하고 있고, 활동적이며,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이라 생각해서 그냥 자연스럽게 전했다고 알려 주셨다.(지금은 운명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나에게 축구는 초등학교 이후로 멈춰 있던 뿌연 먼지 속 빛바랜 추억인데….’
그때의 천진난만하고 공 하나에 일희일비했던 나와 친구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기대를 품고 ‘다 큰’ 어른들의 풋살 레슨 구장에 첫 걸음을 내딛었다. 어떤 동료들을 만나게 될지, 어린 시절의 그 감정들을 다시 느낄 수 있을지 기대도 되었지만 그때처럼 자유롭게 뛸 수 있는 체력이 남아있을지 걱정이 되기도 했다.
유난히 내성적인 팀카카오에 ‘E’ 한 스푼
사람을 네 가지 알파벳으로 다 설명할 순 없지만 나의 MBTI는 ‘ENFP’다. 대학교 때 학교에서 유료로 검사했던 결과부터 온라인으로 했던 검사 모두 ENFP로 나왔다. 이제 회사 생활에 찌들면서 성격이 좀 변한 것 같다고 생각했으나, 최근 입사한 분이 입사 2일 차 때 “제인은 엔프피죠?”라고 바로 맞추는 것을 보고 본질은 변하지 않았구나 싶었다. 갑자기 MBTI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팀카카오의 분위기를 설명하고 싶어서이다. 풋살은 한두 명도 아니고 열 명 이상은 모여야 하는 단체 스포츠 활동이라서, 팀카카오에는 당연히 외향적인 분들이 많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예상과는 다르게 내향인의 비중이 높았다.
첫 레슨 분위기를 아직도 기억한다. “안녕하세요! 제인입니다. 오늘 처음 왔어요!” 라고 인사를 했는데 성대한 환영이 아닌 마스크 때문에 잘 들리지 않는 소곤소곤한 인사말이 돌아왔었다.(이때는 코로나 여파로 전부 마스크 착용 후 수업을 받았었다.) 처음에는 사내 동호회이기에 ‘아무래도 회사 사람들이라 거리를 좀 두고 싶어 하는 것일까?’ 생각했으나, 레슨이 끝난 후 연습 경기가 시작되자 다들 눈을 빛내고 큰 소리로 콜 하고 응원하는 모습을 보며 ‘그건 아니구나’라고 혼자 또 생각했다. 연습 경기 중에 좋은 모션이 있을 때 다 같이 칭찬해 주고(상대팀 포함!) 골을 넣었을 때 다 같이 축하해 줬다.(이것도 상대팀 포함) 그렇다고 다들 승부욕이 없는 것은 아니었는데, 수업 시간에 배운 스킬이 경기에서 나오거나 멋지게 골을 넣었을 때 우리팀 상대팀 할 것 없이 다 같이 진심으로 박수를 쳐 주는 모습이 참 따스했고 사랑스러웠다. (우리 팀의 연습 경기 영상의 특징은 누구 하나 멋진 골을 터트릴 때 모든 사람이 박수를 치는데 그게 그렇게 귀엽다.) 무엇인가 귀엽게 보인다면 끝난 거라고 했던가? 이렇게 팀카카오는 내 인생에 스며들고 있었다. 그래서 이 사랑스러운 풋살팀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고민했고, 그 답을 지금도 계속 찾고 있다.
우선 세 가지만 먼저 이야기해 보면, 첫 번째, ‘가족 소개하기’다. 나 유부녀 제인. 앞으로 풋살을 맘껏 하려면 남편의 배려와 지지가 필요했다. 그래서 레슨 하는 곳에서 주최한 작은 풋살 경기에 팀 허락을 받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남편을 초대했었다. 현재의 내 가족을 팀에 소개하고, 남편에게는 이 열정적인 풋살팀에서 내가 얼마나 진심을 다해 뛰는지를 보여 주고 싶었다. (이때 챙겨 간 수박 화채는 인기 만점이었다!) ‘다들 열심히 잘 뛰시네. 나도 이런 몰입할 수 있는 취미를 찾아야 하는데…’ ISTJ인 남편의 감명받은 소감이었다.
축구를 좋아하지 않은 남편이기에 같이 뛴다던가, 내 경기를 보고 피드백을 해 준다거나, 축구 경기를 같이 본다던가의 직접적인 지지를 받진 않았지만, 발목을 크게 다쳤을 때 업고 집에 데려다주고, 몇 번 부상을 입었을 때 이제 그만두라는 핀잔을 하지 않고, 쫑알쫑알 축구 관련 이야기를 할 때 귀 기울여 주고, 심지어 결혼기념일 당일에 판교 리그가 잡혔을 때도 경기 뛰고 오라며 양보해 주는 배우자였다. 이러한 남편의 배려 속에 나는 ‘풋살러’로 무럭무럭 성장할 수 있었다.
두 번째, ‘여름 MT MC 맡기’이다. 팀카카오에 들어간 그 해, 여름 MT의 MC를 맡았다. (대학교 때 왜 취득했는지 모르겠지만, 레크레이션 강사 자격증이 있었던 것도 한몫했다.) 팀카카오의 첫 여름 MT라서 정말 잘하고 싶은 부담감과 기억에 남을 만한 특별함이 있었으면 했다. 뭐든지 ‘처음’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면 특별해진다. 이 풋살 동호회 역사에 남을 그런… 첫 여름 MT 아닌가! 그래서 다른 모임에서 반응이 좋았던 게임들을 떠올리며 MT 프로그램을 구상했었다.
먼저 서로 알아 가는 데에 제일인 ‘마니또’ 게임을 제안했다. 각 사람마다 개인 톡으로 마니또를 알려 주며 ‘OO의 마니또’라는 이름으로 오픈채팅방에 들어오게 한 다음, MT D-day 일주일 전부터 익명의 오픈 채팅방에서 매일 미션을 주었다. 나에 대한 힌트 세 가지, 내 마니또 그리기, 마니또를 위한 삼행시 등등. 대망의 MT날에는 마니또를 위한 편지 전달과 함께 마니또 맞추기 게임을 했다. 마니또를 많이 맞춘 사람에게는 상품까지 주었다! 다들 한승부욕 하는 사람들이라 탐정이 되어 누가 누구의 마니또인지 서로를 탐색하기 시작했다.
MT날에 마니또가 한 사람씩 공개되자, ‘아~’하는 탄성과 ‘역시!’하는 소리가 흘러나왔고, 점점 게임은 무르익다가 ‘몸으로 말해요’에서 터졌다! 가수를 몸으로 설명하기 위해 열심히 케이팝 춤을 추는 동료들로 환호성이 가득했는데, 극 ‘I’의 조용한 언니가 가수 ‘비’를 표현하기 위해 ‘습-하 습-하’하며 레이니즘 춤을 추는 순간 환호성은 배로 커졌다! 또 일 초만 듣고 어떤 @노래/가수//(노래와 가수)인지 맞추는 음악 퀴즈도 반응이 참 좋아서, ‘음악 천재’ 제이시를 필두로 미니 게임의 미니 게임으로 밤새 음악을 들었다. 어느 여름 밤의 소중한 추억이 생겼고, 우리만의 아는 밈이 생겼다.
그다음 해 여름 MT에도 MC를 하며 결은 살짝 비슷하지만, 새로운 팀원들과도 같이 팀워크를 향상시킬 수 있는 게임을 했고, 당시의 코치님과 함께 풋살 연습 게임도 하며 각자의 포지션과 풋살에 대한 깊은 이야기로 밤을 재밌게 지새웠다. 이때 MC는 젤다와 함께 했었는데, 출근 전 아침과 주말에 구글 밋에서 만나서 스프레드 시트로 MT 프로그램을 고민했었다. 서로 교류가 많지 않은 분들과 마니또 및 게임 조를 짰고, 음악 퀴즈는 연도별 / 드라마 / 영화 / 애니 음악 카테고리로 나눠서 작년보다 난이도를 높였다. 그리고 정답을 보고 한 사람씩 그림을 그리며 마지막 팀원이 그 그림만을 보며 정답을 맞추는 그림 퀴즈와 당시 인기 있었던 ‘지구오락실’ 예능 게임도 몇 개 가져오면서 이 게임을 즐길 팀카카오 동료들을 상상하며 재밌게 준비했었다. 같은 업무용 도구인데 업무가 아닌 팀카카오 MT 준비는 참 즐거웠고, MT 오길 잘했다는 말 한마디에 진심으로 행복했다.
세 번째는 ‘릴스 찍어서 추억 남기기’다. 바야흐로 릴스의 시대다. 유행하는 릴스를 찍어 올리는 풋살팀들이 종종 보였다. 우리 인스타의 팔로워 수를 걱정하는 보니 회장의 얼굴과 다른 팀의 행복한 표정이 담긴 릴스들을 보니,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팀카카오도 뭔가 찍어야겠다!’
릴스 그룹을 하나 만들어서 레퍼런스 할 만한 단체 영상 릴스를 보고, 찾고, 이 릴스를 찍는 우리의 모습을 상상했다. 부담스럽지 않은 단순한 동작이 들어간 릴스부터 조금 복잡한 릴스까지 마음속으로 레벨을 매겨서 팀카카오 동료들에게 보여 줬다. 그중에서 다수결의 동의를 받은(비교적 어렵지 않은) 멋진 릴스 몇 개를 찍었고, 우리의 추억 한 페이지가 인스타에 생생한 영상으로 남겨졌다. 지금도 예쁘지만 나중에 돌아보면 눈부시게 아름다운 우리일 것이다.
이 글을 쓰는 시점엔 열심히 TF와 함께 송년회를 준비하고 있다. 나이대는 다양하지만 대한민국 모두가 한마음으로 힘차게 응원했던 시절, ‘2002 붉은 악마’ 컨셉으로! 이번에도 함께 보내는 시간 속에 서로 더 촘촘하게 얽매여지고 더 애틋해졌으면 좋겠다.
나의 세상을 확장시켰지만, 삶은 축소시킨 풋살
세상엔 재밌는게 너무나 많다. 그리고 혼자하는 것보단 다른 사람들과 함께하는 게 훨씬 재밌다. 그래서 참 많은 것을 ‘재미’라는 이름 아래 도전해 왔다. 사내 밴드 동호회에 들어가서 연말 공연도 해 보고, 같은 팀이었던 친구의 권유로 댄스 동호회에 들어갔다. 우연히 춤추듯 유영하는 롱보드 타는 영상을 보고 동료와 퇴근 후 롱보드를 배웠고, 영화 제작 동호회에 들어가서 배우와 스태프로 영화도 찍어 봤다. 이 밖에도 올해 자격증을 취득한 프리 다이빙, 클라이밍 정도가 생각나는데 아직도 하고 싶은 버킷 리스트들이 많이 남아 있다.
돌아보면 지금까지 내가 했던 단체 활동은 승패가 없었다. 밴드 및 댄스 동아리는 어떤 대회나 공연에 나간 적이 없었고, 영화 제작 동아리는 사내에서 제작해서 어딘가에 출품한 적이 없었다. 과정과 결과물은 있지만 달콤한 승리의 열매와 쓰라린 패배의 열매는 맛보지 못했다. 하지만 풋살은 경기마다 승패가 존재했고, 평화로웠던 나의 세상에 ‘승부욕’이라는 엄청난 것이 생겼다. 원래도 승부욕이 세긴 했는데, 풋살에서의 승부욕은 차원이 달랐다.
‘제인은 경기 시작하면 눈이 돌아간다’라는 이야기를 들으며, 처음엔 공만 보면서 공을 빼앗고 골을 넣고 이기는 것에만 집중했었다. 경기에서 지면 착잡한 마음을 가지고 집에 가서 경기 영상을 밤새 돌려보며, 반성과 자책의 굴레에 빠지곤 했다. 그러다가 판교 리그를 조별로 준비해 보자는 이야기가 나오면서 제이시가 이끄는 B조에 들어가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노란색 유니폼을 입은 병아리들이 독기 어린 눈으로 삐약삐약하며 종종걸음을 맞췄던 이미지로 그려진다. 엄청난 부담이 있었을 텐데 제이시는 과몰입의 끝판을 보여 주며 훈련 구상부터 각자의 장점 캐치하며 엔트리를 짜 주었고 그 과몰입의 영향이 우리한테도 전해져서 정말 열심히 훈련에 참여했다.
그리고 대망의 판교 리그 당일! 연습했던 그 패스대로 착-착-착! 마치 한 몸처럼 패스부터 골까지 연결되었다! 그때의 쾌감과 승리는 어딘가 그리웠던 짜릿함이었다. 그랬다. 초등학교 시절 순수하게 공만 차도 행복했던 그때의 감정, 아니 더 큰 감정이 요동쳤다. 이날 이후로, 단순한 ‘승리’보다 더 신뢰할 만한 동료가 되는 것이 목표가 되었고 주 2~3회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풋살을 했다. 내 삶과 알고리즘은 어느새 풋살로 가득 찼다. (요즘 알고리즘은 풋살 관련 사업들부터, 잘하는 여성 풋살팀들과 풋살 기술들, 발목 재활 운동법 등이다.) 그리고 풋살 개인 레슨과 팀 레슨, 친선 경기에 대회 일정까지…! 풋살만으로도 바쁜 날들을 보내고 있기에 아직 하고 싶은 버킷리스트는 잠시 접어 두게 되었다.
죄인이 되어 버린 제인
외부에서 충전되는 뼛속까지 외향인 성향 때문인지 일을 정말 많이도 벌인다. 캘린더에 미리 일정을 등록해 두어야 하고, 하루에 두 탕, 세 탕을 뛸 때도 종종 있다. 그러다가 어느 날 풋살을 하다가 발목을 크게 다치는 끔찍한 일이 일어나고야 말았다. 태어나서 그렇게 밖에서 뛰어놀아도 목발 한 번 한 적이 없는 튼튼한 아이였는데, 목발까지 짚게 되었다. 그래서 미리 계획해 두었던 일에 차질을 빚고 폐를 끼친 ‘죄인’이 되어 버렸다. 같이 촬영을 계획했던 댄스 영상도 나 때문에 취소가 되어 버렸고, 영화 제작 동호회의 영상 촬영도 앉아서 촬영을 할 수밖에 없었다.
걸음이 빨랐던 내가 신호등을 겨우 건너고 성질이 급해서 가까운 층은 계단으로 갔던 내가 엘베를 하염없이 기다리고, 택시로 출퇴근을 하며 교통비가 삼십만 원이 나오고, 일어나서 샤워가 불가능해서 거의 매일을 목욕탕에 물을 받아 씻어서 보일러 비용이 사십만 원 가까이 나왔다.
처음에는 내가 목발도 짚어 보는구나 하며 그럴 수 있지 하고 넘어갔지만, 한 분기도 지나지 않아 또 크게 부상을 당하면서 좌절을 했다. 회사 외 내 시간이 풋살을 하거나 아니면 풋살 하다 다쳐서 아무것도 못 하거나 둘 중에 하나인 사실이 좀 웃겼다. 재미로 시작한, 얼마 되지 않은 이 운동이 이렇게 내 삶 전체를 좌우하다니.
“어쩌면 나는 풋살이 안 맞는 게 아닐까? 세상에 많은 운동이 있는데 꼭 풋살을 할 필요는 없잖아?”
이런 생각을 하며, 혼자 풋살과의 이별을 준비하기도 했었다. 22년 6월 팀을 이동한 뒤로 분기별로 깁스를 해서 지금 이동한 팀분들은 나를 ‘축구에 미친 제인’으로 보는데, 어느 날은 한 분이 진심으로 여쭤보셨다.
“자꾸 다치는데… 축구 왜 계속해요?”
그 말에 나도 모르게 밝은 목소리로 “재밌어서요!” 하면서 쫑알쫑알 패스부터 골 연결까지의 짜릿함을 얘기했다.
‘아, 나는 아직 계속 축구 하고 싶구나’ 이야기가 끝난 후 깨달았다.
언젠가 풋살을 그만두는 그 순간이 오기 전까지 각자의 풋살 이야기를 가지고 초록 잔디를 밟으며 뛰는 현재를 선명히 즐기고 싶다. 따스한 응원을 받으며, 뛸 때 가장 반짝이는 팀카카오를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