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장인데 630일만에 데뷔골을 넣어도 되나요? (1)

「운동장으로 출근하겠습니다」에 못다 한 나의 이야기

by 보늬밤

말 잘 듣던 반장은 커서 풋살팀의 주장이 되었어요.


나의 반장의 역사는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고르자면 난 1학기 반장이다.

1학기 반장과 2학기 반장의 차이를 알고 있는가? 1학기 반장은 보통 선생님의 신뢰를 받는, 2학기 반장은 친구들에게 인기가 좋아 뽑히는 스타일이다. 나는 확신의 1학기 반장상(?) 이었다.


나는 늘 선생님에게 가장 예쁨 받는 아이였다. 지금 돌이켜보면 첫째 콤플렉스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학교에서도 늘 선생님의 말씀을 잘 들어야 한다는 생각 내지는 강박이 있었고 그것은 노력의 영역보다는 당연하게 해야 할 일의 영역이었다.


그러다 보니 공부도 너무 자연스럽게 해야만 하는 영역 중의 하나였고, 그래서 나는 반에서 말을 잘 듣고 공부도 곧 잘해서 선생님의 총애를 받는 반장의 자리를 초등학교 3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이 될 때까지 10년 동안 한 번도 놓친 적이 없었다. (대학생 땐 과대를 맡았다.)


늘 선생님에게 예쁨을 받던,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를 몸소 느끼며 살아왔던 나에게 ‘축구'는 어쩌면 내 인생의 가치관까지 송두리째 흔드는 일종의 사건 같은 것이었다.


세상엔 노력으로 되지 않는 것이 있다.


축구를 시작한 지 3개월이 지날 무렵, 재미의 순간보다는 나 자신에게 실망하는 순간들이 더 많아졌다. 3개월이라는 시간은 사람 간의 실력 차이를 만들어 내기 충분한 시간이었고 그때 받아 든 나의 성적은 온통 빨간 작대기의 비가 내리는 것과 다름없었다. 수우미양가도 없고, ABCD등급도 없는 세계에서 왜인지 모르게 나는 자꾸만 나 자신을 등급 매기고 있었다. 그 누구도 나에게 못한다고 하는 사람이 없는 안전한 취미의 세계에서도 나는 자꾸 내가 세운 나만의 정답지를 가지고 나 자신에게 채점을 매기고 있었다.


어쩌면 축구는 내가 인생에서 처음으로 마주한 ‘노력으로 되지 않은 영역'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특별한 재능은 없었지만, 어느 영역에서든 성실함으로 세상이 세운 기준을 늘 곧 잘 따라갔었다. 하지만, 인생 처음 노력으로 되지 않는 영역을 발견했을 때의 좌절감이란 나의 인생의 가치관이 흔들리는 기분이었다.


그동안은 내가 세운 기준에서 노력하면 어느 정도의 만족감을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축구는 그렇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자꾸 give and take의 관점으로 축구를 대하게 되었다. 사람 관계에서도 바라면 되지 않는 그것을 말이다. 내가 노력한 만큼, 내가 들인 시간만큼 좋은 패스와 멋진 드리블과 우리 팀을 승리로 이끄는 골로 보답받을 순 없는 걸까?


그래서 뭘 어떻게 잘하고 싶은데?


사실 나는 뭘 잘하고 싶은지를 몰랐던 것 같다. 매번 ‘잘하고 싶다’ ‘잘하고 싶다’ 얘기를 하지만, 어떤 것을 잘하고 싶은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았다. ‘잘하고 싶다'라는 것은 목표가 될 수 없었다.


명확한 목표를 세우기 위해서는 내가 지금 부족한 것은 무엇인지, ‘나’에 대한 파악이 먼저였다. 드리블도 잘하고 패스도 잘하고 슈팅도 잘하면 너무너무 좋겠지. 하지만 아마추어에게는 다 잘하고 싶다는 목표가 오히려 더 포기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럼 난 뭘 제일 잘 하고 싶을까 생각해 보니, ‘골’을 넣고 싶었다.


뭐니 뭐니 해도 축구는 골 넣는 스포츠인 것도 있지만, 팀의 주장이면서 소위 축구 선수들이 말하는 ‘A매치 골(공식적으로 외부 팀과 함께하는 친선 경기, 대회 등)’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나의 목표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A매치 1골’이었다.


‘축구를 잘하고 싶다'에서 ‘데뷔골을 넣고 싶다'로 목표를 구체화하니 내가 해야 할 것이 명확해졌다. ‘골’을 넣기 위해 연습을 하면 되는 것이었다. 슈팅 자세를 처음부터 다시 배웠고 굴러오는 공, 멀어지는 공, 밖으로 빠져나가는 공 등등 골을 넣을 수 있는 여러 상황 속에 나를 놓아두고 연습했다. 그리고 슈팅 힘을 기르기 위해 남몰래 ‘중둔근' 운동을 곁들였다. (효과는 크진 않았지만….)


실패가 당연하던 순간들


호기롭게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향해 달려갔지만 축구를 시작한 지 365일이 지나가던 무렵 나의 A매치 골에 대한 목표 의식은 점점 집착으로 변모했다. 어느 순간부터는 ‘아, 그러면 그렇지, 내가 골을 넣을 리가 있나'라는 이상한 안도감이 느껴질 때도 있었다. 계속 안 되다 보면 그냥 안 되는 게 당연한, 오히려 되는 게 이상한 순간이 오는 것처럼 말이다.


축구는 골을 넣지 않아도 충분히 재밌는 스포츠가 될 수 있다. 팀을 지켜내는 결정적인 수비를 할 때에도, 우리 팀 동료에게 기가 막힌 패스를 찔러줄 때도, 힘들어하는 동료 대신 먼저 수비 커버를 하러 내려올 때도 짜릿한 감정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이것만으로도 축구는 정말 계속할 가치가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라는 사람에게는 ‘골'만이 정답처럼 느껴졌다. '골'을 넣지 못하는 나는 마치 시험지에서 처음 4점짜리 문제를 풀지 못해 당황하고 있는 나처럼 느껴졌다. 3점 문제가 끝나고 시작되는 첫 4점 문제. 쉬운 문제 중에서는 가장 어렵고, 어려운 문제들 중에서는 가장 쉬운 그것. 이 문제는 앞으로 맞닥뜨릴 어려운 4점 문제의 향연에 앞서 꼭 거쳐야 할 관문 같은 것이다.


앞으로 축구를 계속하려면 나는 이 '첫 골'이라는 관문을 넘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