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장으로 출근하겠습니다」에 못다 한 나의 이야기
9개의 기업 팀이 함께하는 플랩 컴퍼니 리그전 당일이었다. (플랩과 함께 개최하게 된 컴퍼니 리그 준비 이야기도 참 많은데 언제가 한 번 풀어보기로 다짐해 본다.) 이번에도 골을 넣지 못한다면 난 어쩌면 축구를 그만둬야 할 수도 있겠다고 혼자 생각했다. 이보다 더 열심히 할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 팀의 주장이다. 나의 개인적인 목표 달성도 중요하지만 우리 팀의 결과를 더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 그런데 난 부끄럽게도 우리팀의 결과보다도 내가 준비한 노력에 대한 결과를 받아내는 시험대 앞에 서는 기분으로 리그에 임했다. 팀이 아닌 내 개인의 목표에 너무 집착하는 건 아닐까 하는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 팀을 위해서도 나를 위해서도 꼭 골을 넣고 해방감을 느끼고 싶었다. (몇 년이 지나 글을 쓰는 지금 그 당시 나는 내가 나의 성장과 팀의 성장을 분리해서 생각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리그전을 준비하며 나는 1대1 슈팅 과외를 받았다. 수능 준비할 때도 개인 과외는 받은 적이 없었는데 말이다. 일주일에 한 번 재택근무를 하는 날 아침 8시부터 9시까지 집 근처 풋살장에서 모닝 레슨을 받았다. 그렇게 정말 골을 위한 슈팅 훈련과 팀 레슨, 그리고 마인드 컨트롤로 오랜만에 온 힘을 다해 목표만을 바라보며 진심으로 준비했다.
그러나, 인생이 쉽지 않은 이유는 내가 준비하는 만큼 남들도 준비하기 때문이겠지. 우리 팀이 속한 예선 조는 마치 브라질, 독일, 프랑스가 한 조인 것이나 다름없는 대진이었다. 판교 내에서 가장 근접한 두 회사이자 창립 시기가 가장 오래된 카카오와 NC소프트라서 독일과 프랑스로 비유를 해보았다. 그리고 다른 한 팀은 서울에서 가장 잘하는 SK브로드밴드 팀이었다. (이 정도면 적절한 비유이려나..?)
우리는 우여곡절 끝에 예선을 1위로 통과하였다. 나는 감사하게도 예선에서도 많은 시간을 출전할 수 있었다. 다만 우리 팀은 성과를 냈지만 나는 투입된 시간 대비 성과를 내진 못했다. 모두가 정말 열심히 준비했다는 것을 알았기에 출전 시간이 길어질수록 팀원들에게 미안함이 커져갔다. 뛰는 만큼 나도 좋은 모습을 보여야 하는데 내가 생각했을 때는 골을 넣지 못하고 있으니 좋은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예선이 끝나고 나니 반복된 실패 속의 무기력함이 또 소리 소문 없이 비집고 나왔다. 예선엔 잘 못했으니 본선도 열심히 해야지! 라는 마음가짐보다는 '아 역시나 오늘도 글렀다. 다음 기회를 노려보자.'라고 섣불리 혼자 먼저 판단하고 결과를 내버렸다. 하지만 당시 코치님은 나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었고 오늘 폼이 좋다는 이유로 나는 본선 1경기의 첫 선발로 뽑혔다.
경기가 시작되고 바로 우리 팀의 킥인 기회가 찾아왔다. 왼쪽 라인에서 공이 나갔을 때는 왼발잡이인 팀원이 킥인을 하기로 우리의 전술은 약속이 되어 있었다. 왼쪽 라인에서 수비 자리인 픽소 팀원과 공을 주고받고 드리블이 좋은 왼쪽 아라가 공을 끌고 가다가 반대쪽 오른쪽 아라인 나에게 공을 찔러주는 전술이다. ‘파포스트 전술’이라고도 하는데 먼 쪽 골대를 향해서 패스 해주면, 골대 앞에서 발만 톡 가져다 대는 풋살의 가장 대표적인 전술이다.
왼쪽 아라가 공을 잡는 순간 우린 약속이나 한듯 같이 골대를 향해 달렸다. 에이스인 왼쪽 아라가 공을 잡았기 때문에 상대팀의 모든 시선과 수비는 그쪽에 쏠려있었다. 하지만 난 믿고 있었다. 그 팀원이 수비를 이겨내고 나에게 패스를 줄 것이라는 것을. 그렇기에 난 거침없이 골대를 향해 뛸 수 있었다.
내가 골대에 다 다른 순간 수비 사이를 뚫고 정확히 내 발 앞으로 풋살공이 찾아왔다. (어떤 표현을 써야 하나 고민했는데, 찾아왔다는 표현이 어울릴 것 같다.) 나는 상대팀 등 뒤로 뛰었기 때문에 상대 팀 수비는 나를 놓칠 수밖에 없었고 난 내 발 앞으로 찾아온 공에 발만 톡 가져다 대면 대는 것이었다.
우리 팀의 슬로건 '톡'치면 '골'처럼 풋살공을 인사이드로 톡 밀어 넣은 순간, 630일 간의 침묵을 깨고 드디어 나의 첫 데뷔골이 터졌다.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정확히 경기 시작 휘슬이 훌리고 1분도 채 지나지 않은 시간이었다. 아무도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우리가 오랫동안 연습한 전술로 나의 데뷔골이 터졌다.
결국 내가 그토록 바라고 바란 내 골은 내가 잘해서도 아닌, 우리 팀이 함께 한 약속으로 만들어졌다. 나의 데뷔골은 모두가 하나가 되어 약속된 움직임으로 만들어낸 골이었다.
그리고, 그 다음 경기에서도 나는 동일한 전술로 멀티골을 터뜨렸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최선을 다하는 것' 뿐이었다. 절대적인 훈련 시간을 늘리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하지만, ‘열심히 한다’라는 것은 그 자체로 나에게 독이 되기도 했다. 결과를 내기 위해 열심히 하는 것인데 어느 순간 결과가 나오지 않아도 괜찮다는 자기 합리화 내지는 나를 지키기 위한 방어 기제로 그저 열심히 하는 나 자신에만 만족하기도 했다. 그렇게 그냥 열심히 하는 것 자체의 행위에 중독되었던 것 같다.
그저 성실하게 열심히만 하는 것은 결코 좋은 방법이 아닐 수도 있다. 그리고 누군가는 열심히 하기 전에 목표와 방향을 먼저 잘 잡아서 목표 달성 속도를 높여야 하지 않냐고 말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나는 또 무식하게 그저 열심히만 할지도 모르겠다. 우선 모르겠고, 최선을 다해보는 것. 그리고 그 최선의 영역이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에게 있어 ‘최선’은 ‘성실함’이라는 것. 그리고 이러한 시간과 경험이 쌓여 어떤 새로운 영역을 마주하게 되더라도 성실함의 힘을 믿고 무모할지라도 부딪혀보게 되리라는 것.
골(GOAL)의 또 다른 의미, ‘목표’
나는 데뷔'골'을 통해 인생에 있어서 '목표'가 가지는 힘을 경험했던 것 같다. 그리고 성실하게 학교 수업을 듣고 선생님 말씀을 잘 듣던 어린 시절의 내가 성인이 되어 630일간의 ‘골’이라는 목표를 세우고 달리며 배운 것은 그 어떤 재주도 재능도 아닌 '최선을 다한다'는 삶을 대하는 태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