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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형

by 부소유

고향에는 특이한 동네형이 있다.


그 형은 알게 된 것은 햇수로 22년이 되었다.

오래된 인연이다.

물론, 그 시간 중에 자주 만나고 연락했던 시간은 5년이 될까 싶다.


98학번.


음악을 좋아한다.

30년가까이 한 번도 쉬지 않고 취미로 베이스 기타 연주 및 취미 밴드를 하고 있다.

몇 번은 그의 공연을 봤는데 그 실력이 취미 밴드로 하는 것치고는 놀랍다.

완벽주의를 추구해서 가끔 밴드원들을 힘들게 한다.


농구를 좋아했다.

지금은 노쇠화되어서 안타깝게도 하지 못하지만 취미 농구부 감독까지 하면서 농구에 참여하는 것에 열정을 쏟아부은 사람이다.

본인 말로는 운동신경은 부족하지만 센스로 누구든 이길 수 있었다고? 한다.

승부욕이 있는 형이다.


책을 좋아한다.

가끔 내 글에서 언급된 문예부 전공을 하고 글로 먹고사는 형님이다.

사실 책에 대해서는 그 형으로부터 얻은 영향이 적지 않다.


무라카미 하루키, 강창래 작가, 이만교 작가, 김민섭 작가.

이렇게 네 명의 훌륭한 작가를 그 형님을 통해서 깊이 있게 알게 되었다.

나를 계몽시켜주려고 하고 나 역시 배울 점이 있는 형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명절에도 고향에 갔다가 그 형과 연락해서 커피숍에서 만났다.


대화는 자연스럽게 정치 얘기로 흘러간다.

정치에 관심이 많은 형이다.

아주 오래전부터 극단적으로 한쪽만 지지하는 형이다.

페이스북 또는 다른 커뮤니티에서 다른 사람과 댓글로 자주 싸운다고 한다.


그에 비해 나는 정치에는 관심이 없어졌다.

정치 뉴스는 개그프로를 보듯 가끔 재미로 본다.

때때로 초등학생들이 학급회의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이 우습다.

그들의 고학력과 뒷배경이 의심스럽다.

일부러 나 같은 사람 재밌으라고 연극을 하는 것 같기도 하다.


난 그저 인간의 삶, 우주의 섭리에만 관심이 있다.

미시적인 세계보다는 거시적인 세계가 끌린다.


이어지는 대화는 늘 비슷하다.

그 형은 나를 회색주의자라고 비난한다.


문득 회색주의자란 무엇인가?

스스로 질문을 해봤다.


한쪽으로 치우쳐 편향되어 있지 않은 인간.

사사로운 문제에 휘둘리지 않고 자연을 벗 삼는 인간.

삼라만상을 관조하는 인간.

장자 철학에 따라서 흐름을 타며 수영하는 인간.


내가 생각하는 인간의 이상향은

회색주의자라는 틀에 넣기에는 어려운 인간인 것 같다.


그러면서 그 형은 발전이 안 되는 사람들이 참 답답하다고 말한다.

항상 했던 얘기 또 하는 사람들이 지겹다고 말한다.

그건 나보고 하는 말은 아닌 것 같고

어떤 작가 또는 정치인을 두고 하는 말 같았다.


나는 발전하고 있는가?

발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 이 순간도 어제와 다른 오늘을 보내며 미래를 꿈꾼다.


급기야 내가 참여했던 글쓰기 과정을 못마땅해한다.

그렇게 단기 과정에서는 좋은 글이 나오기 힘들단다.

과정에서 나오는 글의 품질도 모르고 어떤 과정인지도 모른 채 그저 못마땅해한다.

그 형은 그러한 확증편향을 이미 갖고 있었다.


그 형 말로는 인식의 틀을 깨야 하고 본인의 위치를 알고 글을 써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대부분 그것이 쉽지 않다고 말한다.


나보고 자기 결정을 하고 있냐고 묻는다.

그 형은 요즘 1년째 뇌과학 책을 읽는다고 하는데

어떤 책을 얼마 큼의 분량을 읽었는지는 모르겠다.

그저 인식이 박히면 바뀌기 쉽지 않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운명을 믿는단다.

본인의 운명은 이미 망했다면서 뭘 해봐야 안된다고 말한다.

대충 이렇게 살다가 별 볼일 없는 노인이 될 것 같다고 말한다.

운명은 DNA에 박혀있다는 다소 비과학적인 말도 했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강하게 믿는다고 한다.


나는 자기 결정을 하고 있는가?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누가 내게 거시적인 관점을 갖고 살라고 가르친 적이 없다.

읽고 쓰는 삶도 내가 선택했다.

그 형 말로는 그 모든 것이 사실은 내 운명 같은 DNA에 박혀있었다고 말한다.


그 형의 마지막 조언은 다음과 같았다.

내 말 때문에 속상하고 기분이 나쁠 수도 있을 것이다.

동정, 공감받으면 그 사람은 발전할 수 없다.

그러면서 본인이 너무 꼰대 같다는 농담을 하며 대화를 마무리했다.


내 주변에 수백 명의 사람이 있지만

이런 사람은 없다.

참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형이지만 재밌는 형이다.


그 형에 대해서 할 말이 많지만 그냥 이쯤에서 마무리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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