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무게와 의미를 다시 묻다
서울 마포의 분위기 좋은 독립서점 ‘북티크’에서 진행된 정지우 작가의 신간 <사람을 남기는 사람> 북토크에 참석했다. 책의 제목처럼 사람과의 관계를 주제로 한 이야기들이 이어졌고, 나는 자연스레 지금까지 맺어온 관계들을 떠올렸다. 북토크를 여는 작가의 첫마디는 고민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는 매번 북토크를 할 때마다 ‘과연 가치 있는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한다고 했다. 하지만 그 고민이 무색할 만큼, 현장에는 그와 대화를 나누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그의 프로필 소개가 이어졌다. 20년간 글을 쓴 분이라 그런지 상당한 다작을 했고, 글쓰기에 대한 교육도 상당히 진행하는 것 같았다. SNS, 방송, 대외 활동도 꾸준하게 해서 그런지 북토크에는 그의 오래된 팬도 많아 보였다. 최근에는 많은 사람들이 책을 다 읽지 않은 채 북토크를 찾아오는데, 그는 이를 당연하게 여겼다. ‘작가로서 나를 전혀 모르는 사람과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도 중요한 과정이라고 했다. 그의 태도에서 관계를 대하는 열린 마음이 느껴졌다.
가장 인상 깊었던 대목은 관계 맺기에 대한 그의 자부심이었다. 청년 시절, 그는 관계를 맺고 끊는 능력이 자신의 특별한 재능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그것이 단순히 개인의 특성이 아니라 시대적 흐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나 역시 누군가와의 관계를 유지하는 것보다 새로운 관계를 만드는 데 더 익숙했던 것 같다. 그는 하버드 연구팀의 연구 결과를 소개하며 “좋은 관계가 삶을 만족스럽게 하는 가장 중요한 조건”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그러면서 관계를 유지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시간을 쓰는 것’이라고 했다. 시간을 쓰지 않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멀어지고, 결국 남는 것은 시간을 함께 보낸 사람들뿐이라는 것이다. 그의 말을 들으며 문득 내 주변을 돌아봤다. 나는 과연 소중한 사람들에게 충분한 시간을 쓰고 있는가? 오히려 넷플릭스와 같은 OTT를 보며 혼자만의 시간을 더 소중하게 여기며 관계를 소홀히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의 말처럼, 결국 내 곁에 남는 사람들은 내가 시간을 들여 함께한 사람들일 것이다. 관계에 대한 나의 태도를 되돌아보게 만드는 순간이었다.
이어서 결혼과 선택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그는 현대인이 ‘최고의 짝’을 찾으려 하지만, 사실 완벽한 선택이란 불가능하다고 했다. 선택이 아니라 ‘내게 온 삶에 최선을 다하는 태도’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직업 선택도 같은 맥락에서 설명했다. 어릴 때부터 작가를 꿈꿨지만, 현실적으로 살기 위해 노력했고, 결국 로스쿨에 진학하게 되었다. 인생은 단번의 결정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작은 과정이 쌓여 만들어진다는 그의 말이 인상적이었다.
북토크 후반부에서는 SNS가 인간관계에 미치는 영향과 글쓰기의 본질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작가는 사람들이 관계에서 손익을 철저히 따지면서 순수한 관계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고 했다. 또한 글쓰기의 본질은 ‘타인과의 소통’이며, 글을 쓰는 행위는 결국 관계를 맺는 또 다른 방식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관계에 대한 상처와 집착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누구나 관계에서 상처를 받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관계를 계속 맺어나가는 것이 아닐까. 그는 관계가 어렵지만 가치 있는 것이라고 믿고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그의 말을 들으며 관계 속에서 받은 상처를 떠올렸다. 그리고 상처받는 것이 두려워 점점 사람을 멀리했던 내 모습을 돌아보았다. 하지만 관계를 피한다고 해서 외로움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관계는 어렵고, 때로는 상처를 남기기도 하지만, 결국 우리의 삶을 이루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관계를 유지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 ‘시간을 쓰는 것’을 기억하기로 했다. 소중한 사람들에게 시간을 쓰는 것이 결국 내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드는 길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