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 첫 번째 독재자는 키 160센티미터의 말라깽이 담임선생님이었다. 그는 매주 월요일 아침, 교문 앞에 30센티미터 자를 들고 서 있었다. 우리는 그 자를 '단두대'라고 불렀다. 머리카락의 생사를 가르는 차가운 금속자.
“김민수, 이리 와봐.”
1988년 3월의 어느 월요일. 내 이름이 호명되었다. 겨울방학 동안 자유롭게 자란 머리카락이 문제였다. 선생님은 내 이마에 자를 들이댔다. 앞머리가 눈썹을 살짝 덮고 있었다. 2.8센티미터. 규정은 3센티미터 이하.
“너 내일까지 깎고 와라.”
그날 저녁, 아버지는 창고에서 바리깡을 꺼내셨다. 녹슨 바리깡은 마치 고문 도구처럼 보였다. 윙윙거리는 소리와 함께 머리카락이 신문지 위로 떨어졌다. 거울 속 내 모습은 마치 삶은 달걀 같았다.
“시원하지?”
아버지의 만족스러운 미소. 나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손으로 머리를 쓸어 올릴 때마다 느껴지는 그 까끌까끌한 감촉이 싫었다. 마치 벌레가 기어가는 것 같았다.
다음 날 교문 앞. 선생님은 다시 자를 들이댔다. 1.5센티미터. 합격.
“역시 머리는 짧아야 학생답지.”
학생다움. 그게 뭔지는 아무도 설명해 주지 않았다. 다만 머리카락이 3센티미터를 넘으면 안 되는 것이었다. 4센티미터면 날라리, 5센티미터면 양아치. 그런 애매한 기준들.
점심시간, 우리는 화장실 거울 앞에 모여 서로의 머리를 만져보았다.
“야, 너는 그래도 숱이 많아서 괜찮아 보인다.”
“에이, 무슨. 나도 달걀이야, 달걀.”
우리는 서로를 위로했다. 마치 수용소에 갇힌 죄수들처럼. 그때는 몰랐다. 이것이 시작에 불과하다는 걸. 앞으로 30년 동안 이어질 자유롭지 못한 머리카락의 서막이라는 걸.
체육 시간. 운동장을 뛰다가 친구가 넘어졌다. 무릎이 까져 피가 났다. 양호실로 가려는 친구를 체육 선생님이 막아섰다.
“야, 남자가 그깟 상처 가지고 엄살이냐? 머리카락이 길어서 그래. 머리가 길면 기운이 다 빠져나간다.”
다소 황당한 논리였지만, 그 시대에는 그게 상식이었다. 머리카락은 기운을 빼앗는 도둑이었고, 집중력과 정신을 흐리게 하는 악마였다.
집에 돌아와 할머니께 물었다.
“할머니, 왜 남자는 머리를 짧게 깎아야 해요?”
할머니는 된장찌개를 끓이며 대답하셨다.
“옛날 일제시대 때부터 그랬어. 일본놈들이 조선 사람들 머리 다 깎게 했지. 상투도 자르게 하고.”
“그럼 일본이 나쁜 거네요?”
“그런데 해방되고도 계속 그러더라. 이승만이가, 박정희가... 다 머리 짧게 하래.”
할머니의 설명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내 머리카락은 내 것이 아니었다. 국가의 것이었고, 학교의 것이었고, 사회의 것이었다.
오늘도 머리를 깎았다. 엄마는 시원해 보인다고 좋아하셨다. 하지만 난 내가 나 같지 않다. 언제쯤 내 마음대로 머리를 기를 수 있을까? 중학생이 되면? 고등학생이 되면? 어른이 되면?
순진한 질문이었다. 그때의 나는 몰랐다. 대한민국에서 남자가 머리를 기르는 것은, 평생에 걸친 투쟁이라는 것을.
창밖으로 이발소 간판이 보였다. 빨간색, 파란색, 하얀색이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끝없이 돌고 도는 이발소 간판. 그것은 어쩌면 대한민국 남자들의 운명을 상징하는 것인지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