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장발남 05화

3미리

by 부소유

2004년 11월, 차가운 바람이 불던 날. 우편함에서 빨간 봉투를 발견했다. 병무청. 그 세 글자만으로도 가슴이 철렁했다.


“현역병 입영통지서”


2005년 2월 15일. 논산훈련소.


석 달. 정확히 92일이 남았다. 92일 동안의 유예기간. 사형수가 집행일을 기다리는 심정이 이랬을까.


“드디어 왔구나.”


어머니는 오히려 안도하는 표정이었다.


“이제 머리 미리미리 짧게 하고 적응해야겠다.”


“엄마, 아직 석 달이나 남았어요.”


“석 달이 뭐가 길어? 지금부터 조금씩 자르면서 적응해야지. 한 번에 다 밀면 충격 받는다.”


어머니의 ‘단계적 삭발론’. 하지만 나는 반대였다. 차라리 마지막까지 기르다가 한 번에 미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잃을 거라면, 끝까지 가진 채로 있고 싶었다.


12월, 친구들과의 송년회.


“야, 너 언제 입대해?”


“2월 15일.”


“오, 그럼 이제 머리 자를 때 됐네.”


“왜 미리 잘라야 해?”


“적응해야지. 군대 가서 충격받으면 군생활 힘들어.”


모두가 같은 말을 했다. 미리 적응하라고. 하지만 나는 묻고 싶었다. 왜 우리는 늘 미리 적응해야 하는가? 억압에 미리 길들여져야 하는가?


2005년 1월. 마지막 방학. 나는 오히려 머리를 더 신경 써서 관리했다. 비싼 샴푸를 사고, 트리트먼트도 했다. 미용실에 가서 다듬기만 했다.


“학생, 곧 군대 가시나 봐요?”


미용사가 물었다.


“네, 다음 달에요.”


“그럼 오늘 짧게 해드릴까요?”


“아니요, 다듬기만 해주세요.”


“에고, 아까워라. 이렇게 잘 기른 머리를...”


그녀는 내 머리를 만지며 안타까워했다. 나도 안타까웠다. 2년 반 동안 기른 머리였다. 내 인생에서 가장 긴 머리였다.


2월 10일. 입대 5일 전. 친구들과 마지막 술자리.


“야, 너 아직도 안 잘랐어?”


“입대 전날 자르려고.”


“미쳤냐? 그날 미용실 문 닫으면 어떡해?”


“그럼 훈련소에서 밀지 뭐.”


친구들이 경악했다.


“야, 훈련소 이발은 진짜 개판이야. 그냥 막 미는 거라고. 아는 선배는 바리깡에 귀도 짤렸어.”


“뭔 개소리야? 말 같지도 않은 구라치고 있어.”


강한 척했지만, 사실 무서웠다.


2월 14일. 발렌타인데이. 그리고 내 머리카락의 마지막 날.


아침에 일어나 거울을 봤다. 마지막으로 머리를 감았다. 드라이어로 정성껏 말렸다. 빗으로 빗었다. 가르마를 탔다. 묶어보기도 했다.


마지막이었다.


오후 3시. 동네 이발소에 들어갔다. 일부러 미용실이 아닌 이발소를 선택했다. 어차피 군인 머리가 될 거라면, 차라리 이발소가 맞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해드릴까요?”


“3미리로 밀어주세요.”


이발사 아저씨가 놀랐다.


“3미리? 너무 짧은데...”


“내일 군대 가요.”


“아...”


그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바리깡을 들었다.


위이이잉.


기계음이 울렸다. 차가운 금속이 두피에 닿았다. 그리고...


서걱. 서걱. 서걱.


2년 반의 세월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검은 머리카락들이 하얀 타일 위에 수북이 쌓였다. 마치 검은 눈이 내리는 것 같았다.


10분.


단 10분 만에 끝났다. 2년 반이 10분이었다.


“다 됐습니다.”


거울을 봤다. 낯선 사람이 앉아 있었다. 창백한 두피가 드러난 스무세 살 청년. 아니, 이제 청년도 아니었다. 그냥 예비 훈련병이었다.


“시원하시죠?”


또 그 질문.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을 봤다.


“이거... 버리시는 거죠?”


“네? 네, 당연히...”


“조금만 가져가도 될까요?”


이발사는 이상한 눈으로 봤지만, 작은 봉투에 머리카락을 조금 담아줬다.


집에 돌아왔다. 어머니가 현관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어머, 시원하게 잘 했네. 이제 좀 사람 같다.”


사람 같다. 그럼 나는 지금까지 사람이 아니었나.


저녁을 먹으며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군대 가면 더 짧게 밀 거다. 미리 적응하길 잘했어.”


“더 짧게요?”


“훈련소는 거의 민머리 수준이야. 내가 갔을 때는...”


아버지의 군대 이야기가 시작됐다. 하지만 나는 듣지 않았다. 그저 텅 빈 머리를 쓸어 올릴 뿐이었다. 손에는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봉투에 담아온 머리카락을 꺼내 봤다. 부드러웠다. 내 것이었지만 이제는 내 것이 아닌.


2월 15일 새벽 5시. 논산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차창에 비친 내 모습은 여전히 낯설었다.


훈련소 도착. 수백 명의 삭발한 청년들. 우리는 모두 똑같았다. 개성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균일한 모습.


“다들 여기 앉아! 이발 시작한다!”


이미 3미리인데 또 밀어야 했다.


“너 머리 길어. 다시 밀어.”


조교의 지적. 길다니. 이미 두피가 다 보이는데.


훈련소 이발병의 바리깡은 거칠었다. 아니, 잔인했다. 1미리. 아니, 그보다 짧았다. 맨 두피가 드러났다.


거울도 없었다. 그저 옆 사람의 머리를 보고 내 머리를 짐작할 뿐이었다.


“시원하지?”


또 누군가 물었다. 이번엔 조교였다.


“네! 시원합니다!”


거짓말도 이제는 자연스러웠다.


그날 밤, 생활관에서 모두가 잠든 시간. 나는 머리를 만졌다. 아니, 두피를 만졌다. 까끌까끌했다. 사포 같았다.


앞으로 2년. 730일. 이 머리로 살아야 한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마음 한구석이 편했다. 더 이상 신경 쓸 필요가 없으니까. 더 이상 선택할 필요가 없으니까.


자유가 없으면 고민도 없다. 그것이 군대가 우리에게 가르치는 첫 번째 교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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