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장발남 06화

취업용 머리스타일

by 부소유

2007년 2월, 제대. 2년 만에 찾은 자유. 집에 돌아오자마자 한 일은 거울 앞에 서는 것이었다. 2년 동안 한 달에 한 번씩 밀어댄 머리. 두피에는 바리깡 자국이 선명했다.


“이제 마음대로 길러도 되겠다.”


혼잣말이었지만, 어머니가 들으셨다.


“그래, 복학 전까지는 좀 길러도 되겠네. 근데 취업 준비는 언제부터 할 거니?”


취업. 제대 첫날부터 시작된 새로운 압박. 3월, 복학. 2년 만에 돌아온 캠퍼스는 낯설었다. 후배들은 여전히 자유로운 머리를 하고 있었다. 염색, 파마, 장발. 부러웠다.


“형, 제대하셨네요! 근데 머리가...”


“응, 아직 안 자랐어.”


“빨리 기르세요. 형 장발 잘 어울렸는데.”


하지만 이미 4학년. 취업 시즌이 코앞이었다. 5월, 첫 기업 설명회. 대기업 인사담당자가 말했다.


“저희는 능력만 봅니다. 외모나 스펙이 아닌, 순수한 능력과 열정을 봅니다.”


희망적인 말이었다. 하지만 PPT 화면에 나온 '신입사원 선배들'의 사진을 보니... 모두 단정한 짧은 머리였다. 우연일까? 6월, 취업 스터디 첫 모임.


“자, 다들 증명사진 찍었어?”


“아직이요. 머리 좀 더 기르고 찍으려고...”


내 말에 스터디장이 웃었다.


“야, 미쳤어? 지금 당장 자르고 찍어. 면접관들이 첫인상으로 다 결정한다고.”


“첫인상이요?”


“단정함. 신뢰감. 이런 거. 긴 머리로 그게 되겠어?”


다시 미용실로 향했다. 이번엔 스스로 간 것이었다. 아니, 스스로였을까?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려 간 것은 아닐까?


“어떻게 해드릴까요?”


“단정하게... 면접용으로요.”


미용사는 바로 알아들었다.


“아, 취준생이시군요. 요즘 많이 오세요.”


가위질이 시작됐다. 군대 이후 4개월 동안 자란 머리가 다시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 정도면 딱 좋을 것 같은데요?”


거울 속 내 모습. 고등학생 때로 돌아간 것 같았다. 아니, 더 나이 들어 보였다. 스물다섯의 청년이 아니라, 마흔의 회사원 같았다. 7월, 대기업 서류 접수 시작. 증명사진을 붙이며 생각했다. 이 사진 속 사람이 정말 나일까?


8월, 첫 면접 통보.


“다음 주 화요일 오전 10시, 본사로 오시기 바랍니다. 단정한 모습으로 오시기 바랍니다.”


단정한 모습. 그 모호한 기준. 하지만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면접 전날, 다시 미용실.


“또 오셨네요?”


“네, 내일 면접이라서... 더 짧게 해주세요.”


“더요? 이미 충분히 짧은데...”


“그냥... 더 짧게요.”


면접장. 대기실에 앉은 30명의 남자 지원자들. 놀랍게도, 아니 당연하게도, 모두 똑같은 머리였다. 마치 군대 생활관을 보는 것 같았다.


“김민수 님, 들어오세요.”


면접실. 세 명의 면접관. 그들도 모두 짧은 머리였다.


“자기소개 해보세요.”


준비한 대로 말했다. 하지만 한 면접관의 시선이 계속 내 머리에 머물렀다. 뭔가 부족한가? 더 짧아야 했나?


“질문 있습니다. 김민수 씨, 우리 회사에 와서 어떤 모습으로 일하고 싶습니까?”


“성실하고 책임감 있는 모습으로...”


“외적인 모습 말입니다. 우리 회사는 고객을 직접 만나는 일이 많거든요.”


순간 깨달았다. 이것은 머리에 대한 질문이었다.


“아, 네. 항상 단정하고 깔끔한 모습을 유지하겠습니다.”


“좋습니다. 학생 때와는 다르게, 회사에서는 신뢰감이 중요하거든요.”


면접이 끝났다. 결과는 불합격이었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왠지 알 것 같았다. 9월, 두 번째 면접. 이번엔 더 짧게 잘랐다. 거의 군인 수준이었다.


“오, 김민수 씨. 아주 단정하시네요. 좋습니다.”


첫 마디부터 달랐다. 그리고 합격했다. 10월, 세 번째 면접. 이제는 공식이 생겼다. 면접 3일 전 미용실, 옆은 1밀리, 위는 3센티 이하.


“또 면접이세요?”


미용사도 이제는 나를 알아봤다.


“네... 이번이 마지막이었으면 좋겠네요.”


“곧 좋은 결과 있으실 거예요. 머리도 딱 취업하기 좋은 스타일이시고.”


취업하기 좋은 머리. 그런 게 있다는 게 웃겼다. 하지만 나도 그것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11월, 최종 합격 통보.


“축하합니다. 12월부터 출근하시면 됩니다.”


기뻤다. 하지만 거울을 보니 씁쓸했다. 합격한 건 나일까, 아니면 이 짧은 머리일까? 합격 축하 술자리. 친구가 말했다.


“야, 이제 됐으니까 머리 좀 길러도 되겠다?”


“글쎄... 신입사원인데.”


“아, 맞다. 또 몇 년은 짧게 해야겠구나.”


몇 년. 그 막연한 시간. 군대는 2년이라는 명확한 끝이 있었다. 하지만 회사는? 과장까지? 부장까지? 은퇴할 때까지? 늘 취업이 확정됐다. 면접을 위해 머리를 자른 게 다섯 번. 미용실 비용만 10만 원이 넘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큰 걸 지불한 것 같다. 내 모습을, 내 정체성을 팔아서 산 일자리. 이게 맞는 걸까? 하지만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대한민국에서 먹고 살려면, 남자의 머리는 짧아야 했다. 그것이 불문율이자, 생존의 법칙이었다.


12월 1일, 첫 출근을 앞둔 밤. 또 미용실에 갔다.


“첫 출근이시군요! 더 짧게 해드릴까요?”


“아니요... 이 정도면 될 것 같아요.”


하지만 미용사는 조금 더 다듬었다.


“첫인상이 중요하잖아요.”


첫인상. 늘 첫인상이었다. 언제쯤 진짜 인상을 보여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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